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선, 우리를 뭉클케 한 여배우의 명품 아우라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지금은 억대 자산가지만 80년대에는 인기가수였던 방미의 대표적인 히트곡은 심수봉이 작곡한 <올 가을엔 사랑할거야>다. 하지만 2014년 가을 대중들에게 사랑 받고 있는 여인은 아파트 난방비 비리를 열렬하게 파헤쳐온 중견 여배우 김부선이다.

처음 아파트 부녀회장 폭행 사건으로 뉴스를 탔을 때만해도 그녀가 이렇게 많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으리라 짐작한 이들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김부선은 자신의 억울함을 당당하게 호소한 것은 물론 이 일을 전화위복 삼아 옥수동 H아파트 난방 비리의 진실을 만방에 알렸다.

그 결과 경찰은 H아파트의 난방비 0원이 나온 가구를 조사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수사 범위를 다른 아파트까지 넓히는 추세다. 더불어 그녀가 경찰에 출두할 때 입었던 화려한 원피스의 실체가 5만원임을 페이스북에 밝히면서 여배우로서 명품 아우라를 발산하는 동시에 ‘짜샤’라는 명언까지 남긴다.

이런 김부선에 대한 대중들의 환호는 꽤 열렬하다. 물론 암암리에 이어져온 중앙난방식 아파트 난방비 비리 때문에 억울했던 사람들이 적지 않았을 수도 있다. 혹은 어두운 음지의 배우 같았던 그녀가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떡볶이 아줌마를 통해 대중들과 익히 친숙해진 덕일 수도 있겠고.

그런데 어쩌면 다른 이유일 가능성이 더 높지 않나 싶다. 사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김부선 같은 존재가 드라마가 아닌 현실세계에서 등장하길 바랐던 것 아닐까? 눈치 보지 않고 에두르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경찰과 언론 앞에서 할 수 있는 그런 사람 말이다.

더구나 아파트 난방비 비리 사건은 어딘지 대한민국의 축소판 같이 여겨지는 측면이 있다. 우선 아파트와 난방(혹은 방바닥에 누워 뜨겁게 지지는 것에 대한 갈망)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 자체가 대한민국 사람을 뭉클하게 하는 뜨거운 뭔가가 있다. 한국인의 유전자에는 내 집과 뜨듯한 구들장에 대한 진한 목마름이 새겨져 있을 테니까.



게다가 더 면밀히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이 사회의 어두운 측면이 담겨 있다. 그곳에는 권력화 된 사조직과 그 조직의 비리에 침묵하며 사는 소시민과 그 조직에 저항하다 번번이 좌절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비록 옥수동 H아파트는 아니지만 우리 모두는 그런 공동생활에 일정 정도 몸담고 있음은 틀림없다. 그곳은 학교이거나, 군대이거나, 교수사회거나, 대기업이거나 혹은 정치판일 수도 있다.

슬프게도 우리는 모두 그 공동사회의 부패한 면면을 암암리에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쉽게 움직이지 못한다. 그곳에 발이 묶여 있기에 혹은 큰 소리로 목청 높일 용기가 없기에 혹은 교양 있는 사람들이라 조용히 입을 다문다. 마음 한 구석의 따끔따끔한 부끄러움을 조심스럽게 숨기고서.

김부선의 시원시원한 기자회견은 그런 수많은 소시민들에게 일종의 대리만족을 안겨준 건 아니었을까?

“삼십년 해묵은 관피아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 정말 언론인 여러분들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막말로 여러분들이 해야 할 거, 경찰이 해야 할 거, 제가 하면서 죽는 줄 알았어요. 너무 힘들어서. 그런데 울지 않겠어요. 여러분 관심 많이 가져주시고요. 투명한 사회가 되도록 노력해 주십시오.”

물론 누군가는 <여자가 밤을 두려워하랴?>, <애마부인3> 같은 에로영화에 출연했던 그녀의 80년대 영화배우로서의 경력을 빈정거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 아무리 살색이 훤히 드러나는 에로영화라도 생사람을 벌거벗긴 채 물고문하며 거짓자백을 받아내던 그 시절 밤의 현실보다 더 추잡할까?

다만 희한하게도 김부선의 데뷔영화 제목 <여자가 밤을 두려워하랴?>는 지금의 그녀와 연결되는 끈이 존재하는 것 같긴 하다. 밤은 낭만적이고 아름답지만 종종 진실을 삼키고, 누군가의 비명소리를 재료 삼아, 거짓을 만드는 어둠이기도 하다. 두려움 없이 불투명한 어둠을 깨는 기합소리 “짜샤!”가 반갑게 들리는 건 그래서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연합뉴스TV,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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