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강동원 같은 아빠와 강동원 같은 아들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아버지는 자기가 여든 살이 됐을 때의 얼굴을 내게서 본다.
나는 내가 서른넷이 됐을 때의 얼굴을 아버지에게서 본다.
오지 않은 미래와 겪지 못한 과거가 마주본다.
-김애란 <두근두근 내인생> 중에서

<두근두근 내 인생>은 2011년에 출간돼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김애란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이재용 감독이 연출한 영화이다. 강동원, 송혜교가 주연을 맡았다는 것만으로 기대감이 부풀어 오르는 영화이지만, 선남선녀의 로맨스물이 아니다. 강동원과 송혜교가 아빠·엄마 역할을 맡았다니, 세상에나, 강동원이 아빠이고 송혜교가 엄마인 가정을 상상해 본적이 있는가! 하지만 영화는 ‘스위티 홈’을 노래하는 가족물이 아니며, 그렇다고 눈물을 빼기로 작정한 신파물도 아니다.

영화는 학교엔 가본 적이 없고 주로 집에서 혼자 글쓰기를 하며 지낸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소년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소년은 자신의 엄마·아빠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말한다. 소년의 엄마와 아빠는 17살에 소년을 가졌다. 태권도 선수가 꿈이었던 ‘헛발왕자’ 대수(강동원)와 가수를 꿈꾸었던 ‘씨발공주’ 미나(송혜교)가 만나 사랑을 하고, 임신을 하고, 그렇게 학교와 가정으로부터 쫓겨나 아빠·엄마가 되어 살아간다. 아이는 자라서 이제 그때의 부모 나이와 비슷한 16살이 되었다. 그런데 아뿔싸. 소년의 신체 나이는 무려 80세이다!



◆ 가장 어린 부모와 가장 늙은 자식

영화는 엄마·아빠의 사연을 들려주는 아름이의 모습을 한참이 지나서야 화면에 보여준다. 작고 왜소한 체격에, 머리카락과 눈썹이 없는 주름진 얼굴이다. 아름이는 ‘선천성 조로증’을 앓고 있다. 선천성 조로증은 유전자에 이상이 생기는 희귀병으로, 유아기 때부터 성장발달이 지체되다가 노화가 급격히 진행된다. 고혈압, 동맥경화, 뇌경색 등 심혈관계 질환에 의해 대부분 13세 전후에 사망하며, 2차 성징은 나타나지 않는다. 미처 성장이 되지못한 아이의 신체에서 곧바로 노인의 신체가 되어 죽는 것이다. 치료법은 없으며, 노화로 인한 합병증을 완화하기 위한 치료가 이루어질 뿐이다. 선천성 조로증은 <잭><오! 브라더스><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등에서 소재로 차용된 적이 있지만 사실적인 묘사가 이루어지지 못했는데, <두근두근 내 인생>에서는 상당히 사실적인 묘사가 이루어졌다.

아름이는 유일한 친구인 옆집 할아버지(백일섭)와 늙음에 대한 대화를 주고받는다. 진중한 성격의 아름이는 때로는 대수보다 더 애늙은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직 30대 초반의 대수와 미나는 생계를 위해 열심히 일하지만, 아름이의 병원비를 감당하기도 어렵다. 아름이의 노화가 급격히 진행되어, 고혈압, 당뇨 등을 치료하기 위해 먹어야 할 약들이 한 아름이기 때문이다.

아름이네 가족의 사연이 TV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져 방송을 탔다. 집에서만 지내던 아름이에게, 그것도 한참 예민할 나이인 16살에, 자신의 특이한 용모와 처지를 카메라 앞에 공개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름이는 솔직하고 담담하게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촬영을 무사히 마친다. 방송이 나간 뒤 응원의 글과 후원금이 답지하는 가운데, 방송국에서는 2차 촬영을 권유한다. 그런데 아름이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진다. 의사는 아름이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 젊음이란 무엇인가, 또 늙음이란 무엇인가

방송이 나간 뒤, 아름이는 뜻밖의 소녀로부터 메일을 받는다. 한 번도 젊은이의 몸을 지녀보지 못한 채 몸은 이미 늙어버렸고, 정신 또한 조숙한 애늙은이처럼 차분히 살아온 아름이에게, 생에 처음으로 두근두근한 설렘이 생긴다. 하기야 아름이와 비슷한 나이에 엄마와 아빠는 무람없이 사랑을 나누고 과감하게 아이까지 낳지 않았던가.

<두근두근 내 인생>은 사회적 나이는 16세이고, 신체 나이는 80세인 아름이의 정신연령이 애늙은이의 체념에서 청춘의 열정으로 들뜨는 짧은 환희의 순간을 보여준다. 아름이는 자신과 비슷한 나이에 청신한 몸으로 원 없이 사랑을 나누었던 자신의 부모를 상상하며 판타지에 젖는다. 아름이의 머릿속은 싱그러운 젊음의 기운으로 가득하며, 미지의 소녀를 향한 설렘으로 휩싸인다. 그러나 아름이의 몸은 어찌할 수 없는 늙음의 무게에 갇혀 죽어가는 중이다. 소녀가 보내온 손 사진에 검버섯이 핀 자신의 손을 포개는 아름이의 마음에 깊은 회한이 스민다.

영화는 치명적인 희귀병에 걸린 아름이를 통해 연민을 자아내려는 신파의 길을 가지 않는다. 영화는 아름이라는 주체가 지닌 아이러니를 통해 젊음이란 무엇이고, 또 늙음이란 무엇인지, 그 의미를 선연하게 느끼게 해준다. 젊음과 늙음의 강렬한 대비를 통해 젊음과 늙음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은 영화 <은교>에서도 시도된 적이 있다. 그러나 <은교>의 경우, 노시인이 소녀에게 품은 노욕에 가까운 열망을 추인하듯 그림으로써 거부감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두근두근 내 인생>의 경우, 늙은 몸에 갇힌 16세 소년의 아이러니를 통해 그러한 거부감 없이 젊음의 아름다움과 이를 열망하는 늙은 몸 사이의 비극적 간극을 단숨에 납득시킨다.



◆ 아버지와 아들, 그 지고의 관계

영화가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부모와 자식의 관계이다. 그중에서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주목한다. 영화는 가장 어린 부모와 가장 늙은 자식이라는 아이러니를 통해, 부모-자식 관계의 보편성을 일깨워준다. 즉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나이와는 아무 상관없이 가장 끈끈하고 가장 돈독한 사랑과 헌신과 책임의 관계임을 일러주는 것이다. 사실 누구의 자식으로 태어나 누구의 부모가 되는 대다수의 인류에게, 부모-자식 관계는 인생 전체의 의미를 담고 있는 본질적인 고리이다. 영화는 이러한 의미를 말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짧고 강렬한 스틸 컷 같은 장면으로 관객들에게 각인시킨다.

대수가 오래전 아름이의 임신으로 뛰쳐나왔던 집을 찾아 아버지(김갑수)를 만나는 장면은 구구한 설명 없이 많은 의미를 전해준다. 자신이 가출했던 그 또래의 아들을 둔 아비가 되어 다시 집을 찾은 대수는, 부쩍 늙고 수척해진 아버지를 보고 왈칵 눈물을 쏟는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품는 마음이 무엇인지 온전히 알게 된 대수로서는 미안함이 한꺼번에 몰려왔기 때문이다.

대수는 익명의 후원자가 아버지임을 금세 알아보지만 아무 말도 잇지 못한다. 아버지 역시 아직 젊은 아들이 어떤 책임의 무게를 견디며 살고 있는지 너무 잘 알기에 퀭한 눈으로 서먹함을 삭일 뿐 말이 없다. 아버지와 아들 관계의 보편성은 옆집 할아버지와 그 할아버지가 모시고 사는 치매노인을 통해서도 다시금 확인된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젊음이나 늙음에 관계없이 먹먹하고 묵직할 뿐이다. 영화는 아름이의 시 ‘아버지’를 통해 영화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전해준다.



<아버지>

아버지가 묻는다.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나는 큰 소리로 답한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가 되고 싶어요.
아버지가 묻는다.
더 나은 것이 많은데, 왜 당신이냐고.
나는 수줍어 조그맣게 말한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로 태어나, 다시 나를 낳은 뒤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싶어요.
아버지가 운다.

영화는 단순한 신파에 빠지는 게 아니라, 원작이 지닌 젊음과 늙음의 문제, 그리고 부모 자식 관계에 관한 깊은 성찰을 유머러스한 장면들을 통해 쉽게 전달한다. 영화는 원작을 훌륭하게 각색했을 뿐 아니라, 자연스러운 편집을 통해 관객의 감정선을 유려하게 끌어간다. 특히 강동원이라는 배우의 빛나는 연기력과 그의 잠재력을 충분히 이끌어낸 감독의 연출력이 매우 돋보인다. 아름이가 대수와 밤하늘의 유성을 보던 장면과, 벚꽃이 만개한 날 세 식구가 나들이하던 마지막 회상장면이 오래도록 잔상으로 남는다. 영화는 ‘누군가의 한 시간이 내겐 하루와 같은’ 아름이와 찰나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유성과 벚꽃을 대비시키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 ‘바로 지금’임을 일깨운다. 바로 지금, 당신은 누구와 함께 있는가.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두근두근 내인생>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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