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멤버로 400회 채운 ‘무한도전’의 근간은?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MBC 예능 <무한도전>이 400회를 맞이했다니 소회가 남다르다. 우선 감사 인사를 해야 할 것 같다. TV예능과 관련한 글을 쓰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가능성과 기회는 모두 <무한도전>에서 비롯됐다. 영화평론과 담론이 시들해지던 시대, <무한도전>은 TV와 예능이 그 대체제가 될 수 있음을 선명하게 보여줬고, 문화담론의 영역을 확장해 이런 식의 글을 쓸 수 있는 지면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TV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고, 본다는 시청의 행위와 경험을 발전시켰다. TV예능은 <무한도전>으로 인해 가장 친근하고 일상적이며 담론을 가진 문화가 됐다.

<무도>가 400회를 맞이하는 사이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절대적이던 공중파 예능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고, 예능 패러다임도 몇 차례 흘러갔다. tvN이 케이블 예능의 약진을 선도하는 지 8년째고 <무도>의 큰 어른이었던 여운혁 PD가 새로운 예능 영토를 개척 중인 JTBC도 3년째다. 이 소용돌이 이전에 태어난 <무도>는 온갖 풍파를 겪으면서도 지금까지 트렌드와 예능 생태계를 선도하고 있다. 리얼버라이어티를 추구하는 <1박2일>이나 캐릭터쇼를 추구하는 <런닝맨> 등의 타사 대표 예능들도 <무도>에서 흡수한 자양분을 무시할 수 없다.

이쯤하자. <무한도전>의 영광을 다시 한 번 읊어봐야 이제 너무 뻔한 이야기다. 그래서일까. <무도> 400회 특집은 힘을 빼고 바쁘게 달려왔던 속도를 늦췄다. 스타들을 불러 모아 성대한 공연이나 파티는 물론, 자축의 건배사도 들지 않았다. 과도한 의미 부여나 스스로에게 트로피를 주거나 기념탑을 쌓지도 않았다.

대신 오랜만에 만나도 어젯밤에 만난 듯 담담하게 술 한 잔 기울이는 친구처럼 세월에 흐름에 따라 조금씩 변해갔을 것들을 끌어안았다. 버라이어티한 특집도, 진한 감동도, 화려한 축제도 좋지만 마치 2006년 뉴질랜드 특집에서 캐릭터쇼에서 스토리텔링의 가능성을 발견했던 것처럼 캐릭터간의 시너지와 스토리를 만들어낸 또 다른 충전의 시간이었다. (참고로 롤링페이퍼를 돌렸던 뉴질랜드 특집은 오늘날 <무도>의 원년이다. 캐릭터쇼의 시너지를 극화할 가능성을 찾았을 뿐 아니라, 방송과 현실의 경계, 예능 프로그램 시청자의 시청 태도, 즉 예전엔 볼 수 없었던 몰입의 깊이를 만들어냈다.)



그래서일까. 멤버 둘씩 짝지어서 자유여행을 떠난 이번 특집을 보면서 하하와 노홍철 커플에 가장 눈길이 가고, 마음이 머물렀다. 특히 하하를 지켜보고 있자니, 또 한 번 감회에 젖어든다. 둘은 잘 알다시피, 강남에서 함께 자란 좀 놀았던 친구들이다. 그렇게 잘 놀아서 직업을 이쪽으로 구하게 된 친구들은, 연예인과 공개 연애도 함께하고, 치열한 정글 속에서 예능 최고의 선수가 되어 10여년을 살아왔다.

그런데 날티 나던 두 강남 친구들은 세월의 물감에 따라 조금씩 달라졌다. 하하는 군대를 다녀오고 결혼을 했다. 사는 동네도 달라졌다. 늘 막내 같았던, <무한도전>의 청춘을 책임지던 하하의 결혼은 상징적이었다. <무도>도 사람처럼 인생이 있고, 때가 있으며 그에 따라 변화한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그러면서 이 둘의 색깔을 점점 달라졌다. 예전 뉴질랜드 특집 때 하하와 정형돈 사이만큼(지금은 이웃사촌이 됐다) 이 두 친구의 관계가 서먹서먹해진 게 느껴진다. 서 있는 포지션 자체도 그렇고 MBC 파업 이전 둘 간의 대결 이후 둘이 붙어 있거나 함께하는 그림은 찾기도 힘들다.

20대의 왕성한 끼를 세련된 문화, 힙스터 문화에 대한 심취로 돌린 노홍철은 경리단길을 거의 매일 배회한다고 한다. 그런데 잘 노는 걸로 방송일까지 하게 된 하하는 서울을 벗어난 적도 없으면서 그 핫한 경리단이 처음이라고 했다. 정형돈과 스토리를 만들고, 리액션 마스터로 늘 ‘야만’을 외치며 <무도>의 분위기를 책임지던 하하도 어른이 됐고, 그만큼 열심히 살다보니 잊고 살았던 게 있었던 것이다. 이런 하하를 보면 세월의 폭이 새삼 느껴진다.



노홍철은 어쩌면 초심, 예전의 <무도>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상징일지도 모른다. 나는 달라진 것 없이 그때와 똑같은 데 주변은 다들 변해가는 듯한 기분. 결혼적령기에 들어선 세대에서 종종 느낄 법한 감정인데, 하나둘 가족이란 둥지를 틀고 떠나는 친구들을 보면서 소외감이 들기도, 조금 어색해지는 그런 기분 말이다. 이상한 것 같기도 하고 뒤쳐진 것 같기도 하고, 살짝 원망스럽기도 하다. 하하와 노홍철의 여행은 그걸 인정하고 또 거기서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변화는 원래 자연스러운 거다.

이들의 이번 여행은 지나온 세월을 잘 끌어안을 기회다. 앞으로 엄청 잘하겠다는 다짐 대신 소중한 기억을 추스르고, 앞으로의 관계를 잘 다져나가는 데 도움이 되는 진솔한 시간이었다. 이것이 왜 중요하냐면 <무한도전>의 근간은 여섯 색깔로 그려내는 리얼한 캐릭터쇼이기 때문이다.

예전처럼 이런 특집을 통해서 캐릭터의 새로운 관계망이 정립되고, 새로운 에너지가 나올지는 미지수다. 그래도 흘러온 세월만큼 변한 모습을 끌어안는 계기가 됐다. 뭐든 변해야 하고 그러면서도 지켜야 한다. 예능개척자인 <무도>는 지금까지 이 섭리를 지키며 나아가고 있다. 우리는 역사를 쌓아가는 현장을 함께하고 있다. 마이클 조던의 농구를 보고 자란 농구팬들이 갖는 자부심처럼 <무도>와 함께한 세대들은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해도 된다.

몇 십 년째 장수하는 라디오프로그램은 있지만 별다른 멤버 변화 없이 TV프로그램이 10년째 지속된 사례는 없었으며 그 긴 시간 동안 정상의 자리에 있었던 적도 물론 없다. 전신인 <무모한 도전>이 시작된 2005년 4월부터 지금까지 10년 동안 거의 단일멤버로 400회를 채운 프로그램은 물론 없었다. 만약 2000년대판 <응답하라> 시리즈가 나온다면, 그 중심은 <무한도전>이다. 역사를 우리는 함께하는 중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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