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청춘’ 라오스편, 기존 시리즈와 무엇이 달랐나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시작은 그랬다. <꽃보다 청춘> 라오스 편은 기존 여행에 비해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무일푼으로 납치되듯 떠나는 콘셉트는 페루 편에서 한번 선보였던 것이고, 여행지도 모두가 꿈꾸는 비밀스런 곳이라든가 손에 닿기 힘든 장소가 아니다. 일대 파란을 일으켰던 <꽃할배>의 바람은 자연의 이치에 따라 보다 평온해졌고, 페루로 떠났던 중년들은 대중문화계에 자신들만의 지층을 이미 확고히 형성한 스타들이었다. 끝난 지 한참 된 드라마 <응사>의 열풍에 기대기는 애매한 상황. 그리고 함께하는 멤버도 남자 배역중 비중이 가장 컸던 정우나 김성균이 없으니 무언가 조금 허전하다.

그런데 라오스에서 <꽃보다 청춘>이란 프로그램으로 세 젊은이가 뭉치니 하나의 근사한 그림으로 다가온다. 마치 개별적인 별것 아닌 단서들이 모여서 하나의 이야기로 맞춰지는 완성도 높은 추리 소설을 읽는 듯하다. 그래서 팬도 아니고, 딱히 잘 알던 연예인들도 아니지만 세 청춘의 여행기를 계속 찾아보게 된다. 그리고 ‘한낱’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사는 것, 행복함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떠나고 싶은 마음이 솟구친다. <꽃보다> 시리즈 제작진은 다시금 어떤 마술을 부린 것일까?

배낭여행객들의 마지막 천국이라 불리는 라오스는 사실 빈국이다. 편의시설이나 기후 및 볼거리 면에서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낭만적인 여행지가 아닐 수 있다. 출연자들은 그간 보여준 모습이 많아서 잃을 것을 걱정하거나 진지하게 인생에 대해 이야기할 나이도 아니다. 납치되듯 떠나왔지만 너무나 특급스타여서 일탈을 훔쳐보는 재미가 있는 여행도 아니다. 한 명은 해외로 떠난 것 자체가 처음이고, 한 명은 여행이 처음이다. 여행책자를 수험서처럼 다루는 유연석의 태도는 그 또래의 보편적인 여행객의 모습이다.

특별한 사건도 없다. <꽃보다> 시리즈의 전매특허인 ‘이들은 곧 있을 대참사를 알지 못했다’는 식의 반전 구성이나 특별한 갈등이 도드라지지 않고, 유희열을 ‘견’으로 만들거나 할배들과 짐꾼 캐릭터를 부여했던 전작들에 비해 캐릭터 잡고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스토리텔링도 예전보다 자제하는 듯하다.



그런데 보고 있자니 셋이서 아무런 불평 없이 뭉쳐서 잘 먹고 잘 노는 이야기에 동화된다. 양념이 덜된 것 같이 심심한데, 이들의 웃음과 진정 즐거워하는 표정 속에서 가슴을 탁치는 무언가가 전해져온다. 특별한 욕심이 없다는 손호준의 인터뷰와 그와 절친인 유연석과의 우정은 라오스라는 여행지와 잃어버린 조각처럼 딱 들어맞는다.

라오스로 떠난 <꽃보다 청춘>을 생각하면 첫 번째로 떠오르는 것이 ‘참 착하다’다. 라오스를 ‘시간은 느리게 흘러가고 욕망조차 멈춘다’고 표현한 자막처럼 풍경도 수수하고 사람도 풍경처럼 순수하다. 상경해 10여년을 무명으로 지내야 했던 유연석과 송호준은 성공에 대한 절실함은 누구보다 뜨겁지만, 막장드라마 속 주인공들과 같은 조급함과 결핍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이돌인 바로는 어린 나이에 화려하게 사는 만큼 인생의 고민을 일찍이 품고 있다. 그래서 형들과 떠나온 이번 여행에서 아이돌 바로의 역할은 잠시 놓아두고 23살 학생이 된다. 이 순백에 가까운 청년들은 역시나 착해서 사랑스럽다. 자신들이 타던 자전거와 제작진 오토바이를 바꾸자고 때 쓴 것이 맘에 걸려 “얘들도 연예인이었어”라는 소리를 들을까봐 하루 종일 우울해져서 전전긍긍하던 때가 이번 라오스편의 최대 위기였다.

할배들이나 누나들이 다녀온 멀고 비싼 여행지가 아니어도, 중년들이 다녀온 페루의 웅장하고 이국적인 풍경이 아니더라도, 라오스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여행지다. 연예인이라기보다 동네 청년 같고 대학생 친구들 같은 이들이 불평 없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무언가 힐링이 된다.



많이 가져야 행복할 것 같아서 악전고투했던 시간을 되돌아보게 하고, 먹고 살기 바쁘다며 미뤄뒀던 여러 가지들을 생각나게 한다. 23살 나이에 비해 큰돈을 만진 바로가 차를 사고 인생을 즐기는 것보다 가족부터 안정시켜야 한다는 말, 31살이 되어서야 이제 겨우 용돈을 드릴 수 있는 처지가 되었다는 유연석의 한마디, 얼마 전까지 라면으로 며칠을 때워야 했다는 손호준의 지난 세월 이야기를 시간과 욕망이 멈춘 곳, 라오스에서 들으니 조금 더 깊숙이 다가온다. 이것이 라오스편에서 전해지는 마음이다.

<꽃보다 청춘> 라오스편은 기존 시리즈와 달리 연예인의 일상의 괴리 체험이 아니다. 깨닫고 오는 여행이 아니라 있는 청춘이 있는 그대로를 확인하는 자리다. 그들의 우정도 부럽고 여정도 부럽지만, 건강한 청춘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가장 부럽다.

가진 게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은 과장일 확률이 크다. 그러나 무언가를 찾지 못했다는 조급함, 높은 곳에 오르지 않으면 떨어진다는 두려움, 허황된 여러 욕망을 좋아보이게 만드는 욕심을 절실함으로 포장해 성공의 열매를 따기 위해서는 아파야 한다는 우리 사회에 이 세 친구의 여정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한다. 반듯한 세 젊은이가 여행 중에 드러내는 삶을 대하는 태도와 착한 심성은 그 자체가 위안이다. 그래서 이번 여행이 더욱 따뜻하고 영적으로 다가온다. 이 세 친구들은 여행을 떠나는 것도 그랬듯 전혀 의도치 않았겠지만 말이다.

<꽃보다>시리즈 제작진의 마술은 바로 여기에 있다. 메시지를 예능 콘텐츠에 새겨내는 솜씨는 굳건한 팬층을 확보한 <무한도전>이든 세대별 콘텐츠를 뽑아내는 JTBC 사단이든 그 누구보다 탁월하다. 매번 캐스팅으로 반은 먹고 들어갔지만 이번엔 그것도 놓았다. 그리고 하고픈 이야기를 정면으로 꺼내들었다. 청춘에 대한 로망, 희망, 그 다음 하고픈 말이 라오스편에 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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