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즈러너’ 이기홍, 한국이었다면 캐스팅 됐을까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메이즈 러너>는 생각보다는 괜찮았던 영화였다. 최근 미국에서 나온 영 어덜트 소설 각색물 중에는 상위권에 속했다. 이 장르에 대한 기대치가 그렇게 높은 편이 아니니, 이건 대단한 칭찬까지는 아니다.

이야기만 따진다면 단점투성이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남자아이들이 매일 구조가 바뀌는 콘크리트 구조 안에 갇힌다는 설정부터 얼마나 인위적인가. 당연히 엉터리 설명을 각오했는데, 실제로 나온 설명은 기대보다 더 엉터리라 기가 막혔다. 3부작 소설이 원작이고 지금 분위기를 보면 속편들도 나올 거 같은데 솔직히 궁금하지도 않고, 기대도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재미있다. 말도 안 되는 설정이긴 하지만 그래도 일단 영상 매체로 옮기면 설정의 바보스러움은 잊힌다. 이제 미로 속에서 살아남으려 질주하는 젊은 아이들의 투쟁만 남는데, 영화는 이 드라마와 액션을 어이없는 막판에 이를 때까지 상당히 잘 꾸려냈다.

기대를 더 벗어났던 건 캐스팅이었다. 여러 차례 이야기했는데, 요새 영 어덜트 소설 각색물의 가장 큰 단점은 캐스팅이다. 아무리 좋은 배우들을 캐스팅해도 비슷비슷한 모델 타입 젊은이들로 부글거리는 영화 속에 집어넣으면 한심할 정도로 재미가 없는 것이다. (그런 영화의 가장 최근 예로는 <다이버전트>가 있다.) 하지만 이번 영화 속 배우들은 의외로 멀쩡했다. 개성이 분명했고 서로와의 합도 좋았으며 존재감도 뚜렷했다.

왜 그랬을까? 일단 성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작가가 이성애자라고 친다면, 평균 수준으로 쓰인 소설에선 대부분 작가와 같은 성의 캐릭터가 더 입체적이다. 작가가 같은 성의 캐릭터에 자신을 반영한다면, 이성의 캐릭터는 욕망의 대상으로 만들어진다. 당연히 후자가 더 얄팍하다. 이 경우의 긍정적인 예로는 <헝거 게임>의 캣니스를 들 수 있다. 물론 최악의 부정적인 예는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악명 높은 채식주의자 뱀파이어 에드워드 컬린이다. <트와일라잇> 시리즈가 나올 무렵 로버트 패틴슨이 발연기로 얼마나 욕을 먹었는지 생각해보라. 하지만 시리즈가 끝난 뒤 그가 출연한 다른 영화를 보면 그는 의외로 멀쩡하다. 당연히 에드워드처럼 극단적으로 대상화된 캐릭터는 배우가 연기하기 힘들다. 패틴슨만의 잘못이 아니었던 것이다.



<메이즈 러너>에는 이런 핸디캡이 없다. 작가가 남자이며 배우 대부분이 그렇고 이들 중 어느 누구도 (아직은) 연애 대상을 연기하지 않는다. 당연히 각각의 의지와 개성은 유지된다. 배우들의 감정이입이 높아지는 건 당연하고.

여기서 일단 이야기를 끝내려했는데, 트위터에서 재미있는 반응을 하나 발견했다. '아쉬운 점: 비주얼 평등의 법칙 좀!' 문장만으로는 의미가 불분명하지만 배우들의 외모가 취향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흠.

왜 그랬을까. 생각해 봤다. 첫째는 정말 개인적으로 취향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럴 수도 있지. 둘째는 문화적 차이였을 수도 있다. 한국인 캐릭터 민호 역의 이기홍은 멋지게 캐스팅된 배우이고 잘 했지만 우리나라에선 연예인 얼굴이 아니다. 아마 그 캐릭터만 우리나라에서 캐스팅했다면 보다 아이돌스러운 곱상한 외모의 배우가 나오지 않았을까. 민호의 상남자 캐릭터와 정말 안 어울렸겠지만.

'아이돌'이라는 단어가 떠오르자 갑자기 모든 게 맞아 떨어졌다. 내가 <트와일라잇>이나 <다이버전트>의 캐스팅에 진저리를 쳤던 건 이들이 모두 '아이돌 캐스팅'되었기 때문이었다. 회사에서 만든 남성 아이돌 그룹은 철저하게 이성 팬들의 수요에 맞추어 만들어진다. 아이돌의 역할 안에서 이건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영화의 캐릭터와 캐스팅이 같은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고 진행된다면 어떻게 될까. 엄청나게 단조로워진다. 영화란 대부분 아이돌 공연이 펼쳐지는 무대보다 훨씬 다채로운 세계를 담아야 하기 때문이다.



남자 아이돌의 외모에 대해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일반적으로 남성 연예인의 외모가 여성 연예인의 외모보다 다양하다고 하고 이는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남자 아이돌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그건 연예계가 일반적인 여성 연예인을 선택할 때 취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엄격함을 통해 남성 아이돌을 뽑고 만들기 때문이다. 당연히 다양성의 폭은 순식간에 좁아진다. 오히려 일반 여성 연예인보다 더 좁아질 수 있다. 체격과 키의 폭도 좁고 헤어스타일과 화장법의 한계도 있을 테니까. 이걸 반대로 말한다면 만약 우리가 일반적인 남성연예인에게 허용하는 여유를 여성연예인의 외모에 적용하면 지금보다 훨씬 다채로운 '미인'들을 갖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는 아이돌의 연기 진출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개별 아이돌은 얼마든지 좋은 배우일 수 있다. 하지만 일원화된 아이돌 캐스팅은 사정이 다르다. 이건 개별 아이돌의 연기 진출은 얼마든지 환영이지만 이들이 패키지로 팔리지는 말았으면 좋겠다는 의미로 읽기 바란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드라마나 영화가 인기 있는 연예인을 파는 수단이 아닌, 복잡미묘하고 다채로운 인간세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예술이라는 걸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겠지만.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메이즈 러너><뉴문>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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