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의 대모 임성한 작가가 늘 이기는 까닭

[엔터미디어=이만수 기자] 역시 임성한 작가다운 시작이다. 새 드라마 MBC <압구정 백야>는 임성한 작가다운 파격으로 문을 열었다. 승복과 무복 그리고 한복을 입은 여성 셋이 클럽에서 그 옷을 벗어던지고 섹시댄스를 추는 장면으로 첫 단추를 끼운 것. 어떤 격식을 깨버리는 이 첫 장면은 마치 드라마라는 틀 자체를 파괴해 마음껏 유린했던 전작 <오로라공주>의 잔상이 떠오른다.

첫 회에서부터 올케에 대한 시누이의 짜증을 유발하는 시집살이가 등장했고, 부모를 모두 여의고 살아온 백야(박하나)가 자신의 엄마 사진을 보는 장면이 조장훈(한진희)이 똑같은 사진을 보는 장면으로 이어지면서 그녀와 부모 사이에 무언가 숨겨진 사건이 있음을 암시했다. 부모가 자식을 버렸든, 아니면 어떤 말 못할 사정이 있었든 이런 초반의 설정은 향후에 벌어질 갈등 상황들을 미리 예고하고 있다.

즉 달라졌다고 강변하고, 이번 드라마는 다르다고 말하지만, 이미 첫 회에 역시 다르지 않은 ‘임성한표 드라마’를 확인한 셈이다. 사실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를 그 내용을 갖고 얘기하는 건 의미 없는 일이다. 그것은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가 하나의 작품이라기보다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욕동시키는 하나의 실험 혹은 퍼포먼스 같은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사실 드라마가 시작되기 전 임성한 작가에 대해 형성된 논란마저도 어떤 면에서는 드라마의 한 부분처럼 보인다.

사실 지난 <오로라공주>가 방영될 때, 심지어 작가 퇴출 운동까지 벌어졌던 상황이라 임성한 작가가 이렇게 아무런 문제없이 MBC 일일드라마로 돌아올 것이라고 예상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웬걸? 그녀는 그 악명에 힘입어 오히려 손쉽게 일일드라마로 들어왔다. 일단 그녀가 드라마를 시작한다는 것만으로도 갖가지 논란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그 논란은 관심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짜증이 나면서도 ‘그래 도대체 이번엔 어떤 식일까’하는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라는 표현은 그래서 정확하게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를 설명해준다. 심지어 드라마가 시작하기도 전에 우리는 이미 그녀의 작품이 막장이라고 판단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 임성한 작가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이번 <압구정 백야>는 아예 간담회조차 열지 않을 정도로 그 내용을 꽁꽁 싸매 놓았다. 그러니 이름만으로도 마음을 어지럽히는 그녀의 드라마를 확인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역시 예상대로 첫 회 시청률이 9.9%로 괜찮은 성적을 냈다. 그리고 그 첫 회를 본 사람이라면 이미 시작된 짜증을 유발하는 캐릭터들로 인해 일종의 낚시질에 걸려들게 된다. 막장 막장 하면서 ‘그런 걸 왜 보냐’고 토로하지만 바로 그 토로 때문에 우리는 낚시질에 걸려드는 셈이다. 막장의 대모, 임성한 작가가 논란 속에서도 늘 건재한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논란마저도 시청률로 이끌어내는 데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청률은 막장마저 허용하는 근거로 작용한다.

결국 임성한 작가의 문제는 작품의 문제를 넘어서 방송사의 윤리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시청률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과연 방송사는 이런 막장을 선선히 허용해도 되는 것일까. 시청자를 위한 방송이라고 말하면서도 시청자의 짜증을 원료로 해 얻어낸 시청률로 수익을 얻어가려는 방송의 태도는 결코 용납되기가 어렵다. 왜 우리의 짜증이 저들의 이익이 돼야 하는 것일까.

이만수 기자 leems@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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