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 김구라는 왜 신사라는 칭찬에 불편해할까

[엔터미디어=이만수 기자]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윤현민은 그 설렘을 얘기하며 김구라의 인터넷 시절까지 방송을 챙겨봤다고 말했다. 역시 <라디오스타>의 핵심적인 구심점으로서 김구라가 가진 존재감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그 때와 지금을 비교하는 질문에 윤현민은 “그 당시에 비하면 지금은 젠틀한 영국 신사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럴 것이다. 인터넷 방송 시절 거침없는 독설로 악명 높던 김구라는 지상파로 들어오면서 조금씩 연착륙을 해왔다. 그 방송으로 불편했던 연예인들과의 화해는 <절친노트> 같은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구라는 독설에서 직설로 서서히 대중들 앞에 서게 됐다.

윤현민의 ‘젠틀한 영국신사 같다’는 말에 그러나 김구라는 영 불편한 기색이었다. 그는 “아니다. 지금도 쓰레기다”라며 자신이 김포에 사는 이유를 근처에 쓰레기 매립장이 있어 지날 때마다 과거의 쓰레기 시절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날 게스트로 나온 바다 역시 김구라가 방송에서의 독한 모습과는 달리 실제로는 자상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자 김구라는 바다에게 “희안하게 보낸다”는 표현을 썼다. 칭찬이지만 그것이 김구라에게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차라리 쓰레기라고 하는 게 도와주는 것이라는 얘기에 바다는 짐짓 김구라에게 “쓰레기”라고 얘기했지만 정작 김구라는 그 얘기를 듣고도 찜찜한 얼굴이었다.

사실 <라디오스타>에 짧게 나온 이 ‘영국신사’와 ‘쓰레기’ 사이에 놓인 김구라의 아이러니는 그가 처한 상황을 잘 보여준다. 김구라는 자신이 어떤 이미지로 지상파 방송에서 입지를 세웠는가를 잘 알고 있다. 거침없는 독설의 이미지가 과거 어딘지 상대방을 과잉 배려하는 토크쇼에서 오히려 시원스런 느낌을 주었던 것.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런 상대방을 디스하거나 폭로하는 토크쇼의 경향은 조금씩 저물고 있다. 특히 연예인들이 나와서 그네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해 시청자들은 이제 시큰둥해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 김구라의 독설 혹은 직설은 과거만큼 힘을 발휘하지 못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제아무리 센 느낌을 주어도 감흥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자칫 그의 독설은 독한 이미지로만 남을 위험성이 있다. 그러니 김구라는 스스로 셀프 디스를 해가며 “자신은 쓰레기”라고 반성하는 모습과 동시에 그러면서도 자신의 본래 존재근거인 독설을 병행해야 하는 아이러니에 처해 있다. 독설을 마음껏 하기도 또 그렇다고 안하기도 뭐한 그런 입장.

김구라에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가 몸을 쓰는 예능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여전히 말로는 최고의 방송인이지만 요즘처럼 현장 속으로 들어가는 예능의 시대에 필요한 몸을 쓰는 것에 있어서는 그다지 재능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만일 유재석처럼 극한의 상황 속에 뛰어들어 몸으로 보여주는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다면, 김구라는 이런 독설과 신사의 아이러니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공격형으로만 느껴지는 김구라에게는 몸의 예능이 보여주는 ‘당하는 이미지’가 어쩌면 반드시 필요한 요소일 지도 모른다.

이만수 기자 leems@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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