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녀석들’, 통쾌한 한 방이 필요한 현실에 부쳐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그것이 알고 싶다>의 김상중을 리더 삼아 해머하우스 출신의 마동석, 액션배우로 자리매김한 조동혁, 중화권의 왕자 박해진이 함께한다. 조금 과장하면 영화 <신세계> 수준의 캐스팅이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종횡무진 잘나가는 주연급 배우들을 ‘한 팀’으로 엮었으니 이것만으로도 이 드라마를 볼 한 가지 이유는 확실하다.

토요일 밤 10시에 방영되는 <나쁜 녀석들>은 <텐> <신의 퀴즈>와 같은 OCN 수사극의 역사를 잇는 새로운 드라마다. 미드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범죄수사물의 범주에 들지만 스릴러로서의 흥미보다 각기 특출 난 특기를 하나씩 가진 살벌한 조각들이 모여서 ‘A특공대’와 같은 팀을 구성한다는 설정이 더 관심을 끈다. 악을 악으로 응징하기 위해 모인 짐승남들의 활극. 각자 마음속 어딘가의 아픈 구석을 숨기고 짐승으로 살아온 남자들이 특정한 목적을 위해 비정한 모임을 갖는다. 그 모임도 모임이지만 연기 되는 개성 강한 남자 배우들이 모였다는 것이 역시나 포인트다. 오랜만에 만나는 제대로 된 액션과 마동석의 코미디는 덤 아닌 덤이다.

연쇄살인마를 쫓기 위해 경찰은 미친개라 불리던 통제불능의 퇴직 강력계 형사 오구탁(김상중)을 찾게 되고, 그는 특급 범죄자들로 자신의 특별 팀을 구성한다. 상경해 하루에 한 구씩 서울을 접수했던 조폭 박웅철(마동석), 자신의 살인을 기억 못하는 사이코패스 살인마 이정문(박해진), 특급 살인청부업자 정태수(조동혁)는 그렇게 그의 아래 모인다. 앞으로 다시는 사회에 발을 들이지 못하고 살 줄 알았던 이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은 특별 감형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갖게 된다. 이 사회를 마구 찢어발기던 발톱을 이제 또 다른 악당에게 들이대야 하는 상황. 최악의 악당들이 졸지에 사회를 수호하는 파수꾼이 된 것이다.

정의감은 없다. 감형이란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각자의 특기를 살려 현장 조사와 탐문을 하고, 범인의 심리를 파고든다. 재밌는 것은 이 짐승들의 행보를 기대하게 되는 우리의 마음이다. 법과 원칙만으로는 세상의 불합리한 것들, 부조리한 것들, 이미 기울어진 세상의 추를 바로 세우고 다잡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나쁜 녀석들>을 보며 상상 속에서 대리만족을 한다.



사회의 구조와 질서와 원칙에는 위배되든 말든 정의를 실현해주는 속 시원한 한 방에 대한 염원, 우리 사회의 시스템으로는 해낼 수 없는 것들을 가볍게 처리해주는 해결사에 대한 응원, 즉 <와치맨>을 비롯한 슈퍼히어로물의 세계관과 <나쁜 녀석들>의 정서는 맞닿아 있다. 어차피 법과 질서, 기존의 체제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좌절감 속에서 더 세고 더 흉악하며 더 절실한 짐승들이 더 나쁜 악당을 쫓기 위해 세운 발톱에 짜릿함을 느낀다. 그리고 그들에게 거는 기대도 있다. 그들의 범죄를 지켜보지 않았으니 미워할 일도 없고 피해자도 아니다. 그들이 어떤 악인이었든 이제는 범죄자들을 한방에 일망타진 처단하는 우리 편이다. 사회에 도움이 되는 존재, 우리 편이 된 히어로의 모습을 기대한다.

물론 히어로물의 정서는 유치하고 미성숙하다. 복잡한 세상과 그만큼 복잡한 사람의 심리와 동기를 회 뜨듯이 가볍게 정리했기 때문이다. 현실과는 전혀 다른 가공된 세계로 안내해 어려운 현실은 잠시 덮어두고 손쉬운 공상으로 자위하게끔 한다. 우리 사회의 진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마음을 모으고 시스템을 더 다듬기 위해 도전하고 노력해야 한다. 차근차근 한 단계 한 단계 시행착오를 겪으며 힘겹게 조금씩 전진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히어로물에는 지난한 노력 대신 지름길을 택한다. 극중에서는 만사형통이지만 현실에선 신화에 가까운 바람이다. 실제론 아무런 변화와 발전을 기대할 수가 없다는 게 히어로물에 대한 기대, 영웅을 기대하는 군중심리에 몇몇 사람들이 빨간불을 켜는 이유다.



이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면 끝도 없지만, 히어로물의 가장 큰 가치는 속시원하게 만드는 청량감이다. “착한 놈을 패면 폭력이지만 나쁜 놈을 패면 정의”라는 오구탁의 말은 파고들면 역시나 착함과 나쁨의 정의와 기준을 누가 판단하는지 등의 어려운 이야기로 빠져들게 된다. 하지만 좀 더 가볍게 생각하고 마동석처럼 단순하게 보면 통쾌한 볼거리다. 이이제이로 범죄를 소탕한다는 나름 재능기부 차원의 상상력은 배우들의 연기에 힘입어 꽤나 흥미롭게 다가온다.

2회까지 방영된 <나쁜 녀석들>은 영상미와 액션신 그리고 마동석의 코믹 연기까지 훌륭했다. 시청률도 2%대를 기록하며 좋다. 웰메이드 드라마라고 말하긴 아직 판단할 자료가 너무 적고, 기존 OCN 수사극들이 막판으로 갈수록 약한 체력을 드러냈던 것을 생각하면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김상중, 마동석 등으로 이어지는 캐스팅은 히어로물의 유치함을 잡아내고 본격 장르물로 인도한다. 모처럼 제대로 된, 기대되는 수컷들의 드라마가 나왔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O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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