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만식 가족예능, 한가위의 주인공이 된 까닭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이번 추석 연휴에 시끌벅적한 잔치는 없었다. ‘무엇’이 없는 볼거리는 사라졌다. 아이돌들의 체육대회는 폐장됐고, 연예인들이 북적이는 씨름판은 벌어지지 않았다. 요란함 대신 <쟁반릴레이송>과 <나가수>, <썸씽> 등 노랫가락에 추억과 감정을 실은 간소화한 무대가 주로 선보였고, <가요무대>부터 <아빠 어디가>까지 기존 예능들을 중심으로 ‘가족’ 코드가 이번 추석 예능계의 화두로 떠올랐다. 그 이유가 짐작이 되는 체류 외국인 관련 프로그램들이나 <진짜사나이> 여군 편, <무한도전> 팬특집 등 유사 가족주의를 포인트로 한 예능들도 같은 맥락에서 성황이었다.

이런 가족예능의 흐름을 상징하는 인물이 김병만이다. 김병만이 등장하는 SBS 예능은 아예 김병만의 캐스팅에서부터 기획이 시작된다. 따라서 그 어떤 파일럿이나 연휴 특집의 전반적 경향보다 도드라진 점이 김병만과 그의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김병만 식 가족주의 예능이다. 기존의 병만족을 탄생시킨 <정글의 법칙>, 지난달 말 시골에서 아예 연예인들이 손수 집짓는 에코 빌리지 프로젝트 <즐거운 가>, SBS와 김병만의 명절특집 시리즈인 <주먹 쥐고 주방장>까지 미션과 장소는 다르지만 김병만이 가장 노릇을 하며 식솔을 돌본다는 공통점에서 김병만식 가족예능이라고 장르를 명명할 수 있다.

김병만표 가족예능의 표면적 특징은 미션을 주고 김병만이 해내는 과정을 볼거리를 늘어놓는다는 것이다. <주먹 쥐고 주방장>의 경우 스토리라인도 웃음코드도 없다. <주먹 쥐고 소림사> 편이 괜찮을 반응을 얻긴 했지만, 도전을 기록하는 것 말고 특별한 장치는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중국의 유서 깊은 거대한 식당 주방에 견습하러 들어가서 열심히 배우는 장면들을 보여주는 것이 전부다. 헨리가 아무리 까불고, 육중완이 헤매더라도 결국 열심히 턱턱 해내는 김병만을 따라가면서 정리될 것을 우리는 다 안다.

연휴 기간 재방송까지 집중 편성된 <즐거운 가>는 김병만이 경기도 가평에 손수 집을 지었기 때문에 기획될 수 있었던 프로그램이다. 제반 건축지식을 갖추고 중장비를 능숙하게 다루면서 다른 멤버들을 이끌어 공사 현장, 그들만의 터전을 일궈낸다. 역시나 멤버들의 의식주를 책임지는 병만 족장의 국내판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하나둘 쌓이기 시작한 김병만식 가족예능을 켜켜이 겹쳐놓다 보면 ‘가장’의 존재가 드러난다. 일을 척척해내면서 식구들을 품어 안고 기댈 수 있게 만든다. 헨리는 ‘키 작은 형’이라 부르지만 그 어떤 기둥보다 탄탄하고 기댈 수 있는 어깨이자 너른 그늘이다. 이런 키다리 아저씨를 가장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은, 이런 존재가 곁에 있다는 것은 요즘 같이 험난한 세상 사람들은 흔히 누릴 수 없는 이상향이다.

여기서 김병만은 가장의 로망이자 부여된 가장 막중한 책임인 ‘일궈내기’를 실현한다. 집을 짓고 살림을 늘리고, 걱정하는 식구들을 안심시키고 따라오도록 만든다. ‘함께’ 도전하고 ‘손수’ 해낸다는 것은 우리 예능 선수 중 김병만만이 해낼 수 있는 특수성이다. 그래서 다부진 김병만의 손은 대단한 물건이자, 하나의 장르이며, SBS의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주방 바닥에 받침대를 놓고 올라서야 웍(중국식 팬)을 원활하게 돌릴 수 있지만 정작 그의 키는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

가장이란 가장 전통적인 가족상에 밑바탕을 두고 있고, 그 자체가 어떤 세련미와는 거리가 멀지만 예전 방식대로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이룩해가는 김병만식 콘텐츠는 불편함과 비효율을 마땅히 감수하는 대신 사람과 감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슬로라이프, 자연주의적인 <킨포크>적인 요즘 ‘힙한’ 정서와 맞닿아 있다. 물론, 주로 놀라움을 선사하는 볼거리를 통해서 가치와 정서를 담아내기에 삶의 궤적의 한 틈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나누는 이효리의 소박함과는 형태적, 심미적 차이는 있지만 라이프스타일의 제안과 전시라는 측면에서 제주도의 이효리와 김병만의 가족예능은 연결된다.



김병만의 예능이, 김병만의 가족이 비교적 연령대 있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퇴색되어가는 가장에 대한 로망을 다시금 되살리면서, 라이프스타일의 지향이 동시에 있기 때문이다. ‘병만이형과 함께라면 모든지 할 수 있어’라는 확신, 김병만과 함께하면 잘 할 수 있겠다는 믿음을 예능적 차원의 볼거리로 보여주면서 그 속에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속도와 방향,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들에 대해 잠시 생각을 멈추고 돌아보게 한다.

바로 이런 핵심 주제와 정서가 있기에 빈약한 스토리텔링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그들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일 년 중 가족을 떠올리는 한가위 명절, 가족을 돌아보는 이때, 김병만의 가족 예능은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김병만이 소화할 수 있는 예능이고, 그만이 가질 수 있는 캐릭터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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