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래동화로 풀어 본 ‘왔다 장보리’ 캐릭터 열전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옛날 옛적 아이들은 사랑방에 모여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착한 아이는 복을 받고 못된 아이는 결국 벌을 받는다. 주인공은 큰 고난을 겪지만 착한 마음씨와 용기로 모든 어려움을 헤쳐 나간다. 가끔은 말도 안 되는 사건들이 이어지지만 옛날이야기란 원래 다 그런 법이다.

요즘 사람들은 옛날이야기를 듣는 대신 MBC 주말드라마 <왔다! 장보리>를 본다. <왔다! 장보리>는 흔히 말하는 막장 드라마의 자극적인 요소들이 가득한 작품이다. 또한 <아내의 유혹>에서 전설의 양은냄비 신을 쓴 김순옥 작가답게 사건의 빠른 전개를 위해 말도 안 되는 허술한 장치들이 종종 등장한다. 그 때문에 매번 계모와 언니 연민정(이유리)에게 뒤통수만 맞는 여주인공 장보리(오연서)는 보리 보리가 아니고 바보 바보가 된 것 같은 인상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은비가 도보리가 되었다가 다시 장은비로 돌아가는 이 이야기는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오히려 작가가 진지한 스릴러의 향기를 남기려고 노력했던 SBS의 <다섯손가락>보다 훨씬 흥미진진하다. 작가는 얼굴에 수박씨 하나 붙이고 <아내의 유혹> 여주인공인 구은재(장서희) 운운하는 식의 ‘병맛’스러운 개그감이 늘었다.

하지만 <왔다! 장보리>에서 가장 눈여겨볼 만한 작가의 특기는 바로 키치한 감각이다. 김순옥 작가의 드라마는 가벼운 척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가볍다. 하지만 종종 비교되는 임성한 작가처럼 드라마를 산이 아닌 별나라까지 끌어가진 않는다.

사실 <왔다! 장보리>는 사람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하거나 즐겨 읽던 전래동화나 고전소설의 가벼운 키치 버전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김순옥 작가가 이 드라마를 위해 빌려온 옛이야기들은 꽤나 다채롭다. 우선 민정과 보리, 그리고 계모와의 관계에서 <콩쥐팥쥐>는 기본으로 깔고 들어간다. 이 관계는 이재화(김지훈)와 이재희(오창석)의 관계로도 확장된다. 콩쥐 커플과 팥쥐 커플의 대결인 셈이다. 물론 재화의 기본적인 성격은 착한 콩쥐보다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홍길동과 <춘향전>의 철없는 이도령의 조합이다.



보리는 절색 춘향은 아니고 콩쥐인 동시에 <심청전>의 심청 판박이다. 그녀는 악착같이 계모 도혜옥(황영희)을 챙기고 또 챙긴다. 친딸 민정에게만 눈 먼 계모 도 씨는 <심청전>의 사고뭉치 심학규와 뻔뻔한 뺑덕어멈을 절묘하게 섞어놓은 쪽박 깨는 인물이다.

여기에 호부호형을 못하는 홍길동은 아니더라도 딸을 딸이라 부르지 못하고 아기엄마를 아기엄마라 부르지 못하는 비단(김지영)의 친부 문지상(성혁)이 있다. 하지만 <왔다! 장보리>에서 지상은 의적 홍길동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민정이 벌인 모든 패악의 해결사가 실은 보리보다 지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민정은 어떤 유형의 인물에서 빌려왔을까? 인간이 되기 위해 꼬리 아홉 개로 살아가는 구미호에 가깝지 않을까? 물론 구미호가 인간으로 돌아가기 직전 정체를 들키듯 민정 또한 완벽한 재벌가의 며느리로 성공하기 직전에 자신의 악행을 하나 둘씩 들킨다. 여기에 고전소설은 아니지만 배우 양미경이 현대판 고전소설이라 부를 수 있는 드라마 <대장금>의 한상궁과 비슷한 성격을 지닌 인물인 보리의 큰어머니 옥수로 등장한다.



뜬금없이 한복집 비술채를 배경으로 한 것 또한 이런 분위기에 한몫을 한다. 드라마 초반에 비술채의 명장 박수미(김용림)는 어린 은비에게 직접 지은 동화를 들려주기도 한다. 더구나 보리의 진짜 이름은 전래동화를 소재로 한 유명한 애니메이션 <옛날옛적에>의 은비까비 중 바로 은비가 아니던가?

재미있게도 <왔다! 장보리>에는 전래동화와 비슷한 그러면서 지금 이 시대와 어울리는 교훈담을 들려주는 장면까지 존재한다. 민정에게 실컷 당한 보리는 그녀와 독대하는 장면에서 결국 이런 대사를 내뱉는다.

“착하게 사는 게 옳은 것이 아니라 옳게 사는 게 착한 거구만.”

인자한 용왕이 용궁에 사는 <심청전>의 세계가 아닌 연민정과 쏙 빼닮은 이들이 우리들 머리 꼭대기에 사는 지금 이 시대와 적절하게 어울리는 씁쓸한 교훈인 셈이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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