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보자’, 정권의 비호와 압력을 생략해 아쉽지만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제보자>는 9년 전 대한민국을 강타한 과학스캔들 황우석 논문조작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이다. 영화는 당시 이 사건을 폭로하였던 MBC <피디수첩>의 한학수 PD와 내부고발자였던 류영준 연구원을 모델로 두 명의 주인공을 삼고, 이들을 중심으로 서사를 꾸려나간다.

영화는 한 대학 강당에서 인간줄기세포 연구로 노벨상 수상이 유력하다는 이장환 박사(이경영)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감동적인 연설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한국인의 손재주에 대한 언급이 곁들여진다. 제목이 나온 뒤, 영화는 황당한 의료사고를 토로하는 제보자를 만나는 윤민철 PD(박해일)를 비춘다. 다름 아닌 난자매매에 관한 것이었다. 윤민철 PD는 불법으로 매매된 난자가 불임클리닉을 거쳐 이장환 박사의 연구실에 공급된다는 사실을 포착하고 취재에 착수한다.

당시 이장환 박사는 과학영웅으로 칭송받으며 국가적인 지원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연구에 흠집을 내는 취재와 보도는 상당한 부담을 지니는 것이었다. 시사교양국 팀장의 허용으로, 비밀리에 취재를 진행하던 윤민철 PD는 한 제보자가 프로그램 게시판에 올린 글을 발견한다. 윤민철 PD와 첫 대면한 제보자 심민호(유연석)는 진지한 얼굴로 “진실과 국익 중에 무엇이 우선한다고 생각하는지”묻는다. 윤민철 PD가 “진실이 궁극적으로 국익에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하자, 심민호는 비로소 깜짝 놀랄만한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이장환 박사가 만들었다는 11개의 인간체세포 줄기세포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는 심민호의 제보로 윤민철 PD 팀이 이장환 박사의 거짓을 추적해나가는 과정과 이들의 추적이 이장환 박사와 그를 믿는 사람들에 의해 역풍을 맞아 위기에 봉착하는 모습을 아슬아슬하게 담는다. 관객들은 그 과정과 결말을 어느 정도 알고 있으면서도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적인’ 실화가 지닌 묵직한 재미에 빠져든다.



◆ 그해 무슨 일이 있었나

황우석 사건은 아직도 많은 관객들의 뇌리에 남아 있는 사건이다. 국가적 영웅으로 추앙받던 황우석 박사에 대한 의혹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 시점을 2005년 11월 즈음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2004년 황우석 박사팀의 연구원이었던 류영준이 처음 참여연대에 난자윤리문제를 제보해 온 것부터이다. 제보를 받은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는 조용히 조사에 착수하였다.

그 후 황우석 박사팀을 떠난 류영준은 2005년 5월에 <사이언스>지에 황우석 박사의 두 번째 논문이 발표되고, 성공에 도취된 황우석 박사팀이 전신마비 소년에게 줄기세포를 주입하는 임상시험을 계획하고 있다는 뜨악한 소식을 접한 뒤, <피디수첩>게시판에 글을 올린다. 2005년 6월 <피디수첩>은 참여연대의 공조 하에 줄기세포의 진위를 가리기 위한 탐사취재를 진행하였고, 그해 가을 민주노동당은 국정감사를 통해 황우석 박사팀의 난자문제와 연구비국비지원 내역을 문제 삼았다.

하지만 당시 황우석 박사의 연구를 지원하는 정부와 국민들의 신뢰는 확고했다. 황우석 박사는 <피디수첩>의 취재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과 그 취재가 연구원이었던 제보자에 의한 것임을 언론에 흘렸다. <피디수첩>이 방송되기도 전에 제보자 류영준에 대한 언론과 시민사회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11월 13일 새튼 박사가 난자체취 과정의 윤리를 문제 삼아 황우석 박사와 결별선언을 하자, 국내 여론은 “섣부른 국내언론이 빛나간 공명심으로 애국 과학자를 음해하여 국익을 팔아먹었다”는 비난으로 들끓었다. 마침내 11월 22일 불법난자제공을 고발한 <피디수첩>의 첫 방송이 나가자, ‘국익을 저버린 행위’라는 애국주의적 비난이 쇄도했다. 진실과 생명윤리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미미했다.



황우석 박사는 기자회견을 열어 난자문제를 시인하였지만, 동정적인 여론을 얻는데 성공하였다. 황우석 박사를 지지하는 촛불시위가 시작되었고, 대통령 기고문을 통해 <피디수첩>이 난자문제 뿐 아니라 논문의 진위를 검증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여론은 더욱 들끓었다. YTN이 <피디수첩>의 인터뷰 과정에 강압이 있었다는 의혹을 터뜨리자, 화두는 보도윤리문제로 옮겨 붙었다. 여론에 밀려 문화방송은 사과하였고, <피디수첩>의 2차 방송은 무기한 연기되었으며, 프로그램 자체가 존폐위기에 빠졌다.

하지만 분위기는 다시 역전됐다. 젊은 과학자들의 모임인 브릭(BRIC)에서 2005년도 논문의 줄기세포 사진과 DNA지문이 조작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황우석 박사의 연구에 꾸준히 이의를 제기해왔던 <프레시안>이 이를 기사화했다. 마침내 12월 15일 노성일 미즈메디 병원장은 줄기세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하였고, 2차 방송이 전파를 탔다. 2006년 1월 서울대 조사위원회는 “핵이식에 의한 체세포 줄기세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진실이 상당부분 밝혀진 이후에 가진 황우석 박사의 기자회견은 사과라기 보다 읍소에 가까웠고, 이후로도 황우석 박사를 옹호하는 보도와 여론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 영화화 과정에서 단순해진 구도

영화 <제보자>는 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영화로 옮기면서, 윤민철 PD를 중심으로 서사를 풀어나간다. 그가 제보자를 만나고, 조연출과 함께 심층취재를 해나가고, 방송국 상관과 동료를 설득해나가고, 거대한 여론의 역풍을 맞는 과정을 비교적 매끄럽게 그려나간다. 영화로 옮기면서 참여연대나 <프레시안>등의 우군들의 존재가 생략되고, 윤민철 PD가 엘리트이자 영웅의 모습으로 홀로 모든 짐을 맡은 채 주로 방송국 내부에서 싸우는 것으로 구도를 단순화 한 것은 아쉽다. 그러나 <또 하나의 약속>에서도 ‘반올림’이란 단체가 생략된 채, 노무사 개인의 투쟁인양 그려졌던 것과 비교해보면 이해 못할 정도는 아니다.

또한 브릭의 사진판독은 사건의 분기점으로 큰 역할을 하였으며 무명인들의 연대를 보여준 사건이었지만, 영화는 이를 조연출의 공로를 슬쩍 치환하면서 가볍게 다루고 넘어간다. 당시 상황을 돌이켜보면, 조작을 밝혀내는 과정이 영화에서 그려진 것보다 훨씬 어렵고 긴박했으며 자칫하면 끝내 밝혀내지 못할 뻔한 아찔한 순간들이 있었다. 그러나 영화는 이러한 과정의 긴장들을 훨씬 경감시켜 보여준다. 아마도 과학을 다루어야 하는 대중영화에서 문제해결과정이 너무 무거우면 관객들이 흥미를 잃을까봐 부담을 덜기 위한 조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당시 진실을 전하려는 이가 맞닥뜨린 까마득한 절망감과 질식할 것 같은 공포를 좀 더 살렸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영화에서 가장 큰 빈틈은 정부의 압력이 실제보다 축소되어 그려진 것이다. 당시 황우석 사건은 단순한 과학 스캔들이 아니라, 정치권력과 과학권력의 유착에 의해 가능했던 사건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황우석 박사 연구실을 첫 방문하면서 “동북아 시대, 2만 달러 시대의 가능성과 희망을 확실히 발견했다”고 말하였다. 생명공학을 국가경제의 신 성장 동력으로 본 것이다. 정부차원의 엄청난 지원과 특혜가 쏟아졌으며, 2005년 10월 19일 세계줄기세포허브 개소식에 참가한 대통령은 "생명윤리에 관한 여러 논란이 훌륭한 과학적 연구와 진보를 가로막지 않도록 잘 관리해 나가는 것이 정치하는 사람들이 할 몫"이라 발언하였다. 난자문제가 막 터져 나오던 시점의 발언이었다.

청와대와 국정원을 통해 <피디수첩>의 취재내용을 충분히 파악했던 12월 5일에도 대통령은 “이 정도에서 정리되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브릭의 폭로로 진실이 밝혀진 이후에도 대통령은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대통령뿐만 아니라 당시 여야 정치인들이 황우석 박사를 맹목적으로 옹호했던 행보는 가히 기록적이다. 영화는 이장환 박사가 사회적인 추앙을 받고 있으며, 문제가 불거지자 방송국 사장실에 기관원이 나타나서 사장을 협박하는 정도로 정치권의 압력을 그린다. 그러나 사건의 본질을 알기 위해서는 정권차원의 비호와 유착을 더 구체적으로 그릴 필요가 있었다.



◆ 타자에 대한 비난이 아닌 우리에 대한 자성을 촉구하다

영화의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가장 높이 평가하고 싶은 점은 황우석 박사를 그린 방식이다. 이런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빠져들기 쉬운 유혹은 그를 천박한 악역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그러한 방식을 취하지 않았다. 영화는 그를 상당히 품위가 있는 인물로 그린다. 그가 제보자의 아이를 보살필 때나 장애인을 대면할 때, 그의 눈빛은 온화할 뿐만 아니라 신실하다. 그가 품위를 잃는 순간은 인터뷰에 응한 연구원의 뺨을 때리는 단 한 순간뿐이다.

그는 정치적인 수완과 언론 플레이에 능한 인물이지만, 그의 허위를 아는 사람조차 마지막까지 그를 믿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황우석 박사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와는 무관하게 영화가 이장환 박사를 이렇게 그린 것은 영화적 태도로 볼 수 있다. 영화는 그를 많은 사람들의 열망에 떠밀리고 스스로 도취되어, 멈추어야 할 때를 놓쳐버린 안타까운 과학자로 그리며, 그의 회한을 담는다. 이는 그에게 여전히 생각하고 반성할 수 있는 주체의 자리를 내어주고자 하는 영화적 태도이다.

사실 <제보자>가 당시 정권의 개입에 대한 자세한 묘사를 줄이고, 이장환 박사를 회한에 가득 찬 과학자로 그리는 건 일관된 목적에 의한 것이다. 요컨대 영화의 목적이 타자에 대한 비난이나 조롱이 아니라, 우리에 대한 자성을 촉구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정권의 개입을 구체적으로 그리는 것은 사건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일이지만, 정권이 바뀐 지금 그러한 묘사는 정치일반이 아니라 과거 특정 정치세력에 대한 비판으로 읽히기 쉽다. 이는 영화의 목적인 ‘반성’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타자에 대한 ‘비난’이 되기 때문에 자세한 묘사를 생략한 것이다.

영화가 가장 주목하려는 것은 ‘국익의 논리에 경도되어 맹목적으로 변한 대중의 초상’이다. 영화에서 신념에 차 있던 윤민철 PD가 가장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 장면은 촛불을 든 박사의 지지자들을 만났을 때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자신이 목표로 삼은 ‘대중(우리)의 반성’을 제대로 성취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9년이나 지난 사건이지만 대중들은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감정의 편린을 가지고 있으며, 국익에 열광하는 대중의 민낯을 제대로 비추기에는 디테일한 만듦새가 다소 부족하다. 그러나 여전히 이 영화의 태도와 의도를 지지하는 편이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제보자>스틸컷]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