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과 진실공방 벌이는 제시카의 심대한 착각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제시카의 소녀시대 탈퇴(퇴출)는 실망스럽다. 퇴출인지 탈퇴인지는 입장 차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쨌든 더 이상 소녀시대에 제시카가 없다. 데릭 지터 같은 유명 스포츠 선수가 은퇴하면 한 시대가 또 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듯 제시카의 시끌벅적한 탈퇴도 2000년대 후반을 상징하던 소녀시대의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단순한 멤버 탈퇴 이상의 파장이 일수밖에 없다. 거산 같던 소녀시대도 그렇게 됐다는 것은 팬이나 아이돌 후배들만의 수다거리가 아니다. 우리에게도 ‘그러면 그렇지’ 따위의 생각을 읊게 되는 씁쓸함을 입에 머금게 한다. 덧붙여, 거의 모든 멤버들(그렇지 않은 멤버들은 미안하다)이 공개 연애를 하고 있다지만, ‘소녀’ 시대가 결혼과 관련해 탈퇴한다는 현실이 급작스럽기도 하다.

SM과 제시카의 난타전을 지켜보면서 뭐가 어떻게 됐고, 누가 잘못했는지를 여기서 판단하지 않겠다. 이미 우리는 이 건과 관련한 많은 이야기들을 접했다. 선후 관계와 잘잘못을 추정하는 건 우수한 취재력을 갖춘 여러 매체를 통해 판단할 수 있고, 온갖 루머와 드러난 사실을 집념어린 추적을 통해서 조합하고 정황을 조목조목 분석한 여러 게시글을 통해서 각자가 추측할 수 있다. 이 정도 소스면 뭐 민사 소송을 떠맡아도 될 수준이다. 그런데 우리가 사건을 수임한 변호사처럼 이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고 싶어 하는 건 할 일이 없어서가 아니다. 제시카와 관련된 지금 이 상황이 우리 마음을 확실히 불편하게 한다. 그래서 찾아내고 싶은 것이다. 그 불편함이 무엇인지.

아이돌 그룹은 기획사의 트레이닝을 통해 ‘만들어진’ 일종의 일시적인 프로젝트 사업이다. 그러다 보니 태초에 어느 순간 이후 탈이 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회사가 리스크와 비용을 떠안고 상품화를 하는 까닭에 처음에는 연예인이 비교적 열악한 조건으로 계약하지만 일정기간 회사가 투자금을 회수하고 나면 입장 차이가 발생한다. 허나 아이돌 기획사들은 지금까지 성공시키는 데만 집중했지 지속가능한 모델을 발전시키고 구축하는 데는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럴 시간에 버리고 새로운 기획을 하는 게 이 사업의 남는 장사였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그룹이 5년 전후로 해체나 분열을 했고, 대표적 기획사인 SM도 JYJ 같은 슬픈 사례를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여러 소속 외국인 연예인과 불화를 겪었고, 최근에는 설리, 제시카까지 스타급 소속 연예인과 관련된 내홍을 드러냈다. SM은 마음으로 다가가기 보단 무섭게 굴다가 일이 터지고 나면 관계 회복에 서툰 전형적인 한국 아빠의 이미지로 굳어지고 있다.

아이돌 그룹의 유통기한에 예외가 없음을 보여준 이번 사건을 보면 아이돌 산업을 관장하는 어른들의 자성이 필요해 보인다. 마지막이 아름답지 못하면, 함께했던 모든 시간이 부정된다. 예능 프로그램도 정서이자 브랜드인 시대에 팬심으로 움직이는 산업에서 지금과 같은 생산과 관리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성공 이후 단계에서 지속가능한 모델이 없다는 것은 장기적으로 아이돌 문화를 좌초시킬 가장 위험한 암초다. 큰형님인데도 이런 일을 끊임없이 겪는 SM은 그 책임에서 자유롭기 어려워 보인다.

그런데,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눈총은 제시카 쪽으로 더 쏠린다. 그는 올해 한 토크쇼에 출연해 “결혼해도 소녀시대로 함께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미 선배 그룹들은 물론이고 카라와 같이 동시대에 활동한 그룹들도 난리를 겪은 터였다. 그걸 이 상징적인 그룹이 모를 리가 없고, 그에 대한 고민을 멤버들 모두 충분히 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 차례 내보였다.

그러던 제시카가 9월말 중국의 SNS 서비스로 자신이 퇴출됐다는 사실을 터트린 후, 지난 1일 SM이 아닌 자신의 홍보 대행사를 통해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전선을 회사뿐 아니라 멤버들에게로 확장한다. 자신은 열심히 했으나 자신이 사업을 한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나가 달라는 퇴출 통보를 받았고, 멤버들도 갑자기 태도를 돌변해 자신을 몰아세웠다고 억울함을 하소연한다.



보도된 사실과 제시카의 공식입장을 종합해 보면 정황상 갈등은 9월에 폭발한 걸로 보인다. 제시카의 브랜드 블랑(Blanc)의 공식 론칭은 8월이었다. 제시카의 호소와 숨겨진 여러 일화들을 떠나서 사건의 전후관계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론칭하고 문제가 생긴 거다. 또한 소녀시대의 중국 사인회 일정과 개인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제시카의 귀국 일정 등을 따지지 않고 본다고 해도 입장 차에 대한 확인만 있을 뿐, SM이 발표했던 애초 탈퇴 계약설에 대한 반박이 없다.

억울함과 부당함을 집중 부각하는 이유는 맞설 수 있는 마지막 무기, 기댈 수 있는 마지막 신전일 때 그 절박함을 대중에 호소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짧은 전문을 읽으면 가장 눈에 띄는 건 억울함 보다 대문자로 쓴 브랜드 상호 ‘BLANC’이다. 공식 입장문에 한글 표기도 아니고, ‘제가 준비한 사업’이라든지 다른 완곡한 표현을 쓰지 않고, 브랜드명을 제3자를 언급하듯 반복하는 게 특이하다. 얼마나 대중의 마음을 샀을지는 모르겠지만 브랜드를 대중과 언론에 각인시킨 것만은 확실하다.

탈퇴 혹은 퇴출을 놓고 소속 연예인 제시카가 ‘공룡’ 같은 SM에 선제공격을 날렸다. 멤버도 집어넣었다. 법정에 가기 전 할 수 있는 가장 추한 모습으로 머리채를 잡고 있는 꼴이 됐다. 그러면서 인지도를 국가대표급으로 높였지만, 여기서 진실이 무엇이든 제시카가 착각한 것이 있다. 지금 당장 밟고 높은 곳에 서 있다고 자신을 그 자리에 올라갈 수 있도록 도운 계단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 사업도, 인생도 좋고, 개인적으로 억울할 수 있지만 지금 이슈를 확전시키는 모양새와 방식이 소녀시대와 자신을 좋아한 팬들을 위한 것으로는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장외 난타전을 시작한 제시카의 일련의 행보는 소녀시대에 점점 더 큰 상처를 입히는 행동들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그녀의 호소에서는 그동안 소녀시대와 제시카를 좋아했던 팬들에 대한 고려가 느껴지지 않는다.



제시카는 소녀시대의 후광이 없었더라도 미모와 매력으로 지금의 연인과 연애하고 결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제시카의 사업은 ‘소녀시대 제시카’라는 브랜드가 없으면 애초에 시작하기 어려운 일이다. 홍콩의 편집 백화점 레인크로포드는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매장이다. 좋은 조건만 제시하면 상품 입점하는 구멍가게도 아니고, 유행에 민감한 10대를 위한 로드숍도 아니다. 그런 곳에 업계 경력이 전무한 20대 신인 디자이너 브랜드가 대대적으로 입점한다는 것은 잔디 깔고 입학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소녀시대 브랜드 외에 설명하기 힘들다. 그리고 그 브랜드 가치는 ‘냉면’을 따라 부르며 소녀시대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좋아했던 팬들이 만들어준 것이다. 그들이 제시카의 계단이 되어준 거고 브랜드를 보장해주는 거다. 제시카를 향한 눈총은 개인 사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탈퇴를 해서 쏟아지는 게 아니란 말이다. 아이돌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팬들 때문이다. 당장 손해 볼 것 같더라도 아이돌이기에, 다른 멤버들을 위해 지켜야 할 도가 있다. 그런데 욕심 많은 기획사처럼 간혹 연예인들도 그런 사실을 잊는다.

소녀시대는 이 난리 속에서 상처를 입었다. 치유를 하는 과정에서 더욱 더 큰 유대감이 발휘될지, 점점 면역력이 쇠퇴될지는 남은 멤버들의 몫으로 남김을 당했다. 제시카는 이 난리를 통해서 ‘블랑’을 남겼다. 그 어떤 광고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게 됐다. 대신 아이돌로 쌓은 브랜드는 법적 보호 못 받는 권리금으로 다 일시 지불했다. 지금과 같은 방식의 이전투구로 쌓은 인지도가 사업에 도움이 될까? 아무리 제품에 자신이 있어도 한번만 뒤를 돌아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계단 없이는 올라가기도 힘들고 내려가다간 다칠 수도 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M엔터테인먼트,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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