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문’, 재미의 문은 언제쯤 열리는 걸까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SBS 월화드라마 <비밀의 문>을 보면서 진짜 궁금한 점은 영조를 옭아매고 사도세자가 파헤치려는 그 비밀스러운 문서 맹의가 아니다. 도대체 왜 이 흥미진진한 사건을 품고 있는 <비밀의 문>의 재미의 문이 열리지 않을까란 사실이다. 8회까지 온 지금 <비밀의 문>은 계속해서 보고 싶게 만드는 그 무언가가 존재하지 않는다(물론 8회는 조금 달라지기는 했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조금 뒤에 가서 언급하자).

물론 재미없는 드라마는 어디에든 널려 있다. 혹은 한석규, 이제훈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 추리 서스펜스 사극에 <왔다, 장보리> 같은 재미를 기대하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재미가 없기로서니 한 나라의 임금인 영조를 연민정 같은 인물로 묘사할 수는 없는 법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비밀의 문>의 재미없음에 특히 신경이 쓰이는 까닭은 이 드라마가 시작하기 전에 가져왔던 어떤 부푼 기대감 때문일 거다. 왜냐하면 그 비밀의 문이 열리기 전에는 너무나 재미있게 보였으니까.

우선 대부분의 사극을 말아먹던 SBS에서 유일하게 성공한 <뿌리 깊은 나무>처럼 추리의 요소가 가미된 퓨전사극이라는 점부터 흥미로웠다. 거기에 <뿌리 깊은 나무>에서 우리가 알지 못했지만 그랬을 법하게 세종대왕을 해석한 한석규가 영조 역할을 맡았다. <파수꾼>과 <건축학개론>의 남자주인공 이재훈이 사도세자 이선으로, 모든 인기드라마의 인상적인 아역으로 얼굴을 알린 김유정 또한 아역이 아닌 주연급 서지담으로 출연하니 배우들의 연기 또한 나무랄 점이 없을 것만 같았다. <하얀 거탑> 등등에서 속내를 알 수 없는 음흉한 인간을 자연스럽게 그려낸 김창완이 노론의 영수 김택을 어떻게 연기할지도 궁금했다.

하지만 정작 문이 열린 <비밀의 문>은 어째 그냥 그렇다. 화면 속의 그들은 긴장하지만 화면 밖의 우리는 덤덤해진다. 혹자는 그 이유를 <비밀의 문>이 기존의 다른 사극보다 어려워서라고 평한다. 하지만 다른 추리물에도 이 정도의 골치 아픈 어려움은 존재한다. 다만 추리물의 경우 보는 이로 하여금 그 어려움을 즐기게 만드는 훌륭한 전법이 필요하다. 사람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거나 뒤통수쯤은 쳐줘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어렵게 느껴지는 코드들은 전략적으로 먼저 풀어헤쳐 보여줘야 할 필요도 있다. 슬프지만 <비밀의 문>에는 이런 전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비밀의 문>은 추리물 치고는 너무나 정석적인 극의 흐름을 묵묵히 따른다. 친절하지만 나른한 전개라서 답답한 방법이다. 인물의 행동이나 사건의 진행 또한 몇 수 앞에서 어떻게 이어질지 대략 짐작 가능하다. 그리고 극은 보는 이의 짐작대로 흘러간다. 그러다보니 아무리 화면과 배우들의 연기가 고급스러운들 정작 흥미롭게 드라마에 빠져들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렇다면 배우들의 열연은 기대만큼 흥미로웠을까?

이 점에 있어서는 다소 의견차가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김창완의 사극 연기가 생각보다 너무 가볍게 다가오기에 실망스러움을 느낄 이들은 많을 것 같다. 아역스타였던 김유정은 본인이 해왔던 대로 최선을 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드라마 전체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 빤히 드러난다. 물론 영조 역의 한석규와 사도세자 역의 이제훈이 이 드라마에서 열연을 보여주는 건 틀림없다. 하지만 두 사람이 과연 영조와 사도세자와 딱 어울리는 캐스팅이었을지는 개인적으로는 좀 의문이다. 지금까지의 흐름으로만 보자면 드라마와 배우 모두에게 그리 이상적인 만남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제훈의 특화된 장점은 남자배우 그것도, 소년기를 벗어나지 못한 사내애들의 섬세한 감정들의 편린을 뾰족하게 끌어낼 줄 안다는 거다. 이런 면은 도화서 화서 신흥복(서준영)을 살인사건으로 잃고 슬퍼할 때나 그를 그리워할 때 도드라진다. 하지만 이 작품이 사도세자와 신흥복의 밝혀지지 않은 금지된 사랑을 반전의 카드로 내세울 게 아니라면 (당연히 아니겠지만) 그의 연기가 빛을 발할 부분이 지금까지 많지는 않았다. 그런 까닭에 <비밀의 문>의 초반이 지난 지금까지 이제훈은 말을 탈 때의 어색한 자세처럼 사도세자란 역할에 끌려가는 인상이다.

반면 한석규의 영조는 지금까지 <비밀의 문>에서 분량이 많지 않았다. 그 짧은 분량에서도 한석규는 최선을 다해 영조의 비틀린 감정을 보여주기 위해 극한의 애를 쓴다. 표정은 잔뜩 일그러지고, 목소리는 가끔 조영남처럼 들리고, 침이 한 사발씩 튀기도 한다. 이 장면 자체는 인상적이다. 허나 드라마 전체의 맥을 헤치는 감도 없지 않아 있다. <비밀의 문>은 그 구성상 수많은 주조연급 배우들이 앙상블을 이루면서 끌어가는 구조라서 배우가 도드라지는 부분은 약점이 될 수도 있다. 어쩌면 영조의 역할을 장년의 평범한 배우가 맡았다면 이런 아이러니는 오히려 없었을 것이다.



또한 맹의라는 약점에 붙들려 있고 출생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는 인물 영조와 한석규가 잘 맞는다는 생각이 어째 들지 않는다. 한석규는 본인이 지닌 부드럽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 가끔씩 가벼운 반전을 주는 캐릭터를 연기할 때 빛이 난다. 대표적으로 위인 같지 않은 면이 반전의 재미를 주는 위인이라 매력적이었던 <뿌리 깊은 나무>의 세종이 그랬다. 혹은 겉보기엔 모범생 같지만 사기꾼 같은 얄팍한 야비함이 드러나는 <서울의 달>의 홍식 같은 인물도 괜찮다. 허나 너무 심하게 맛이 갔거나 지나치게 무거운 인물을 연기할 때에는 다소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믿고 보는 훌륭한 배우지만 뼛속까지 미친 인물을 연기하면서 미친 인간을 자연스레 보여주는 배우는 아니다.

다행히 <비밀의 문>은 최근 8회에서 두 주연배우를 위해 흥미로운 문을 하나 열긴 했다. 이제 막 맹의의 비밀에 가까이 다가가게 된 사도세자 이선이 살인 용의자로 누명을 쓴 것이다. 또한 아들이 맹의의 비밀을 알까 전전긍긍하던 영조는 이 사건에 오히려 흐뭇해한다. 앞으로 이어질 사건 전개에서는 두 주연배우의 기량이 드러날 수도 있을 것 같다. 영조는 아들의 최후를 위해 더 능글맞고 음흉해질 것이고 사도세자 이선은 더욱 불안하고 불쌍해질 테니까. 고로 남은 회차에 따라 한석규의 영조와 사도세자의 이제훈이 딱 적역이란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다만 8회라는 긴 회차 동안 열려 있던 지루한 비밀의 문 밖으로 떠나간 이들이 과연 되돌아올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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