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보다 ‘마녀’의 판타지가 더 크다는 건

[엔터미디어=이만수 기자] “아줌마는 애들을 어떻게 생각해? 애 낳고 싶어?”, “아줌마는 아들이 좋아 딸이 좋아?” <미녀의 탄생>에서 한태희(주상욱)는 사라(한예슬)를 굳이 ‘아줌마’라고 부른다. 제 아무리 자신이 변신을 시켜준 장본인이지만 이름을 부를 법도 한데 왜 그는 ‘아줌마’라는 호칭을 고집할까.

이것은 드라마 내적인 이유라기보다는 이 드라마의 기획적인 포인트에 더 이유가 있어 보인다. 아줌마들의 몰입을 유도하기 위한 이른바 ‘아줌마 판타지’가 그 호칭에는 묻어나기 때문이다. 마치 <아저씨>라는 영화에 그 아저씨 역할을 원빈이 하는 데서 나오는 효과와 비슷한 효과가 한예슬의 아줌마 역할에서 나온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아줌마들도 한예슬처럼 예뻐질 수 있고 사랑받을 수 있는 판타지의 밑거름이 만들어진다. 그 상대 역할로 아줌마들의 마음을 빼앗는 주상욱이 들어갔다는 건 이런 기획적인 포인트를 더욱 공고하게 해준다.

그래서 두 사람이 갑자기 달달한 부부 놀이에 심취하는 장면을 들여다보면 마치 <우리 결혼했어요>의 가상 부부 같은 손발이 오그라드는 오글거림을 느낄 수 있다. 주말시간대 드라마 주 시청층인 아줌마들을 위한 <우리 결혼했어요> 같은 느낌.

이 시간대의 중년 여성 시청자들이 요구하는 건 그저 로맨틱 코미디만으로는 부족하다. 따라서 <미녀의 탄생>에는 저 <아내의 유혹>이 갖고 있는 전형적인 복수 코드의 전개가 들어가 있다. 막장이라고 얘기하긴 어렵지만 흔히 막장 드라마를 연상시키는 긴박한 대결구도가 연출되고 극악한 인물이 등장하며 여지없이 급박한 배경음악이 흘러나온다.



성형이라는 좀 더 구체적인 장치를 쓰고 있지만 <미녀의 탄생>의 이야기 구조는 얼굴을 바꿔 남편에게 복수한다는 <아내의 유혹>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다만 얼굴에 점 하나 찍고 변신했다 우기는 것보다는 훨씬 완성도가 높다 얘기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 이야기가 새롭다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드라마에 마음을 빼앗기는 건 주인공의 성장과 그를 통한 복수극의 힘 때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이 미녀로 재탄생한 아줌마 사라와 한태희의 점점 달달해지는 코믹한 멜로 관계 때문이다. 이들은 복수를 꿈꾸면서도 현재의 달달함을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이 달달함을 즐기기 위해 복수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복수를 하기 보다는 두 사람의 멜로를 더 집중하게 만드는 <미녀의 탄생>이 보여주는 건 “잘 사는 것이 진정한 복수”라는 그런 이야기다. 실제로 두 사람이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은 욕망과 분노 속에 빠져 살아가는 악역들과 대비되면서 그 자체가 하나의 복수처럼 보이게 만든다.

이런 복수극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로맨틱 코미디’인 드라마가 이미 복수극이 가진 자극으로 점철된 주말극 시간을 뒤집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시청률에서는 <전설의 마녀>에 한참 뒤질 수밖에 없다. 미녀의 달달한 사랑이야기가 각박한 현실 속에서는 너무나 한가롭게 들리기 때문이다. 미녀의 판타지보다 마녀의 판타지가 더 크다는 건 우리네 현실이 그만큼 더 살풍경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만수 기자 leems@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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