‘괜찮아’, 왜 사랑보다 상처가 더 인상 깊을까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김수현 작가에게 사랑이 언제나 ‘덫’이라면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은 대개 사랑 때문에 발목이 잡혀 팔자가 사나워진다), JTBC <유나의 거리>에서 다시 빛을 발하는 김운경 작가에게 사랑이란 팍팍한 세상에 서로 기댈 수 있는 ‘어깨’다.

SBS 수목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의 노희경 작가 역시 꾸준히 사랑을 화두로 삼는다. <괜찮아, 사랑이야> 첫 회에 피곤할 정도로 섹스란 단어가 반복되었지만(그 덕에 섹스라는 말이 야하다는 느낌이 아닌 강박증의 다른 표현 같은 인상을 주는 데 성공했으나) 사실 그녀가 뜨거운 욕망에 초점을 맞추는 작가는 아니다. 그간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에서 사랑은 뜨거운 시럽의 밀어가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그에게 혹은 내가 나에게 던지는 ‘질문’으로 이루어진 세계에 가까웠다.

왜 나에게 사랑이란 감정이 찾아왔을까? 왜 사랑은 내가 경멸하던 타인을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으로 바꿔놓을 수가 있는 거지? 나와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이를 마음에 담는 것이 혹시 사랑 아닌 동정심이었던 건 아닐까? 이 피곤하고 팍팍한 나의 삶에 과연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노희경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언제나 자신에게 다가온 사랑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신에게 찾아온 이 낯선 감정에 처음에는 당황하고 그 다음에는 그 감정을 떨쳐내려 이성적으로 감정의 실체를 해부한다. 물론 결국 마음을 놓아버리고서 그들은 사랑에 빠져버리지만.

<내가 사는 이유>에서 삶의 허무를 나직하게 읊조리던 술집 작부 애숙(이영애)이 그랬고, <거짓말>의 남녀 준희(이성재)와 성우(배종옥)가 그랬고,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의 신형(김혜수)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가장 최근작인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오영(송혜교)도 다르지 않다.

노희경 드라마의 변별점 혹은 노희경 작가가 다른 작가들과 달라지는 지점은 거기에 있다. 사랑과 이별, 불륜이 비빔면 끓이기보다 쉬운 드라마왕국에서 그녀의 자그마한 골방은 사랑에 대해 사색하기 좋은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런 노희경 작가의 <괜찮아, 사랑이야>는 사랑에 미친 게 아니라 그냥 미친 사람들의 드라마다. 주인공인 추리소설가 장재열(조인성)은 강박증은 물론이고 자신의 어린시절을 닮은 한강우(디오)라는 환각의 존재와 함께한다. 정신과 펠로우 지해수(공효진)는 육체관계에 대한 트라우마에 시달려 “세상에 섹스가 과제인 사람이 나밖에 없냐?”며 한탄하는 인물이다. 이외에도 해수가 근무하는 병원을 배경으로 수많은 정신과 환자들이 등장한다. 사실 그들은 그냥 미친 건 아니다. 조금만 깊숙이 들여다보면 타인에게 받은 상처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를 무너뜨리거나 스스로의 성벽에 갇힌 연약한 이들이 그들이란 걸 알 수 있다.

여주인공 해수부터가 그러하다. 그녀가 육체관계를 혐오하는 건 엄마의 불륜을 목격한 트라우마 때문이다. 그녀의 연애는 그래서 키스 이상으로 진도를 빼기가 어려워져 버렸다. 비 오는 밤 바람 핀 남자친구가 찾아와 무릎 끓고 사죄할 때 그녀가 내뱉는 대사는 그래서 꽤 시리다.

“네가 정상인 건 나도 아는데. 비정상은 난데. 내가 부탁했었지. 나는 엄마가 20년 넘게 불륜 하는 걸 봐서, 섹스란 정말 나쁜 거라고 생각하는 이상하고 끔찍한 병을 앓고 있다고. 남들 사랑할 때 가슴 떨리는데 나는 더럽고 싫고. 아직 섹스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벌벌 떨리고 무섭다고. 그러니까 나 좀 봐달라고. 나도 벗어나고 싶다고.”

한편 유년시절 의붓아버지의 가정폭력에 시달린 재열은 성공한 소설가지만 아직도 그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의 환각인 강우가 어린시절 재열처럼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불쌍한 소년으로 나타나는 것이 그 증거다. 또한 재열의 형 장재범(양익준)은 의붓아버지를 살해한 죄를 가족 대신 덮어쓰고 교도소에 수감돼 그 억울함이 주체할 수 없는 분노로 변한 지 오래다.

<괜찮아, 사랑이야>가 노희경의 언어로 이들의 상처를 보여주는 과정은 그리 무겁지 않으면서도 보는 이들을 애달프게 하는 무게감이 있다. 당연하다. 엄마손처럼 편안하게 쓰다듬다가 갑자기 눈물이 툭 솟게 먹먹한 펀치를 날리는 것이 이 작가의 특기니까. 또한 매회 등장하는 정신과 환자들의 증상과 그 원인은 그 자체로 흥미롭지만 거기에 더해 재열과 해수, 재범의 증상에 대한 일종의 보충설명 역할도 한다. 여기에 쿨하고 덤덤하지만 상처 입은 자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정신과 의사 조동민(성동일)과 투렛증후군을 앓고 있지만 사랑스러운 성격의 박수광(이수광)까지 제 몫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다만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겠지만 이 드라마가 그려내는 재열과 해수의 사랑에는 이상하게 끌리지가 않는다. 이 연애의 과정이 두 사람이 지녔던 상처의 치유라는 것쯤 머리로는 알겠다. 다만 그 장면들이 이어질 때 이상하게 아직까지 마음으로 다가오는 울림은 없다. 예쁘기는 하지만, CF의 한 장면 같지만, 어딘지 위닉스 뽀송으로 사랑이란 감정 특유의 축축함까지 말려버린 것만 같다. <괜찮아, 사랑이야>를 보면서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와 <바보 같은 사랑>에서 작가가 그려낸 사랑이 그리워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물론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재열과 해수가 함께할 때 인상 깊은 장면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을 꼽자면 그들이 가까워지기 전의 어떤 한 장면이다. 비를 쫄딱 맞으며 남자친구에게 자신의 트라우마를 털어놓은 해수는 울적한 마음으로 집으로 들어온다. 그녀는 재열을 외면하고 방으로 들어간다. 재열은 말없이 수건 세 장을 챙겨서 해수의 방문 앞에 놓아주고 사라진다. 수건은 빨강, 노랑, 파랑 신호등의 빛깔이다. 이 장면에는 어떠한 대사도 없이 행동만이 존재한다. 하지만 상처 받은 타인에게 또 다른 타인이 건넬 수 있는 적합한 위로란 그런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게 한다.

그리고 그 신호등 빛깔 수건은 재열이 해수에게만이 아니라 이 드라마가 상처 받은 이들에게 건네는 것일 수도 있겠다. 너만의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해 너무 서두르지 말라고. 우선 네 앞에 신호등 하나 세워두면 그걸로 괜찮다고. 붉은 신호가 노란 신호를 거쳐 파란 신호로 바뀔 때까지 마음을 다독였다 천천히 마음을 열고 누군가 사랑할 수 있는 이곳으로 건너와도 늦지 않다고. 그리고 너는 틀린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고.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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