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스텔라’, ‘그래비티’에 환호했던 당신이라면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영화 속 세계에서는 현실 세계에서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 예를 들어, 액션 영화에서 보면 기관총을 맞은 악당이 그 반동으로 뒤에 있는 유리창을 깨고 바깥으로 나가 떨어지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그런 일은 그냥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할리우드 사람들도 알고 있지만 여전히 그런 장면들은 나온다. 스펙터클의 재미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건 사실왜곡이 단순한 물리학적 과장이 아닌 사실 왜곡일 경우, 좋게 본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집중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다이 하드 2>는 멋진 액션 영화지만 클라이맥스는 자꾸 신경이 쓰인다. 브루스 윌리스는 악당이 타고 달아나는 비행기의 연료 탱크 뚜껑을 열고 라이터로 흘러나오는 연료에 불을 붙여 비행기를 폭파하는데, 비행기 연료는 라이터 같은 것으로 쉽게 불을 붙일 수 있는 물질이 아니다. 일단 여기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하면 브루스 윌리스가 사실은 악당을 잡는 데에 실패했고 이후 장면은 멋대로 지어낸 장면이 아닐까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왜곡이 가장 심한 장르는 SF이다. 크라이테리언에서 나온 마이클 베이의 <아마게돈> DVD의 가장 큰 재미는 이 영화에 참여한 과학자들이 마이클 베이 욕하는 것을 듣는 것이다. <아마게돈>는 지구로 날아오는 텍사스만한 소행성의 모양부터 우주선의 비행 모습에 이르기까지 엉터리 과학이 줄줄 새는 영화지만, 몰라서 그랬던 건 아니다. 적어도 영화 각본 작업과 촬영 작업 때 잘못된 과학적 사실을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늘 옆에 있었다. 하지만 마이클 베이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고 결과는 보시는 대로다.

마이클 베이의 생각에도 일리는 있다. 정확한 물리법칙을 따르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아마게돈>과 같은 영화는 사실보다 판타지를 제공하는 것이 먼저이다. 좋은 스펙터클과 액션을 제공할 수 있다면 사실 왜곡 정도가 그렇게 큰 문제일까. 그는 진짜보다 더 그럴싸하게 보이는 액션신을 만들 수 있는 실력이 있다. 그렇다면 지루하게 사실을 지키는 대신 그 실력을 발휘하는 게 낫지 않겠는가?



이 주제에 대해 베이보다 더 고민하는 사람들도 있다. 새 <스타 트렉> 영화 두 편을 만들고 <스타 워즈> 속편에 돌입한 J.J. 에이브럼스는 실제로 <스타 트렉>을 진공에서 소리가 나지 않는 영화로 연출해보려 시도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사운드를 빼면 장면에 의도한 만큼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결국 그는 진공인 우주공간에서 소리가 들리는 영화로 돌아갔다.

과학시간에 존 사람들이라도 진공에서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SF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사실 왜곡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여전히 관객들의 무지이다. 우주 밖으로 조금만 나가기만 해도 우리가 지구 위 일상 속에서 당연하게 생각하는 법칙들이 허물어진다는 것을 설득하기 어려운 것이다. 결국 영화 속 사실 왜곡은 관객들의 보수적인 착각을 심하게 거스르지 않으려는 시도이다.

최근 들어 이런 당연한 관습에서 벗어나는 영화들이 하나둘씩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작년에 나온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는 할리우드가 당연히 왜곡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물리법칙의 위반을 최대한으로 벗어나려 노력한다. 진공에서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며 무중력 상태에서 불꽃은 동그랗게 타오른다.



지금 개봉을 앞두고 있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터스텔라>는 한술 더 뜬다. SF보다는 우주를 무대로 한 액션 영화에 가까운 <그래비티>와는 달리, <인터스텔라>는 웜홀을 통해 다른 은하계로 여행을 떠나는 우주여행사들을 다룬 본격 SF인데, 영화가 보여주는 우주 묘사의 사실성은 심지어 <그래비티>를 능가한다. 회전하는 우주선과 도킹을 시도하는 착륙선의 묘사는 무중력 상태의 물리묘사의 극한을 보여주며, 물리학자 킵 손이 참여한 블랙홀 묘사는 역사상 가장 정확하다고 한다. <인터스텔라>를 보다보면 작년에 진공에서 소리가 들리지 않는 영화를 보고 환성을 질렸던 게 싱겁게 느껴질 정도다.

SF 영화의 역사를 보면 사실 왜곡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수정된다. 그건 새 과학적 발견과 이론이 나왔기 때문이기도 하고, 특수효과가 발전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대중의 과학지식이 개선되었기 때문이다. 지겹도록 많이 드는 예지만, <스타 트렉>이 나왔을 때만 해도 외계인과 지구인의 혼혈 설정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건 과학자들이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몰랐기 때문이 아니라 드라마의 타겟층이었던 대중이 그런 걸 당연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비티>와 <인터스텔라>는 새로운 대중을 믿는 영화이다. 물리법칙을 최대한 정확하게 지켜도 관객들이 따라와 줄 것이라 믿고, 그런 물리적 제한 속에서도 충분히 재미있는 액션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영화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영화들과 대중의 올바른 상호작용이 꾸준히 이어진다면 정확한 과학정보를 충실하게 반영하는 영화들의 수는 점점 늘어날 것이고, 그에 따른 양의 피드백으로 인해 관객들의 지식도 상승할 것이다. 이들이 만들 새로운 영화의 미래가 기대되지 않는가?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인터스텔라>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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