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언맨’, 차라리 드라마 아닌 영화 만들었다면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천둥이 치고 비가 쏟아지는 밤 분노하면 등짝에서 칼이 돋는 남자가 있다. 그 남자를 주인공으로 한 KBS 수목드라마 <아이언맨>은 다소 난감하다. 이 드라마를 재미없는 졸작이라고 무시하기에는 공들인 부분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꽤나 독특하면서 흥미로운 영상과 정교한 미장센의 매력을 보여준다.

그런 까닭에 단순히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종종 위트 넘치고 가끔은 시적인 분위기마저 풍긴다. 시골풍경을 찍어도 단순히 시골풍경이 아니라 이 드라마는 동화 속의 정경처럼 흥미롭게 잡아낸다. 시골버스의 풍경, 배추밭의 노인들, 늦은 밤의 반딧불을 잡아내는 장면 같은 것들은 말이다. 또한 대도시의 뒷골목을 찍어도 멋들어진 회화 작품 같은 구도로 잡아내는 솜씨가 있다. 순간순간 들어가는 CG 역시 유치한 듯 센스 있다. 이야기의 흐름 또한 전형적이지는 않지만 맥없이 둥둥 떠다니는 서사의 조각들은 <아이언맨>이 추구하는 분위기와 궁합이 잘 맞는 편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작품이 극장에서 집중해서 보는 2시간짜리 영화가 아니라 수목드라마라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아이언맨>은 드라마의 문법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산만하고 느슨해도 아름다운 영화는 종종 매니아들의 사랑을 받겠지만 드라마는 산만하고 느슨해지는 순간 채널이 돌아간다. 그리고 채널이 돌아갔다 돌아와도 대략의 맥락을 이해할 수는 있는 드라마들과 달리 <아이언맨>은 한번 흐름을 놓치면 다시는 보고 싶은 마음이 쉽게 들진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대중문화 맥락 속에 <아이언맨>이 갑자기 뚝 떨어진 천둥벌거숭이 같은 작품은 아니다. 드라마 특유의 잔혹동화나 블랙코미디 같은 부분에서 팀 버튼의 영화들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과거 80~90년대의 어떤 정서들과 맞닿는 부분이 존재한다.

이 드라마는 생각보다 서정적이다. 화가 나면 어깨에 칼이 돋는 재벌가의 아들 주홍빈(이동욱)은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어느 날 첫사랑 그녀가 낳은 자신의 아이 창(정유근)과 그 창 옆에는 조금 정신이 나간 듯 웃는 기괴하게 활기찬 여자 손세동(신세경)이 있다. 그리고 드라마는 스스로 분노를 조절할 줄 모르고 비서 고비서(한정수)나 두들겨 패는 홍빈이 두 사람을 통해 점점 변화해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예상한다. 물론 세 사람이 쉽게 행복해지진 않을 것이다. 등짝에 칼이 돋는 아이언맨으로 변신했을 때 무언가 사고가 터지긴 할 터이니 말이다.



하여간에 드라마의 중반에 접어든 지금 <아이언맨>의 인물들은 지금 이 시대의 인물들보다 배창호 감독이 전성기 시절에 만들었던 멜로 영화들과 통하는 부분들이 있다. 특히 살아 있는 인물이라기보다 어딘지 가상의 성스러운 여인처럼 느껴지는 세동의 존재가 그러하다.

하지만 이 작품과 탯줄로 직접 이어진 작품들은 이명세 감독의 영화들이 아닐까 한다. 영화 <개그맨>에서 시작해 강동원이 소설가로 출연했던 ‘M’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들은 서사가 뚜렷하지만 않지만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들었던 유려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영상미를 보여주었다.

더군다나 <아이언맨>에 종종 등장하는 대사들은 이명세 감독의 영화에서 보여주는 대사들과 비슷한 톤의 것들이 있다. 이명세 감독의 영화에서 인물의 대사는 맥락과 맞지 않게 엉뚱하고, 종종 반복되며, 특유의 리듬이 있다. 이 드라마에서도 주요 인물들 특히 홍빈과 세동이 자꾸만 자신이 했던 말들을 반복하고, 덧붙이고, 다시 수정하곤 한다. 가끔은 드라마의 맥락과 상관없이 어리둥절할 정도로 뜬금없는 말들을 내뱉고 혼자서 깔깔거리거나 분노한다.

이 뜬금없음과 어리둥절함을 즐길 수는 있는 시청자라면 <아이언맨>은 즐거울 것이다. 혹은 얼굴의 상처를 보여주며 이걸 어떻게 지우냐고 묻는 홍빈에게 “신나요, 신나로 지우세요.” 라고 대답하는 세동과 “신나? 뭐가 그렇게 신나.”라고 버럭 화를 내는 주홍의 대사가 재미있게 느껴진다면 아마 이 드라마는 흥미로울 것이다. 무엇보다 이명세 감독의 영화 <개그맨>이나 ‘M’을 좋아한다면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시적인 장면들에 빠져들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아이언맨>에 채널을 고정시키기가 쉽지 않다.



물론 거기에는 드라마의 주인공 홍빈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고 버거워하는 주연배우 이동욱의 연기 또한 한몫한다. 다만 어떤 젊은 남자배우라도 이 등짝에 칼이 돋는 성격 괴팍한 남자를 연기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신세경은 나쁘지 않다. 의외로 이런 고전적이고 순수한 ‘광년’ 캐릭터와 잘 어울린다. 매번 얻어맞는 비서 고비서 한정수는 의외로 이런 종류의 작품이 지닌 개그감을 잘 알고 소화해낸다. 홍빈의 유모 윤여사를 연기하는 이미숙과 홍빈의 아버지 주장원을 연기하는 김갑수는 그 등장만으로 존재감이 있지만 분량이 적다.

우는 장면이 너무 많이 등장하나 모든 게 다 비치라고 ‘창’이란 이름을 갖게 된 창을 연기하는 아역 정유근은 어쩌면 이 드라마와 가장 어울리는 연기를 하고 있다. <아이언맨>은 알고 보면 칼이 돋는 드라마가 아니라 옹알거리는 드라마기 때문이다. 그 옹알거림에 귀를 기울이고 집중할 마음이 있는 이들에게 <아이언맨>은 창처럼 투명하게 다가올 수도 있는 작품이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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