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투3’, 서태지를 물어뜯으라는 건 아니었지만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해피투게더> 역사상 최고의 게스트. 홍보활동의 1번지 <해피투게더>가 최초로 단독 캐스팅을 따냈다. 화제는 오랜 <해투>역사상 최고였다. 서태지의 시대를 잠시나마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하거나 잠시 추억에 젖어들었고, 뉴스와 루머로만 접한 이들에겐 서태지의 시대를 알릴 수 있던 자리였다. 나훈아를 제외한다면 가장 신격화된, 팬들이 ‘대장’이라 부르는 가장 신비로운 연예인의 인간적인 면모와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그런데 진짜 재밌었나? 게스트에 대한 호감과 관심을 제하고 본다면 <해투>는 지난날 숱하게 명멸했던 1인 토크쇼의 코스에서 단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았다. 방송에 능하지 못한 서태지를 배려해 먼저 유재석과 단둘이 분위기를 달구도록 한 선택은 결과적으로 그다지 신통치 않았다. 소소한 잡담, 육아 이야기, 이은성과의 결혼 스토리 등 그다지 관심 갖지 않을 이야기를 하면서 어색한 분위기를 띄우느라 MC가 너무 애처롭게 분투했다.

유재석은 분위기를 몰아가기 위해 속사포처럼 준비된 질문을 이어붙이고 <나는 남자다>를 진행할 때처럼 강박적으로 톤을 높이고 공회전을 할수록 수다의 피치를 올렸다. 물론, 태도는 매우 조심스러웠다. 잠시 후 절친인 김종서가 등장해서는 마찬가지로 매우 조심스런 태도로 20여 년 전부터 최근 서태지의 딸 탄생에 간접 영향을 끼친 것까지 친분을 드러내는 에피소드와 찬가를 덧붙였다.

유재석의 젠틀함과 서태지에 대한 프로그램 차원의 과한 배려에 박명수를 제외한 나머지 출연진들의 역할은 조심스러움과 존경의 눈빛과 박수 등 분위기를 띄우고 맞장구치는 것으로 한정됐다. 피눈물을 뽑겠다고 호언한 박명수는 아예 역할이 제한됐다. 게스트를 편하게 해주기 위해서 방송의 틀을 바꾼 결과 시청자들은 가까이 다가가기 조금 불편해졌다. 게스트를 띄우는데 급급했던 기존 1인 토크쇼들이 결국 사라지게 된 딱 그 수준의 불편함. <힐링캠프>가 헤어 나오지 못한 늪에 <해투>가 찾아와 빠진 것이다.



서태지의 음악과 인생, 오해와 진실 등의 코너를 진행하는 동안 유재석과 MC진들의 과도한 리액션과 살뜰한 보살핌은 최근 방송 경향으로 보건데, 옛날 사람의 옛날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보다 일상적이고 보다 직설적이고 보다 덜 가식적인 요즘 토크쇼의 경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같은 시간대에 제시카의 탈퇴에 대해 결국 ‘이익집단’이라는 말을 던지고, 무명 아이돌그룹 M.I.B의 멤버 강남이 직접 스튜디오에서 아직 성공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말하는 프로그램이 방송되는 시대에 게스트를 하늘 높이 띄우기만 하는 토크쇼는 아무리 대형 게스트가 나왔다고 한들 팬이 아닌 입장에선 전혀 집중하기 힘든 진부한 그저 그런 이야기일 뿐이다. 다시 말해 스타파워만으론 1시간 이상 집중시키긴 어렵다. 그것이 서태지라도 말이다.

물론 서태지의 긴장과 경계심을 풀어주기 위해서 난이도가 낮은 토크쇼의 방식을 바탕으로 기획했다고 할 수 있다. 점진적으로 진솔한 이야기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가벼운 이야기부터 무거운 이야기 순으로 배치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구조가 너무 구태의연한 방송적 방식이다. 하이라이트로 가는 길이 너무나 단조로웠고, 막상 기대했던 부분에선 진짜 궁금했던, 그 어디서도 못 들었던 이야기를 듣지도 크게 나누지도 못했다. 서태지의 원칙적인 답변 이후 MC진들의 따뜻한 한마디씩을 얹었을 뿐, ‘평소와 달리 독하다’며 잔뜩 긴장과 기대를 품게 해놓고 이지아와의 이혼을 언급한 것만으로도 어쩔 줄 몰라 했다.

이지아가 다른 방송에서 언급한 것 이상의 더 깊은 이야기를 하라는 건 아니다. 대응을 적극적으로 하라는 것도 아니다. 서로 다른 예능 토크쇼에 나와 사생활로 서로를 물고 뜯는 것은 할 일도 아니고, 바라는 바도 아니다. 다만 어려운 이야기를 아주 어렵게 쥐어짜듯 묻고 MC들이 감싸고 박수를 쳐주는 것은 몇 단계 이전 버전의 토크쇼라는 것이다. 서태지의 신곡을 음원 발표 전에 듣는다며 감동하고, 과거 이야기를 하면서 호들갑과 부산스럽게 박수를 치는 건 요즘 토크쇼에선 별로라는 얘기다.



톱스타 게스트로 마케팅한 토크쇼는 단 한 차례의 예외 없이 모두 사라졌다. 진행자와 함께 시청자들이 자세를 바짝 낮춰서 게스트를 바라보는 토크쇼는 이제 피로하고 다른 방송들의 정서에 비해 너무 거리감 들게 갖춰지고 가식적으로 느껴진다. 말하기 어려운 문제를 툭 건드리고 넘어가거나 비껴낼 수 있는 토크쇼, 질문과 답의 합을 미리 짜지 않고 받아내는 생생한 이야기에 대한 갈망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박명수, 장동민 같은 캐릭터가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다. 박명수가 형이라고 부르라고 호통을 치고, 마지막에 ‘녹화 다 끝났으니까 꺼져’라는 말을 자유롭게 날릴 수 없는 분위기는 <해투>와 많은 토크쇼 제작자들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대형 게스트가 나왔으니 물어뜯으라는 게 아니다. 좀 더 보통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듯 편한 모습, 연예인보단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시청자들도 뭔가 들을 만한 이야기가 있다고 판단한다.

서태지와 <해투>의 입장에서 얻어갈 수 있는 것이 다르다. 시청률, 화제성의 증폭은 서태지에게는 큰 홍보효과다. 이번 <해투>를 재밌게 봤다는 반응도 꽤 많은 것은 워낙에 TV에서 보기 힘든 서태지의 등장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다. 그 시대를 함께한 자장권 안에서 호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시청률과 화제성은 <해투>에게도 떨어진 선물이지만 지분이 커 보이지 않는다. 방송이 재밌었다기보다 서태지가 나왔다는 것이 모든 이유의 처음이자 끝이다.

‘이 질문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 ‘소감한 말씀만’ ‘할 말 없으신지’를 반복적으로 물으며 토크가 아닌, 멘트를 이끌어내려고 하는 토크쇼는 뭔지 모를 부담감이 느껴지고 자연스럽지 않다. 조세호는 서태지가 루머에 대해 어떤 식으로 해명을 하든 사람들은 감정적으로 대응했을 것이라고 했다. 동의하는 바다. 그런데 매일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입장에서 초점을 바꿔보자면 서태지를 어떻게 활용했는지에 따라 <해투>에 대한 평가는 확연히 달라졌을 것이다. 서태지는 독이 든 성배가 아니었다. 그런데, 너무 옛날 사람처럼 옛날 방식으로 풀어냈다. 팬들의 잔치를 벗어나 서태지가 추구하는 대중친화적인 노선에 도움이 됐을까? 엄청난 패를 들고선 서태지와 <해투> 양측 모두 너무나 안전한 선택을 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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