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자들’ 감독이 저지른 일반적인 실수 몇 가지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영화 <기술자들>을 보고 와서 이 영화의 무엇이 잘못되었나에 대한 글을 한참 쓰다가 중단하고 말았다. 그 글은 영화만큼이나 재미없었다. <기술자들>이 저지르는 실수 대부분은 그 영화만이 저지른 특수한 실수가 아니었다. 준비없이 장르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대부분 저지르는 일반적인 실수였다. 당연히 그에 대한 지적 역시 진부해진다.

포기하고 처음부터 일반론으로 가기로 했다. 장르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저지르지 말아야 할 일반적인 실수는 무엇이 있는가. 어떻게 이를 극복할 수 있는가. "그런데 장르영화가 뭔가요?"라고 묻는 사람들에겐 그런 건 나도 잘 모른다고 답하겠다. 정의에 따르면 모든 것이 장르영화가 될 수 있고 장르영화라는 것 자체가 없을 수도 있다. 단지 이 글에서는 임의로 추리, SF, 모험, 액션, 스릴러로 제한한다. 주인공이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주를 이루는 장르들이다. 따지고 보면 로맨스나 포르노도 이에 해당하지 않느냐는 반박은 무시한다. 반박이 틀려서 그런 게 아니라 그렇게 따지다간 끝도 한도 없기 때문이다. 그냥 큰 그림을, 가족유사성을 보라.

◆ 장르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넓고 깊다.

평균적인 한국사람에게 느와르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라. 대부분 조폭영화라고 할 것이다. 이는 많은 한국 사람들이 느와르라는 개념을 홍콩 느와르를 통해 받아들였고 요새는 그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만든 김치 느와르를 필름 느와르의 전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랑스 비평가들이 4,50년대 미국영화들을 보면서 필름 느와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을 때 그들이 본 영화의 세계는 단순히 폭력적인 직업을 가진 남자들을 그린 영화 이상이었다. 복잡한 음모에 말려든 사립탐정도 있었고 부패한 경찰과 무도덕적인 살인청부업자들도 있었지만, 위기에 빠진 딸을 구하려는 가정주부나 '거위깃에 독을 묻혀 글을 쓰는' 고급 칼럼니스트도 같은 세계를 살았다. 그리고 대부분 조폭들은 다른 세계, 그러니까 갱스터 영화 장르에 살았다.

내가 만들려는 것은 김치 느와르인데 굳이 이런 걸 알아야 하나? 물론 알아야 한다. 장르가 무엇까지 할 수 있는지 알아야만 장르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다. 장르영화를 만들면서 맨날 앞에 있는 것만 훔치면 장르는 점점 축소되고 위축되다가 결국 타버린 찌꺼기만 남는다.



다른 장르도 마찬가지. <인터스텔라>를 보고 'SF의 탈을 쓴... 영화'라고 본 사람들은 대부분 SF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 장르인지 몰랐다는 말이다. 그들이 SF 영화를 만들었다면 얼마나 초라한 영화가 나왔을까.

비교적 좁은 장르인 케이퍼물도 경우도 다를 건 없다. 오 헨리의 <붉은 추장의 몸값>에서부터 장 피에르 멜빌의 <암흑가의 세 사람>까지를 포함하는 이 세계는 정서로 보나, 이야기의 재료로 보나, 캐릭터로 보나, 의외로 넓다. 이 가능성을 활용하지 않고 세상에 케이퍼물이 <도둑들>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케이퍼 영화를 만들면 어떻게 된다?

◆ 천재는 과대평가된 도구다.

추리나 SF는 천재를 선호한다. 이들 장르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대중문화는 초인을 선호한다. 이들은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 누리지 못하는 환상을 대신 체험하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그들을 이용하는 데에도 정도와 선이 있다. 어떤 장르를 택해도 드라마와 액션을 만드는 건 주인공과 맞먹는, 또는 주인공을 넘어서는 상대나 문제다. 당연히 주인공은 실패해야 하고 위기에 빠져야 한다. 주인공이 얼마나 똑똑하고 실력있고 대단한지 보여주고 싶어 상대와 문제를 축소한다면 이야기는 당연히 시시해진다. 그런 게 아닌 것처럼 아무리 이야기를 배배 꼬아도 달라지는 건 없다. 관객들은 작가와 감독이 주인공을 얼마나 편애하는지 직관적으로 눈치채기 마련이다. 사실 모든 걸 다 예상하고 모든 걸 다 추리해내는 주인공은 쓰기도 쉽다. 그냥 쓰면서 계속 앞뒤로 덧대면 되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따라야 할 가장 모범적인 모델은 도널드 E. 웨스틀레이크다. 성격은 다르지만 그의 도트문더 시리즈와 (리처드 스탁이란 필명으로 발표한) 파커 시리즈는 특히 케이퍼 물을 쓰려는 작가들에게 중요한 교과서다. 그리고 이들 이야기의 공통점은 뭐다? 도트문더와 파커가 아무리 치밀한 범죄계획을 세워도 예상치 못한 변수가 나타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를 수습하는 과정 중 주인공의 진짜 진가와 매력이 드러난다. 모든 것을 다 예상하고 계획하는 주인공은 영화 시작부터 죽어있다. 그는 영화 내내 자기 계획의 인질이다.

◆ 멋있는 도둑은 도둑질을 잘 하는 도둑이지 멋있는 척 하는 도둑이 아니다.

물론 영화에서나 그렇다는 이야기다. 현실세계에서야 도둑놈은 다 그냥 도둑놈이지.

그래도 법칙은 여전하다. 장르물에서 주인공이 멋있으려면 그가 일단 유능해야 한다. 꼭 완벽할 필요는 없다. 관객들을 만족시킬만큼만 유능하면 된다. 단지 그 유능함은 반드시 관객들 눈 앞에서 보여져야 한다. 말로만 유능하다고 하는 것은 소용이 없다. 주인공이 직업군인이건, 소매치기이건 금고털이이건 청부살인업자이건 우주비행사건 보안관이건, 우린 일단 그 사람을 직업적으로 존중해야 한다.

이 기본적인 일을 하지 않고 주인공을 멋있게 포장하려 한다면 일이 터진다. <기술자들>의 영화를 팔려는 사람들에게 주연배우 김우빈의 팬들은 중요한 타겟이다. 이들을 만족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주인공의 직업적 유능함은 여전히 우위이다. 이를 건성으로 다루면서 빈자리를 주연배우의 샤워신이나 살인미소로 채우려 한다면 영화는 공허해진다. 과연 이게 팬들을 만족시키는 일인지도 알 수 없다. 나는 <기술자들>을 김우빈 팬 두 명과 같이 보았는데, 그들은 모두 이 영화를 보면서 무척 괴로워했다. 물론 배우가 샤워신 한둘만 보여줘도 좋아하는 쉬운 팬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을 고려한다고 해도 팬들에게 가장 좋은 선물은 좋은 영화와 좋은 캐릭터다. 샤워신 같은 '상업적인' 장면은 그 다음에 들어가도 늦지 않다.



◆ 장르팬을 만족시키기는 쉽지 않다.

장르물이 기성품인 건 맞다. 이들은 규칙을 따르는 퀴즈와도 비슷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예술영화'보다 만들기 쉽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오히려 장르팬들은 그런 규칙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웬만한 노력으로는 이들의 기준을 통과하기 어렵다. 당연히 '이만하면 되겠지'의 기준은 높게 잡을수록 좋다. 장르팬 대신 주연배우 보러 오는 팬들만 만족시키면 되니 적당히 하면 되지 않겠냐고? 슬프게도 그런 식으로는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 어차피 우리의 능력은 야심보다 언제나 딸리는 법. 야심을 '뭐든 던져주면 만족하는 쉬운 관객' 수준으로 낮추면 도대체 뭐가 만들어지겠는가.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기술자들><인터스텔라><도둑들>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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