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장그래의 행복론에 뼛속까지 공감하는 이유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드라마 찬(贊)△. 요즘 공중파와 케이블을 모두 합쳐서 가장 볼만한 드라마는 단연 <미생>이다. <미생>은 단순히 재미있는 드라마를 넘어 사회적 신드롬을 낳고 있다. 케이블 채널로서는 경이로는 7%대의 시청률을 나타내고 있는데다, 방송전후로 쏟아져 나오는 기사의 양으로 보나 검색순위로 보나 가장 관심도가 높은 드라마이다. 이를 반영한 콘텐츠파워지수(CPI)에서, <미생>이 4주 연속 1위를 차지하였다.

◆ 생생한 질감, 캐릭터의 힘

알다시피 <미생>은 고졸 검정고시 출신으로 대기업 상사의 인턴을 거쳐 계약직이 된 장그래(임시완)를 중심으로, 그의 회사생활을 담은 드라마이다. 그동안 회사생활을 보여주는 직장드라마는 많았다. <티브이손자병법>을 비롯하여 <막돼먹은 영애씨>나 <직장의 신> 등. 그러나 <미생>처럼 정교하고 치밀하게 회사생활을 보여준 드라마는 없었다. 세트나 소품의 디테일은 물론이요, 업무가 진행되는 방식이나 사람들 사이의 미묘한 갈등을 묘사하는 수준이 극사실적이다.

마치 실제 세계를 엿보고 있다는 착각이 들만큼 리얼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생생한 캐릭터들 덕분이다. 장그래와 오상식, 김동식은 물론이고 안영이, 한상률, 장백기 등 모든 캐릭터가 살아있으며, 각자의 사연과 개성을 지닌 채 자신의 스토리를 만들어간다. <미생>은 이들에게 시점 숏을 나누어 주며, 그들의 입장과 이야기를 들려준다. 절묘한 캐스팅과 배우들의 연기력도 기가 막히고, 이들로부터 최상의 연기를 뽑아내는 연출력도 놀랍다. 특히 무명에 가까웠던 김대명(김동식 역)과 변요한(한상률 역)의 개성 넘치는 연기를 보는 재미는 각별하다.

임시완(장그래 역)은 단순히 아이돌 출신 배우의 이미지를 벗었다는 정도가 아니라, 주눅 든 청춘의 모습으로 아예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가령 임시완을 90년대 드라마<미스터 Q>의 신입사원 김민종과 비교해보라. 당시 김민종은 패기와 낭만을 가득 품고, 상사에게나 여자에게나 당당하고 의욕이 넘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임시완은 패기와는 거리가 멀다. 어떻게든 노력하여 사회에 적응하겠다는 “출소한 장기수 같은” 마음가짐으로 안간힘을 쓸 뿐이다. 상사에게는 물론이고 동기 여자에게도 ‘싫다’, ‘좋다’를 말하지 못한다. 그는 소년처럼 작은 키에 수줍은 듯 발갛게 상기되는 볼을 지녔다.

이따금 의욕에 차서 눈을 반짝이며 상대를 바라볼 때면 사랑스러움이 한 가득이다. 그러나 풀이 죽어 어깨가 축 늘어질 때면 누구라도 가여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흔히 여자 앞에서만은 강해보이고 싶어 허세를 부리는 남성상과도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는 여자로 하여금 짓궂게 놀리고 싶거나(“인사 잘 한다~”) 보호해주고픈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자신에게 적극적으로 호감을 표하는 여자가 결혼에 대한 가치관을 묻자 “저는 계약직인 걸요”라고 답한다.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불가능한 삼포세대의 쓸쓸한 답변인 것이다. 임시완의 작은 키와 상기된 얼굴은 현실의 무게를 견디며 오늘도 실낱같은 소망으로 최선의 노력을 이어나가는 삼포세대의 절망과 희망을 대변한다. 어느 명배우도 이루지 못한 ‘시대의 아이콘’이 되는 영광을 그가 얻은 것이다.



◆ 자기계발서를 뛰어넘는 자기계발서

예전엔 ‘평범한 회사원’이라고 하면, 가장 평온하고 안정적인 일상을 누리는 사람으로 치부되었다. 가령 영화 <트루라이즈>에서는 날마다 전투를 치르는 특수요원이 따분한 일상을 견디는 회사원으로 신분을 속이는 이야기가 나온다. 특수전투요원의 반대 극에 ‘평범한 회사원’이 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미생>은 가장 평범해 보이는 회사원의 일상이 특수전투요원 못지않게 숨 막히는 전투의 연속임을 보여준다. 수많은 인턴들 중에서 피 튀기는 경쟁을 통해 겨우 신입으로 뽑히고, 신입으로 뽑힌 후에도 날마다 일과 인간관계에 치여 죽을 맛이다.

<미생>은 회사내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업무상의 갈등이나 성차별, 내부고발의 문제까지 회사생활의 난맥상을 깊숙하게 짚으며,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바둑에 빗대어 말해준다. 드라마는 협력업체와의 상생이나 성접대에 반대하는 신념 등 구체적인 직장윤리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깊게 전달되는 것은 정글 같은 세계에 내던져진 사회 초년생들이 어떻게 사회에 적응하여 편입해 갈 것인지를 고민하는 지점에 있다.

드라마는 장그래를 비롯한 신입사원들의 고군분투와 그들의 성장기를 보여준다. 그들은 정말 최악의 악조건에 놓여있다. 흔히 ‘재떨이로 일어선 자 재떨이로 망한다’고 자신이 가장 장점으로 삼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삼을 만한 천적 같은 상사들을 만나 고전 중이다. 가장 뛰어난 엘리트 장백기는 기본기를 강조하는 완벽주의자 강대리를 만나 사무보조 역할만 하며 겉돈다. 능숙한 사회생활을 자랑하던 한상률은 후배를 눙치고 이용하는 대리를 만나 “소시오패스”소리를 듣는다. 남녀 통틀어 가장 실무능력이 뛰어난 안영이는 똑똑한 여성을 깔아뭉개려는 최악의 남성중심 조직에서 박박 기고 있다.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차츰 길을 찾는다. 그런데 드라마가 이들의 사례를 통해 제시하는 적응 방법은 결론적으로 ‘자신이 잘났다는 생각을 버리고, 끈기 있게 기다리면서, 착실하게 기본기를 쌓은 뒤, 필요할 때 능력을 보여주라’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존버(존나게 버티기) 정신’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결국 <미생>은 뻔하고 보수적인 처세술을 이야기하는 수많은 자기 계발서들과 다름없는 텍스트일까?

<미생>은 한편의 잘 쓰인 자기계발서인 동시에 자기계발서를 넘어서는 면모를 보여준다. 장그래의 상식을 뛰어넘는 아이디어가 좋은 성과를 내고, 장그래가 사장님에게까지 인정받는 성공스토리를 이어가던 드라마는 여전히 그가 계약직임을 상기시킨다. 같은 사무실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었지만, 장그래는 장백기 등과 신분이 다른 사람이었다. (그러고 보면 이름 없는 여직원들을 비롯하여 상당히 많은 수의 사람들이 계약직이었다.)

장그래는 오상식에게 “이렇게만 하면 정직원이 되는 것인가?”묻는다. 오상식은 “어려울 것이다”라고 잘라 말한다. 그는 몇 년 전 계약직 여사원에게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며 희망을 말했던 자신을 책망한다. 그 사원은 회사의 손실을 혼자 뒤집어쓰고 퇴사하여 심지어 죽었다. 사건의 진짜 책임자였던 최전무는 그 사원을 완전히 잊었다. 노력하며 버티는 것이 개인적인 살 길일 수는 있지만, 사람을 계약직으로 고용하여 손쉽게 써먹고 버리는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이상 그러한 방식의 해결책은 한계적일 수밖에 없다.

오상식은 자기계발서가 말하는 “대책 없는 희망이나 무책임한 위로”가 무슨 소용인지 묻는다. 신차장은 “그런 말이 절실한 사람도 있다”고 받아친다. 이는 <미생> 스스로 자기계발서이자 자기계발서가 아님을 고백하는 말처럼 들린다. 물론 <미생>이 자기계발서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장그래가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 수 있는지 이다.



장그래는 “정규직이냐 계약직이냐 신분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계속 같이 일하고 싶을 뿐”이라 말한다. 장그래가 말하는 것은 소속감과 성취감이다. 이는 인간의 근원적인 행복의 요소이다. 장그래는 처음 오상식이 “우리 애”라고 말해주었을 때나 안영이가 “우리”라고 말했을 때, 상기된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곤란한 사업을 제안한 장그래에게 사장이 왜 이 사업을 제안했냐고 묻자 장그래는 “우리 회사니까요”라고 답한다.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돈이나 지위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같이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사람구실’을 하며 사는 것이다. 회사에서 하는 일들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토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봤자 (회사에 돈을 벌어다주는) 일일 뿐이지만, 그래도 ‘내 일’이라는 작은 성취감으로 하루하루의 일상을 채워가는 것임을 장그래도 우리도 잘 알고 있다.

문제는 그저 소속감과 성취감이 충족되는 삶을 원하는 수많은 장그래들에게 ‘월급이랑 승진밖에 중요한 것이 없는 일벌레’로 살아가든지, 그것이 안 되면 아무런 소속도 없고 쓸모도 없는 ‘잉여’의 삶을 살아가든지 양자택일이 강요되고 있다는 현실이다. 장그래의 그래(YES!)는 긍정의 정신을 뜻한다. 그것은 분명 좋은 것이다. 나쁜 것은 긍정의 에너지를 빨아먹고 버리는 경쟁과 착취의 시스템이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이러한 긍정의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공동체와 시스템을 새로 구성하는 것이다.

<미생>은 경쟁과 착취의 자본주의 시스템을 정밀하게 그리면서, 그 안에 살고 있는 인간이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의 가치를 유지한 채 살아가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을 처연하게 담는다. 자기계발서의 가르침을 자기계발서보다 더 통렬하게 전해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계발서가 담지 못하는 시스템의 모순과 인간다움에 대한 갈망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미생이 아니라 완생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은 개인이 아니라 이 사회이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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