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연애’, 왜 ‘엽기적인 그녀’ 유사품 전락했나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요새 영화 <오늘의 연애> 홍보를 하고 있는 문채원의 인터뷰를 읽다가 이 영화의 오리지널 시나리오가 지금의 영화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원작은 한 여자에게 얽힌 세 남자에 대한 이야기였던 모양인데, 이게 감독 박진표의 각색 과정 중 전혀 다른 모양으로 완성되었다고 한다. 안 읽었으니 원래 시나리오가 어떤 모양이었는지, 각색 과정이 이 이야기에 어떤 손해나 이득을 끼쳤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주섬주섬 모은 정보를 종합해보면 손해 쪽에 가깝지 않을까 추측하게 된다.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리 봐도 이 각색 작업은 원작을 '한국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적인 틀'로 끌고 가려는 시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한 때 한국 로맨틱 코미디가 조폭 코미디처럼 뻔한 중저가 충무로 영화의 상징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난 이 장르에 대해 불만인 적도 없었고 이에 대한 비판도 기계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지금처럼 전형적인 한국 로맨틱 코미디가 이처럼 적은 것이 비정상적이다. 조폭 코미디와는 달리 로맨틱 코미디는 훨씬 보편적인 장르이다. 그리고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영화들이 계속 나오려면 보편적인 장르에 속한 안정된 기성품 영화들이 밑에서 꾸준히 기반이 되어주어야 한다.

이런 영화를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노련함과 진부함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난생처럼 로맨틱 코미디라는 낯선 장르에 도전하는 감독에겐 더욱 그렇다. 말이 났으니 하는 말인데, 낯선 장르에 도전하는 감독이 진짜로 독창적인 결과를 내는 일도 그리 많지 않다. 독창성은 지키고 깨트려야 할 공식을 가려낼 수 있는 경험과 심미안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오늘의 연애>에서 필자가 발견한 그 진부한 공식 몇 개를 지적해 보기로 한다.

일단 내레이션. 한국 로맨틱 코미디에 이상할 정도로 내레이션이 많다는 사실을 눈치채신 적 있는가? 한국에서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영화가 있다면 그건 십중팔구 로맨틱 코미디다. 다른 장르에서 거부된 내레이션들이 몽땅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 망명한 것처럼 보인다. 성비를 계산한 적은 없지만 남자 쪽이 많은 편이다.



원인이 무엇이건 이게 얼마나 위험하고 나쁜 도구인지 눈치채는 사람이 없는 이유는 뭘까. 생각해보라. 이성애로 제한한다면 로맨틱 코미디는 성대결의 구조를 갖고 있다. 이상적인 영화는 양측을 최대한 평등하게 다룰 것이다. 그래야만 긴장감이 최대한으로 유지되고 겹쳐지지 않는 양측의 입장이 영화를 더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쓰기는 어렵다. 대부분 이성애자 작가들은 한쪽 편밖에 보지 못한다. 하지만 어렵다는 건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게다가 이 게으른 습관은 캐릭터를 제한하고 만다. <오늘의 연애>의 이승기 캐릭터가 내레이션의 주장과 같은 인물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 아무런 폭력도 강요도 없었는데 18년 동안 자진해서 한 여자의 노예 노릇을 하고 다녔다면 그건 그냥 그가 그런 노예 생활이 좋았다는 것이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어느 것도 내레이션의 징징거림과 100퍼센트 겹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그에게 쓸데없는 기회를 주느라 정작 캐릭터의 재미있는 부분을 잘라버렸던 것이다. 한국 로맨틱 코미디의 내레이터들은 다 같은 족속들이니까. "난 네가 보통 한국 사람이라면 100퍼센트 공감할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야." 다시 말해 관객들의 자기 바보짓의 인질로 삼는 부류인 것이다. 그런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가 심심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제대로 된 영화라면 주인공에게 그런 만능 변명 기회를 주어선 안 된다.

공공장소에서 고함치며 구애하기는 어떤가. 이런 거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수많은 한국 로맨틱 코미디가 이를 클라이맥스의 표준으로 잡는 것은 문제가 있다. 물론 폭발적인 효과가 필요하긴 하다. 그를 위해 넘어야 할 장벽이 있으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고려한다고 해도 이들 장면들의 어조는 수상쩍을 정도로 비슷하다. <오늘의 연애>에 나오는 자이로 드롭 장면은 심지어 독립적인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나온 로맨틱 코미디에서 비슷한 장면들을 뽑아 재편집해도 대부분의 관객들은 거의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물론 배우와 장소가 바뀌는 것이 신경 쓰는 사람들도 있긴 하겠지만.



이 사태의 이유는 코미디-신파라는 기본 공식에서 달아날 생각이 있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냥 생각이 없는 게 아니라 여기서 달아나는 것에 대해 심지어 공포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그 공포감의 결과가 필사적으로 진부한 공식을 잡는 행동으로 이어지는데 이것이 '공공장소에서 고함치며 구애하기'와 같은 기계적인 행동인 것이다.

전에 <기술자들>에 대해 지적했던 문제점은 로맨틱 코미디에도 그대로 남는다. 한마디로 레퍼런스로 잡는 영화가 지나치게 제한되어 있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엽기적인 그녀>이다. 심지어 원작은 별로 <엽기적인 그녀> 같이 않은 이야기인데도 겁먹은 작가들이 달라붙은 결과 무의식적으로 <엽기적인 그녀> 화가 이루어진다. 물론 앞에 '무의식적으로'라는 말을 덧붙인 이유는 작가들이 뻔뻔스럽게 이 공식을 그대로 재활용할 생각이 없었을 것이라 믿고 싶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수많은 문제점들을 지적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 이야기들, 그리고 하려다가 귀찮아서 그만 둔 이야기들은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제발 <엽기적인 그녀> 이외에 다른 작품도 보자. 한국 관객들이 오로지 <엽기적인 그녀> 유사품만 좋아한다는 생각도 접자. 이래선 이승기·문채원 카드뿐 아니라 누구를 캐스팅해도 통하지 않는다. 로맨틱 코미디는 의외로 큰 장르이다. 영화로만 제한한다고 해도 프랭크 카프카, 프레스턴 스터지스, 우디 앨런에 이르는 거대한 강이 흐르고 골라잡을 공식들도 많다. 그러니 한국 관객들에게도 선택의 기회를 한 번 주는 것이 어떨까.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오늘의 연애>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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