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내 인생’ 원작에 감춰진 의미를 살릴 수 있었다면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원작이 있는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이 내뱉는 "그래도 책이 낫더라"라는 탄식은 영화가 태어난 뒤부터 거의 관용어처럼 굳어진지 오래다. 이런 말은 아마 책이 연극으로 각색되던 시절에도 있었겠지만 영화와는 달리 연극은 소설의 내러티브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진 장르라 쉽게 비교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도 책이 낫더라"는 소설이 베스트셀러라는 이유로 영화로 옮겨지기 시작하던 시대에 만들어진 관용어이다.

패트리샤 하이스미스 팬이라면 얼마 전에 개봉된 <1월의 두 얼굴>을 보고 같은 탄식을 내뱉었을 것이다. 영화 자체는 나쁘지 않다. 배우들도 좋고 60년대의 패션도 괜찮고 배경이 되는 그리스의 풍광도 좋다. 스토리도 원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편이다. 그런데도 원작에서 느꼈던 긴장감은 찾기가 어렵다. 무엇이 빠졌던 걸까. 소설에서만 가능한 정교한 심리묘사라고 말한다면 그건 너무 단순하다. 이미 하이스미스의 소설들은 여러 차례 훌륭한 영화로 각색되었고 (<태양은 가득히>, <열차의 이방인>, <미국인 친구>, <리플리>, <리플리의 게임>...) 그들 역시 같은 핸드캡을 공유한다. 그 영화들에서와는 달리 <1월의 두 얼굴>의 각색 과정 중 무언가가 빠져나갔던 것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문제점은 원작을 지나치게 존중받아야 마땅할 '옛 시절의 문학작품'으로 취급했다는 것이다. 작품이 나왔을 때만 해도 동시대를 무대로 한 날카로운 스릴러였던 작품이 2013년에 나오자 반 세기 전을 무대로 한 우아한 워킹 타이틀 영화가 된다. 긴장감이 사라지는 건 이상하지 않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영화가 원작의 심리묘사를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려고 하는데 그게 원작의 생동감과 복잡성을 빼앗아버린다는 데에 있다. 과연 체스터와 라이달의 관계가 '대디 이슈' 하나만으로 지탱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한가? 그 이슈만으로 영화의 스토리를 모두 설명할 수 있을까?

<1월의 두 얼굴>은 옛 시대의 소설을 각색하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대표적인 실수들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동시대 소설의 경우는 어떨까.



여기서 이재용의 <두근두근 내 인생>은 <1월의 두 얼굴>보다 조금 더 까다로운 예로 제시된다. 원작의 우월성이 노골적인 <1월의 두 얼굴>과는 달리, 이재용의 영화가 원작이 된 김애란의 소설보다 더 나빠 보이지는 않는다. 의견차가 있을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절대평가보다는 개인적인 취향, 즉 원작과 영화에서 무엇을 취사선택해 받아들일 것인가가 더 큰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작소설의 '문학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생각해볼만 하다. 여기서 '문학성'이란 원작소설의 '작품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원작소설이 언어를 사용하는 예술인 문학이라는 것의 기능성을 최대한으로 살리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조로증을 앓고 있는 소년으로 고등학교 때 그를 낳은 아직 젊고 철부지인 부모와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그냥 눈물 짜는 신파이다. 하지만 그 소년은 자신이 언어를 능숙하게 사용한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고 이를 통해 자신의 흔적을 세상에 남기려 한다. 우리가 읽는 1인칭 텍스트의 집필 과정 자체가 소설의 진짜 내용인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표현하려나?

영화에는 그 노력의 티가 잘 나지 않는다. 영화는 마치 주인공이 죽은 뒤에 쓴 원고가 정말 출판되었고 그 책을 직접 각색한 것처럼 보인다. 주인공이 글을 쓰는 장면이 많이 나오긴 하는데, 그것은 그냥 캐릭터의 설명에 머문다. 주인공 아름은 조로증을 앓고 글을 쓰는 아이인 것이다.



충분히 생동감 있는 캐릭터와 유머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생동감을 결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원작에서 아름의 텍스트는 철저하게 선택되고 통제된 것이다. 셜록 홈즈 소설 정도라면 캐릭터의 대사와 행동을 그대로 믿어도 상관없다. 하지만 아름이처럼 실제 세계에 대한 경험이 부족할 수밖에 없고 자의식이 강한 아이가 자신이 직접 경험한 적 없는 일을 들려준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그를 '믿을 수 없는 화자'로 보는 것이 정상이다. 그리고 영화는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원작에 감추어진 또 다른 차원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름이 마지막에 남긴 원고 역시 영화에서는 싱거워진다. 영화에서 에필로그를 장식하는 이 이야기를 영화는 그냥 내레이션이 있는 소설을 각색하는 것처럼 옮긴다. 하지만 에필로그에서 벌어지는 일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이고 특별히 새롭지도 않다. 중요한 건 이 이야기를 죽어가는 소년이 자신의 언어를 통해 재구성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각색 중 방점을 찍어야 할 부분은 어디일까?

<두근두근 내 인생>은 여전히 준수한 멜로드라마이다. 하지만 소설에서 가장 좋다고 할 수 없는 멜로드라마를 최대한 깔끔하게 뽑은 멜로드라마란 의미에서나 그렇다. 완성도 여부와는 상관없이, 소설이 이보다 더 흥미로운 영화의 원작이 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두근두근 내 인생>스틸컷]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