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시장’ 주인공 찬양만 말고 한 걸음 더 갔다면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윤제균의 <국제시장>이 레퍼런스로 삼고 있는 건 로버트 제메키스의 <포레스트 검프>이다. 포레스트 검프가 50년대부터 90년대에 이르는 기간 동안 베트남전, 핑퐁 외교, 반전운동과 같은 미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과 마주치는 것처럼, <국제시장>의 덕수(황정민)도 흥남 철수, 서독 광부 파견, 베트남 민간 기술자 파견, 이산가족찾기와 같은 굵직한 사건들을 차례로 겪는다. 이 정도면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왔고 자식과 손주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도 많은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주인공으로 영화를 만든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다.

하지만 보면서 궁금해지는 게 있다. 과연 이 영화에서 현재는 어디에 있는가?

이것은 중요한 이슈이다. 거의 모든 시대물은 현재의 기반 위에서 쓰여지거나 만들어진다. 비록 창작자가 그 현재에 대해 단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현대'의 관점을 읽어내는 것은 시대물을 이해할 때 꼭 필요하다

<국제시장>에서 가장 눈에 뜨이는 것은 그 관점의 부재이다. 황정민이 연기한 주인공은 그가 겪는 역사의 흐름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고 그건 충분히 이해가능한 일이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건 생존하면서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그리는 영화는 달라야 하지 않을까? 주인공을 대신해서라도 그가 어떤 세상을 살아왔는지 말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포레스트 검프>도 생각이 없지 않느냐는 말은 당연히 반박이 안 된다. 물론 포레스트 검프는 그 주변의 세계가 어떤 곳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원작자와 감독은 이해하고 있고 자신만의 생각도 있다. 심지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검프는 꿋꿋하게 세상과 맞선다. 하지만 <국제시장>에서는 그런 흔적이 없다. 심지어 이 영화에는 캐릭터도 없다. 덕수는 스스로 존재하는 캐릭터가 아니다. 흥남 철수에서부터 이산가족찾기에 이르는 여러 에피소드를 대표하는 허수아비일 뿐이다. 캐릭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자기만의 이야기도 없다.



그보다 더 공허한 것은 영화 속 현재이다. 주인공의 회상 속에서 묘사되는 과거에는 피상적으로 묘사되었을 뿐 각각의 시대적 특성과 고민이 있다. 하지만 액자를 이루는 현재의 묘사에는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덕수의 자식들과 손주들은 막연히 '고생없는 현재'라는 판타지에서 살고 있고 그들의 존재이유는 거기까지 온 노인네의 고생을 찬양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딱 80년대에서 멎어버린 것이다.

<국제시장>보다 더 좋은 영화지만 비슷한 이유로 수상쩍은 작품으로 얼마 전에 개봉된 조근현의 <봄>이 있다. 이 영화의 시대배경도 과거, 그러니까 1969년이다. 불치병을 앓는 조각가와 그의 아내, 조각가의 모델을 다룬 이 작품에서 예술과 인생의 의미만큼 중요한 주제는 과거 한국 사회의 양성 관계 묘사이다. 그리고 영화는 이 모두에 진지하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도 현재를 느낄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영화는 1969년을 분명히 과거로 다룬다. 하지만 그 과거를 그리는 현재가 지금 관객들이 공유하는 2014년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봄>은 아무리 봐도 80년대 한국영화처럼 보인다. 회화적인 화면과 영화제 진출용 한국영화 분위기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주제를 다루는 방법이 그렇다. 영화는 두 아이의 엄마이고 주정뱅이 새 남편에게 시달리는 여자주인공 민경을 동정하고 그 고통을 진지하게 묘사하지만 그 이상을 넘어서지 못한다. 한국 여성잔혹사를 그린 7,80년대 영화의 관점에서 머무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이 영화의 갈등에서 가장 큰 무게를 차지하는 남성 조각가의 준구의 캐릭터는 흐릿하기 짝이 없다. 캐릭터를 완성할 충분한 자기 고민과 반성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비슷한 시기의 과거를 다룬 2014년 영화가 하나 더 있다. 김대우의 <인간중독>이다. 1960년대의 장교 관사가 무대인 이 영화는 분명 우리가 그 전에는 잘 몰랐던 세계를 소개한다. 그리고 1960년대 아시아 전체를 지배했던 보편적인 감수성에는 분명 매력적인 구석이 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흐릿한 개인 기억에 의존하며 이 시기를 그만의 '화양연화'로 그리는 감독의 의도는 어리둥절하고 갑갑하다. <인간중독>에는 기반이 되는 2014년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현재는 개인적 회상에 빠진 감독/작가의 좁은 틀 안에 갇혀 그 밖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를 창작자의 정치성향으로 밀어붙이면 쉽겠지만 이 경우에는 그럴 수도 없다. 참여한 사람들의 전작만 봐도 그렇게 단순할 수 없다는 건 여러분도 알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들을 아우르는 의식적인 자기검열, 현재에 대한 외면, 사고가 중간에서 멈추어버린 것처럼 보이는 나이브함, 과거에 대한 피학적인 향수를 못 보고 지나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국제시장>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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