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남의 얼굴을 벗어던진 이상윤의 이유 있는 선택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이상윤이란 배우가 지니고 있는 매력은 김수현 작가의 SBS 주말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보여준 막내아들 양호섭 캐릭터에서 쉽게 드러난다. 이 드라마에서 예민한 딸과 자신의 비밀 때문에 우울한 큰아들과 달리 막내 호섭은 활기차고 긍정적이다. 어머님들이 아들 삼고 사위 삼고 싶은 날 서지 않고 듬직한 엄친아 캐릭터. 큰 키와 넓은 어깨, 하지만 사나워 보이지 않는 선한 미소 덕에 이상윤은 이런 역할에 최적인 배우로 보였다.

이상윤의 그런 매력은 대중에게 호감을 사긴 좋았다. 하지만 배우로서의 더 나은 입지를 점하기엔 다소 아쉬웠다. 그는 위험하거나 예민하거나 비밀 있어 보이는 남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일일드라마의 남자주인공, 주말드라마의 서브남으로는 괜찮지만 복잡한 심리로 사람을 빨아들이는 인물로 다가오기엔 부족했다. 더군다나 자신이 지닌 타고난 장점을 깰 만한 연기력 또한 초기의 이상윤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 이상윤에게 조금 다른 면모가 보였던 작품은 <내 딸 서영이>의 강우재였다. 우재는 겉보기에는 주말드라마의 일반적인 남자주인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주인공을 도와주고 그녀를 위해 넓은 어깨를 빌려주는 다정다감한 재벌남 타입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복잡한 구도 때문에 서영이의 비밀이 하나하나 들어날수록 우재의 냉정하고 무자비한 모습 또한 보여줘야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상윤이 <내 딸 서영이>에서 우재의 이런 복잡한 심리를 완벽하게 연기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다만 차갑고 냉정한 우재를 연기할 때 이상윤은 꽤 인상적이었다. 미소를 지을 때는 사람 좋은 호인 같은 그의 얼굴이 무표정해질 때는 섬뜩했기 때문이다. 이상윤이 주말극의 평범한 남자주인공이 아니라 피와 공포와 추리를 넘나드는 장르드라마에 적합한 얼굴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 건 그때였다.



<내 딸 서영이> 이후 이상윤은 퓨전사극 <불의 여신 정이>와 <엔젤 아이즈>를 통해 멜로물의 남자주인공으로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가능성이 엿보였을 뿐 이 두 작품에서 이상윤이 주연으로 도드라졌던 건 아니었다. 그건 사극이나 멜로물에서 주연으로 등장했을 때 그의 매끄럽지 않은 딱딱한 연기가 더 눈에 띄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막바지에 접어든 tvN 월화드라마 <라이어게임>에서의 이상윤은 과거의 이상윤과 다르다. 비단 이마를 드러내는 전형적인 샐러리맨 헤어스타일에서 앞머리를 덮는 캐주얼한 머리모양으로 바꿔서만은 아니다. 이 드라마에서 사람의 심리를 순식간에 뚫어보는 냉철한 교수 하우진을 연기하는 이상윤이 그럴듯해서다.

<라이어게임>에서 하우진은 과거 이상윤이 연기한 착실남, 순정남, 듬직남이 아니다. 어머니의 죽음 때문에 마음과 표정에 장막을 두른 하우진은 싸늘하다. <라이어게임>에서 이 싸늘하고 냉소적인 이상윤은 그 동안 그가 보여줬던 수많은 사람 좋은 캐릭터보다 훨씬 더 흥미진진하다. 이런 냉랭한 표정과 아니꼬운 말투로 “난 지금 개야. 남다정의 충성스럽고 사나운 개” 라며 라이어게임 중 위기에 놓인 여주인공 남다정(김소은)을 도와줄 때 하우진은 어떤 멜로물의 남자주인공보다 빛난다. 또한 “나에게 필승법이 있어.”라는 식으로 운을 떼어놓은 뒤 라이어게임의 참가자들에게 새로운 승부의 전략을 설명하는 이상윤의 이성적인 말투 또한 하우진에 최적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상윤은 자신의 캐릭터인 하우진을 완전하게 장악하지는 못한 것 같다. 그건 이 드라마에서 또 하나의 싸늘한 어둠의 축인 강도영(신성록)이나 추악한 인간심리의 내면을 바닥까지 드러내는 제이미(이엘)를 연기하는 배우들과 비교할 때 더욱 그렇다. 사실 언젠가부터 <라이어게임>의 긴장을 이끄는 축은 강도영과 제이미다. 비단 드라마의 흐름이 그 쪽으로 치우쳐서가 아니다. 신성록과 이엘이 자신의 캐릭터를 가지고 노는 솜씨가 이상윤보다 한 수 위에 있어서다.

더구나 <라이어게임>에서의 하우진은 단순히 싸늘한 인물만이 아니라 조금씩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는 감정 연기가 필요한 캐릭터다. 그 감정의 측면을 드러내는 연기와 감정에서 배우 이상윤은 아직 머뭇거리고 삐걱거릴 때가 있다. 하지만 이 듬직한 엄친아가 싸늘한 얼굴로 변신을 시도한 것은 충분히 성공적인 선택이라 생각된다. 사람들에게 미처 알리지 못한 매력적인 얼굴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그의 사람 좋게 웃는 얼굴이 이제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는 면에서,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의 폭을 확실하게 넓혔다는 이유로 <라이어게임>은 배우 이상윤에게 꽤 괜찮은 게임이었던 것만은 틀림없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tvN, KBS,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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