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봄날’, 감우성 아니면 이게 가능했겠나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내 생애 봄날>이 가을에 방영되는 까닭은 어쩌면 이 드라마가 가을 타는 남자, 그것도 아저씨들을 위한 사랑이야기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이 드라마는 사고로 아내를 잃은 홀아비 강동하(감우성)가 아내의 심장을 이식받은 젊은 아가씨 이봄이(최수영)와 사랑에 빠지는 줄거리다. 드라마의 설정이나 분위기가 말랑말랑하고 때론 동화 같지만 이 드라마는 분명 남성들에게도 어필하는 부분이 있다.

남자들은 대개 나를 따르라고 외치는 영웅담이나, 바람둥이의 헐벗고 에로틱한 모험, 액션활극에 빠져들지만 꼭 그런 이야기만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남자도 때론 달콤한 연애담을 꿈꾼다. 다만 한국의 드라마에서 남자들이 중심이 되는, 남자의 연애에 대한 감수성을 오롯이 드러내는 드라마들이 많지 않을 따름이다. 흔히 ‘줌마렐라’ 드라마라 불리는 지질한 남편 때문에 고생하다 독립한 후 젊은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연애물에 대응하는 작품은 거의 없는 셈이다.

<내 생애 봄날>은 그런 남자의 감수성, 그것도 아내와 사별하고 두 아이를 키우는 중년의 남자 동하의 감정이 중심에 있는 흔치 않은 연애 드라마다. 허나 <내 생애 봄날>이 섹시한 젊은 여자가 생활에 찌든 중년남자 앞에 뜬금없이 나타나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황당한 ‘저씨렐라’ 드라마에 불과했다면 별 매력은 없었을 거다.

<내 생애 봄날>은 가끔은 하품이 나올 정도로 굉장히 차분한 드라마다. 그리고 심장이식을 받은 봄이와 동하가 사랑의 감정을 느끼기까지의 과정 역시 느리고 꼼꼼하게 풀어나간다. 첫 눈에 남녀가 반하는 것이 아니라 쓸쓸한 가을에서 서서히 따스한 봄을 느끼기까지 사랑의 체감온도를 서서히 높여간다. 하지만 그 흐름만으로 이 드라마가 살아날 수는 없다. 드라마에서는 언제나 궁상맞거나 분위기 파악 못하는 존재로 묘사되기 쉬운 중년의 사내를 매력적인 인물로 살려내야만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내 생애 봄날>은 주인공 동하를 남녀 모두 공감할 수 있는 매력 있는 중년으로 만드는 데 꽤나 성공적이다. 사실 동하 역시 그 ‘스펙’만 보자면 수많은 드라마에 끊임없는 등장하는 능력남이다. 축산업체 ‘하누리온’의 대표 CEO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매력은 가슴 근육이 불끈거리는 과장된 섹스어필이나 백화점에 끌고 가서 옷 사주는 능력과시가 아니다. 그의 매력은 인생의 파란만장을 겪고 이제 어느 정도 단계에 오른 이의 여유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누구 앞에서도 쉽게 당황하지 않는다. 물론 종종 까칠하고 냉소적인 면을 드러내긴 하나 그건 어느 순간에 이르러 이 남자의 매력으로 다가온다. 겉모습 또한 CEO라는 자리에 어울리지 않게 소탈하게 보인다. 공적인 부분에서 동하는 남자들이 그 나이에 그 정도 위치에 오르고 싶은 이상적인 롤모델인 셈이다.



하지만 동하의 사적인 생활은 성공적이지 않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후로 그는 그렇게 되어 버렸다. 게다가 두 아이 푸른이와 바다에게 좋은 아빠가 되길 바라지만 까칠한 성격 때문에 그 또한 쉽지 않다. 딸 푸른이(현승민)는 이제 아빠를 큰아들 다루듯 종종 구박하기까지 한다. 무엇보다 여자라고는 아내 밖에 모르던 이 남자에게 사랑은 그의 인생에 더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여자가 그에게 다시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바로 아내의 심장을 가진, 하지만 아내가 아닌 동생 강동욱(이준혁)의 여자친구가 말이다.

“알퐁스 도데의 별, 그 소설이 왜 아름다운지 아냐? 목동이 아무런 욕심이 없었기 때문이야. 스테파니를 그냥 보냈기 때문이지.”

드라마는 동하가 봄이에게 느끼는 자신의 감정을 밀어내는 부분에 많은 공을 들인다. 중년의 남자는 어쩌면 그런 나이에 접어든다. 다가오는 사랑을 움켜쥐는 것보다 다가오는 사랑을 조심스럽게 밀어내는 것에서 그 사람의 품위가 결정되는 그런 시기일 수도 있는 거다. 동하는 죽은 아내의 사진을 보며 이렇게 속삭이기도 한다.

“이제 그만하면 된 거야. 더는 나한테 봄이씨 밀지 마. 나 때문에 동욱이 아프게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동하와 달리 병약한 심장 대신 이제 정말 뜨거운 심장을 갖게 된 봄이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려고 하지 않는다. 그녀는 고마운 오빠였던 동욱과 헤어지고 동하에게 더 한 걸음 다가간다.



<내 생애 봄날>은 이처럼 주인공 동하에게 많은 공을 들인 작품이다(반면 주인공 남녀와 아이들을 제외하면 나머지 인물들이 너무 주변인물 같아 아쉬운 부분도 있다). 또 배우 감우성을 이 역할에 캐스팅한 것이 어쩌면 신의 한수가 아닌가 한다. 감우성은 일상적이면서도 너무 일상에 묻혀 사라지지 않고 어떤 여운을 주는 연기를 보여준다. 단정했던 <연애시대>보다 훨씬 나른한 모습이지만 그럼에도 기름지지 않고 담백하면서도 약간의 달콤함은 남아 있는 목소리로 중년남자의 매력을 꽤나 싱그럽게 그려낸다.

다만 <내 생애 봄날>에 아쉬운 부분이 없는 건 아니다. 지금껏 드라마의 주변 인물이었던 중년남자의 사랑을 중심에 끌고 온 것은 높이 살만하다. 하지만 두 주연배우의 호연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는 종종 힘이 빠진다. 인물의 개성을 살리고 감정선을 쌓는 데에 공을 들이느라 다른 부분들을 어설프게 방치한 결과다. 여성의 모성애란 낡은 주제를 가지고도 폭발적인 힘을 함께 실어가는 송윤아, 문정희 주연의 MBC <마마>나 식상한 연애물의 외형지만 연애에 대한 진지한 담론으로 발전시켜 나간 정유미, 에릭 주연의 KBS <연애의 발견>과 비교해 보면 더욱 아쉬운 부분이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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