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끼리’ 김상경·김현주, 이 독특한 커플의 앙상블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정신 차려, 이 사람아. 당신 발밑에 파도가 있어.”- ‘나는 빼빼로가 두려워’ (박생강 ․ 열린책들)》

술 취해 얼굴 벌게진 사람들만 파도처럼 출렁이는 길바닥을 경험하는 건 아니다. 사랑에 취한 이들은 아예 세상이 출렁대는 것만 같은 울렁거림을 느낀다. 그 뿐이 아니다. 그 사람 앞에만 서면 괜히 말을 더듬고 머릿속은 백지로 변한다. 그러면서도 하루 종일 모든 생각과 대화의 주제는 바로 그 사람이다. 이쯤 되면 대개는 본인이 사랑에 빠졌다는 걸 직감하고 대책을 세우기 마련이다. 그 사람을 내 마음으로 끌어들일 작전을 짜거나, 그럴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 마음을 정리하고 사뿐히 나를 ‘즈려밟고’ 지나가게 넙죽 엎드린다.

허나 KBS 주말연속극 <가족끼리 왜 이래>의 메인커플인 차강심(김현주)과 문태주(김상경)의 경우는 다르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반했다는 증거인 마음의 울렁거림을 애써 외면한다. 오히려 주변 사람이 그게 사랑이라고 말하면 뜨악해하며 진저리친다. “연애가 다 말라비틀어졌다, 야. (차강심)”. 그리고 혼자 남았을 때 천천히 상대에 대해 생각하다가도 이내 고개를 절레 흔든다. “한순간 흔들렸던 건 인정. 자는 모습에 나도 잠깐 이성을 잃었던 건 인정. 나도 남잔데. 물론 그래도 아닌 건 아니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차강심이라니. 흥. (문태주)”

그런데 서로의 사랑을 그렇게 부정하면서도 그들은 조금씩 내꺼인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상대와 ‘썸’을 타며 가까워진다.

<가족끼리 왜 이래>는 전형적인 KBS 주말연속극의 패턴을 따르고 있다. 가족 간의 갈등과 화해, 젊은 남녀의 사랑이 주요 줄거리이다. 부담스럽지 않지만 특별한 개성은 없는 세트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메인커플인 차강심과 문태주 때문에 좀 독특하다. 전작인 <참 좋은 시절>의 메인커플이 너무 청승맞고 따분해 보여서였을까? 차강심과 문태주는 드라마 초반 메인커플 치고는 좀 과하다 싶을 정도의 코믹한 캐릭터였다.

보통 주말드라마의 메인커플은 여자는 시댁부터 남편 뒷바라지까지 단숨에 해결하는 똑똑한 원더우먼, 남자는 ‘쿨남’부터 마당쇠까지 모든 걸 넘나드는 슈퍼맨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좀 다르다. 두 사람은 똑부러지는 커리어우먼이지만 연애세포는 상실한 건어물녀와 연애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사는 초식남이다. 거기에 더해 김현주가 연기하는 차강심은 상어도 아니면서 가끔씩 파르르함으로 주변 사람들을 떨게 만드는 철갑상어 건어물녀 ‘철건녀’다. 김상경의 문태주 또한 평범한 초식남이라기보다 고집도 세고 눈치도 없는 황소고집 초식남 ‘황초남’이라 부를 수 있겠다.



다른 드라마에서는 조연으로 등장할 법한 철건녀와 황초남의 조합이 중심이 되면서 드라마는 의외로 꽤 활기차진다. 멋진 남녀의 연애를 감상하는 기분이 아니라 훈수 두는 기분이 들어서다. 더구나 서로가 사랑인 줄 모르고 가까워질 때 주변 사람들의 눈에 그들은 더 귀엽게 보이기 마련이다.

“헐, 즐거워보였다고요, 내가? 그래보였다고요? 그래서 삐졌구만. (중략)내가 맞선녀와 좋다고 웃고 있으니까, 기분 나빴던 건 아닙니까. (중략)그러니까 아무 말도 없이 휑하니 가버렸지. 내가 다른 여자하고 좋다고 웃고 있어서. (문태주)”
“오버가 과하신 건 아닙니까. 절대로 그런 이유로 가버린 거 아니거든요.(차강심)”
“오버는 차실장이 하는 거 같은데? 진심이 들켜버려서. (문태주)”

더구나 김현주와 김상경은 흥미롭게도 이 연애세포 실종된 캐릭터들을 빤하게 그리지는 않는다. 사실 이 두 배우는 ‘수줍수줍’보다야 능글능글이 더 어울리는 배우들이다.

김현주는 2013년 JTBC <궁중잔혹사-꽃들의 전쟁>에서 얌전이 소용 조씨를 연기하면서 궁중은 물론 드라마를 들었다 놨다 하는 앙칼진 악녀 연기를 펼쳐보였다. 사극 연기에서 극적인 연기에 맛을 들인 걸까? <가족끼리 왜 이래>에서 김현주는 다소 의기소침하게 표현될 법한 건어물녀 차강심을 극적인 양념을 톡톡 뿌려 꽤 매큼하게 연기할 줄 안다.



반면 <생활의 발견>, <극장전> 등등 홍상수 감독 영화들에서 여자들 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니는 지질한 작업남의 팬티 속까지 다 보여준 것 같던 김상경은 문태주를 통해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똑같이 지질한 성격이지만 김상경은 아주머님과 아주버님을 합친 듯한 묘한 인물로 문태주를 그려낸다. 목소리는 종종 간드러지고, 표정은 드라마틱하게 새침하며, 웃을 때는 바람이 실실 빠진다. 그런데 드라마를 보다보면 이 매력 없을 법한 인물이 점점 흥미로워진다. 살 빠지고 조금 잘생겨진 슈렉 같은 문태주가 정말 로맨스의 남자주인공으로 보이는 순간이 온다. 그리고 김상경은 그 적절한 때 특유의 저음으로 목소리를 내리깔며 멋진 남자주인공으로 돌변한다.

안타깝게도 <가족끼리 왜 이래>의 이 사랑스러운 커플이 진짜 연인이 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 것만 같다. 두 사람 모두 미적미적할뿐더러 차강심의 과거 연인이 다시 돌아왔기 때문이다. 허나 드라마의 재미를 위해서는 서로의 ‘썸’을 끊임없이 부정하는 이 두 사람의 아웅다웅이 어디까지 갈 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터. 더구나 11월과 12월은 빼빼로데이에서 크리스마스, 연말연시까지 이어지니 차강심과 문태주가 아웅다웅을 끝내고 사랑의 속삭임을 나눌 기회는 아직 충분하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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