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이 세상에 없다니 아직까진 믿기 힘들다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필자는 무한궤도의 <그대에게>를 흥얼거리며 놀았고 신해철의 2집 테이프는 중학교 때 처음 산 카세트테이프였다. <재즈카페>와 <내 마음은 깊은 곳에 너>, <나에게 쓰는 편지> 등등이 담긴 그 카세트테이프를 늘어지도록 들었지만 필자가 신해철의 팬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그가 몸담았던 그룹 넥스트의 앨범을 샀던 적도 없고 2천 년대 이후 그의 음악 작업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 물론 <도시인>, <인형의 기사-Part2>나 <날아라 병아리>처럼 그 시절 히트한 몇몇 곡들은 귀에 늘 어른대기는 한다. 그렇더라도 이 매력적이었던 교주 ‘마왕’의 아늑한 그늘 아래 열광하고 행복해하며 긴 시절을 함께해온 팬들처럼 그렇게 신해철을 사랑했노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신해철의 수술 후유증으로 인한 심정지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몇몇 친구들의 얼굴이었다. 80년대에 초등학교에 다니고, 90년대에 중고등학교를 다니고, 90년대 중후반에 대학에 입학한 그 친구들에게 신해철이 단순한 가수를 넘어 어떤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걸 잘 알아서였다.

신해철은 자신의 음악에 담긴 철학적인 가사를 통해, 오랜 기간 라디오DJ로 활동하며 목소리와 어떤 메시지를 통해서 늘 그들과 함께했다. 그는 록스타면서, 이웃집 형이었고, 어디도 튈지 몰라 늘 걱정되는 연인이었고, 소신 있는 독설가이면서, 동시에 여린 마음을 종종 들켰으며, 무엇보다 음악을 통해 그들을 매혹시켰다. 그런 다재다능하고 수다스러운 ‘마왕’이 의식을 잃은 채 병실침대에 누워 있다는 건 그들에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현실일 터였다.

지난 10월 27일 저녁 8시가 넘어선 시간 집으로 돌아오는 마을버스에서였다. 승객은 많지 않았고 버스 안은 밝지 않았다. 그날따라 무거운 짐을 들고 오느라 진은 잔뜩 빠져 있었다. 버스에서 들리는 라디오 뉴스는 그저 웅웅대는 잡음으로 흘러갈 따름이었다. 하지만 아나운서가 방금 들어온 속보입니다, 라고 말하는 목소리는 뚜렷하게 들렸다. 아나운서는 짤막하지만 다소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신해철의 심장이 완전히 멈췄다는 걸 알려주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헉, 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기분은 맥없이 가라앉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승객이 얼마 없는 마을버스에 내리면서, 무언가가 사라져 버린 세상의 정류장에 발을 내딛는 기분이었다.



그날 밤 몇 번씩 울컥하는 기분으로 신해철의 음악과 그가 활동할 때의 동영상들을 보고 또 보았다. 그제야 비록 내가 신해철의 팬은 아니더라도 한창 사춘기를 보내던 그 시절에 그의 음악들이 감수성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가 세상에 없다는 건 내 감수성이 한창 싹틀 때의 시간이 사라져 버린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흐린 창문 사이로 하얗게 별이 뜨던 그 교실 나는 기억해요/내 소년 시절에 파랗던 그 꿈을//세상이 변해가듯 같이 닮아가는 내 모습에/때론 실망하며 때로는 변명도 해보았지만//
흐르는 시간속에서 질문은 지워지지 않네/우린 그 무엇을 찾아 이 세상에 왔을까/그 대답을 찾기위해 우리는 홀로 걸어가네.” -무한궤도,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그리고 그날 유투브 동영상을 통해 88년 MBC 대학가요제에 출전해 <그대에게>를 부르던 참가번호 16번 무한궤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전주부분에서 그 경쾌하고 세련된 전자음과 그날의 현란한 조명은 어린 시절 TV에서 보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에 눈에 들어오지 않던 것들도 지금은 들어왔다. 흰 셔츠를 입고 당시 유행하던 가르마를 탄 이십 대 초반의 풋풋한 마왕의 모습이라거나, “우린 이렇게 서로를 아쉬워하는 걸”에서 걸 발음을 할 때의 어설프고 귀여운 떨림까지. 하지만 가장 눈에 들어온 건 처음으로 텔레비전 생방으로 나가는 거대한 무대에 선 이십 대 초반 감수성 섬세한 개구쟁이 아이의 떨리면서도 감격에 찬 표정 같은 것들이었다.



신해철도 그럴 때가 있었다. 그리고 점점 마왕으로 변해갔지만 그의 내면에 감수성 섬세한 개구쟁이 아이를 아는 사람은 다 알 터였다. 누군가는 그 모습을 철없다고 비웃었지만, 누군가엔 그게 바로 신해철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었다. 그리고 2014년 그는 <넥스트>로 다시 오랜만에 돌아오면서, 무대에서 다시 그 모습들을 보여줄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세상에 없다. 너무나 어이없는 일로 그는 우리 곁을 떠났다. 이제 그 사실을 인정해야겠지만 신해철이 이 세상에 없다니 아직까지 믿기 힘들다. 그의 두 번째 솔로앨범에서 즐겨듣던 노래를 듣고 또 듣지만 아직까진 믿기가 힘들다.

<<“난 잃어버린 나를 만나고 싶어/모두 잠든 후에 나에게 편지를 쓰네/내 마음 깊이 초라한 모습으로/힘없이 서있는 나를 안아주고 싶어// 난 약해질 때마다 나에게 말을 하지/ 넌 아직도 너의 길을 두려워하고 있니/ 나의 대답은…… 이젠 아냐 //언제부턴가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해만 가네/나의 마음도 조급해지지만/우리가 찾는 소중함들은 항상 변하지 않아/ 가까운 곳에서 우릴 기다릴 뿐//이제 나의 친구들은 더 이상 우리가 사랑했던/동화 속의 주인공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고흐의 불꽃같은 삶도, 니체의 상처입은 분노도/ 스스로의 현실엔 더이상 도움될 것이 없다 말한다/ 전망 좋은 직장과 가족 안에서의 안정과/은행 구좌의 잔고 액수가 모든 가치의 척도인가/돈, 큰 집, 빠른 차, 여자, 명성, 사회적 지위/그런 것들에 과연 우리의 행복이 있을까/ 나만 혼자 뒤떨어져 다른 곳으로 가는 걸까/가끔씩은 불안한 맘도 없진 않지만/ 걱정스런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친구여, 우린 결국 같은 곳으로 가고 있는데//때로는 내마음을 남에겐 감춰왔지/ 난 슬플땐 그냥 맘껏 소리내 울고 싶어/나는 조금도 강하지 않아//언제부턴가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해만 가네/나의 마음도 조급해지지만/ 우리가 찾는 소중함들은 항상 변하지 않아/가까운 곳에서 우릴 기다릴 뿐.” -신해철, 나에게 쓰는 편지>>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OBS, CJ미디어,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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