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란과 톰 크루즈의 복고주의, 언제까지 가능할까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영화를 찍을 때 반드시 피사체가 카메라 앞에 있어야 할까? 아무런 맥락없이 듣는다면 갑갑하기 짝이 없는 질문이다. 영화를 만드는 데에 이런 종류의 순수성 추구는 무의미하다. 만드는 사람들을 올바르게 대접하면서 올바른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만들었다면 취조를 당할 이유가 없다.

영화는 영화의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특수효과를 동원한 판타지였다. 우리가 최초의 극영화라고 보는 멜리에스의 <달세계 여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특수효과로만 이루어진 영화였다. 특수효과를 이용한 판타지는 단순히 용납되는 수준을 넘어 영화의 시조이다. 특수효과는 보다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고 보다 유려하게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꼭 <반지의 제왕>과 같은 판타지만 그런 게 아니다. <시민 케인> 같은 영화를 자세히 봐도 의외로 특수효과가 많이 숨어 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특수효과에 반기를 드는 것처럼 보이는 수상쩍은 경향이 관측된다. 그것도 도그마 선언을 내세우는 저예산 독립 영화에서가 아니라 대자본이 들어가는 SF나 액션 영화에서. 사실 이는 특수효과에 대한 반기가 아니라(그건 불가능하다) 디지털과 CG에 대한 반기이다.

막 <인터스텔라>를 들고 온 크리스토퍼 놀란은 바로 그런 경향의 선두주자이다. <인터스텔라>, <인셉션>, <다크 나이트> 3부작은 모두 특수효과를 잔뜩 쓴 영화들이다. 단지 그는 <다크 나이트> 이후 CG에 대한 강박적인 거부감을 드러낸다. 보통 같으면 블루 스크린이나 그린 스크린 앞에서 찍은 뒤 컴퓨터 그래픽으로 처리할 장면도 그는 재래식 물리 효과를 이용한다. 물론 그는 무조건 필름만을 고수한다,



놀란만 그런 것도 아니다. 놀란처럼 심각한 구석이 전혀 없어보이는 J.J. 에이브럼즈도 만만치 않다. <스타 워즈> 속편의 감독 자리를 물려받은 그는 조지 루카스가 거의 컴퓨터 그래픽의 쇼케이스처럼 만들어놓은 프리퀄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간다. 필름으로 돌아갔고 루카스라면 당연히 컴퓨터 그래픽을 썼을 자리에 모형과 특수분장을 사용한 재래식 특수효과를 집어넣는다. 아직 제대로 된 클립 하나 보지 못한 상황에서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뉴스만 보면 그는 루카스에 대한 복고주의 반란을 주도하는 것 같다.

필름 순수주의자이며 신작을 70밀리 필름으로 상영하지 않으면 해외 배급도 막을 것처럼 행동하는 쿠엔틴 타란티노, 대역을 동원해 그린 스크린 앞에서 찍어도 되는데 굳이 날아가는 진짜 비행기에 매달려 액션을 하는 톰 크루즈도 시류에 대한 반항아들이다. 이유와 행동은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점은 있다. 디지털의 추상적인 허공에서 이미지와 사운드를 만들어 조합하는 것에서 벗어나 무언가 물리적 실체가 있는 진짜를 작품에 담으려 하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디지털과 필름의 장단점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분명 필름이 우위를 차지하는 영역이 있다. 그건 재래식 특수효과 역시 마찬가지이다. 지금 컴퓨터 그래픽의 수준은 놀라운 수준이지만 아직 발전 중이다. 기껏해야 10년 전에 나온 <해리 포터> 시리즈나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보라. 당시엔 첨단이라 생각했던 특수효과가 얼마나 낡아보이는지 알아차리고 놀랄 것이다. 그냥 낡아보이는 게 아니라 낡은 만큼 싸게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영화도 대부분 같은 운명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적절한 재래식 특수효과의 활용은 이를 막을 수 있다. 대런 아로노프스키와 테런스 말릭은 <천년을 흐르는 사랑>과 <트리 오브 라이프>에서 재래식 특수효과 위주로 시퀀스를 만들었는데, 둘 다 모두 근사했으며 아마 그 장면들은 CG를 쓴 다른 경쟁작보다 오래 버틸 것이다.



이것은 편을 들 문제가 아니다. 놀란, 에이브럼즈, 타란티노 역시 공격적으로 디지털을 향해 선전포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점점 줄어들고 있는 자신의 영역을 수호하고 있는 것이다. 그건 하늘에서 열심히 스턴트를 하고 있는 톰 크루즈 역시 마찬가지다. 아마 가장 다급한 사람은 오히려 크루즈일 것이다. 제임스 카메론이 <타이타닉>에서 어설픈 디지털 인형들을 떨어뜨렸을 때부터 배우의 영역은 조금씩 줄어만 갔다. 지금은 스턴트 영역을 장악하는 수준이지만 앞일을 어떻게 알랴. 그 전에 자신이 쓸모있다는 것을 어떻게든 증명할 수밖에.

하지만 세상이 언제까지 그 영역을 지지해줄 수 있을까. 얼마 전 극장에서 본 <인터스텔라> 필름 버전의 상영환경은 기껏해야 간신히 견딜만한 수준이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그건 놀란의 문제보다는 극장의 문제가 더 커보였다. 필름 영사는 이미 사라져가는 기술이며 영화관은 더 이상 이 기술과 포맷에 신경쓰지 않는다. 소스의 질을 떠나 최상의 그림을 보여주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모든 영화관이 디지털 영화만 트는 세상은 상상 자체가 불가능했는데,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이런 식으로 조금씩 지금까지 익숙했던 세계가 도구와 기술에 자리를 내 주는 것이리라. 자연스럽기 짝이 없는 변화이다. 하지만 왜 여기서 발전의 확신이 들지 않는 것일까.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인터스텔라>메이킹필름, 유튜브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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