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 이러니 10년째 사랑받을 수밖에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2003년 이후 당근이 이토록 활약한 때가 또 있었던가. 스마트폰 게임을 유희로 삼는 세대는 잘 모를 수도 있는데 한때 ‘당연하지’를 ‘당근이지’라고 말하는 게 ‘힙’한 시절이 있었다. 또한 당시 당근은 숫자송, 우유송 등 귀여운 노래 중 단연 최고의 히트곡인 ‘당근송’ 등을 통해 큰 인기를 구가했다. ‘토토가’ 이후 요즘 <무한도전>하면 ‘추억’이라서 그런가. 이번엔 실로 오랜만에 당근을 다시 웃음의 영역으로 가져왔다.

물론 <무한도전>이 추억을 되새김하는 프로그램과는 거리가 멀다. 제목 그대로 늘 시대에 도전하고 변화를 이끌어온 예능계의 혁신 아이콘이다. 그런 차원에서 2015년 첫 녹화도 뜻 깊게 시작했다. 긴 시간동안 함께해온 시청자들에게 지난해의 사건 등에 대해 이런저런 소회를 밝히고 역시나 혁신의 아이콘답게 방송녹화 중 실시간 SNS를 통해 시청자들과 즉각적인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소통했다. 시청자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면서 해야 할 아이템들도 추려보는 등 새해 인사 겸 첫 출발을 했다.

여기까지는 정으로 그리고 관성으로 봤다. 정형돈의 10분 진행과 같은 자투리 웃음도 있었지만 예능에서 기대할만한 재미라기보다 그동안 함께해온 서로가 서로에게 쌓인 이야기를 나누는 인사에 가까웠다. 그리고 SNS상에서 접한 시청자 의견을 바탕으로 새해 첫 스타트를 끊었다. 어떤 아이템을 시작할지 모르는 멤버들은 아픈지, 자격증 따야 하는지, 장기 프로젝트인지, 추격전인지 궁금해 했고, 그런 모습을 보며 시청자들은 기대감을 끌어올렸다.

그런데 뜻밖에도 2015년 첫 도전 아이템은 액션블록버스터로 거듭난 무한상사였다. 액션의 기본을 배우기 위해 언제나 그렇듯 영문도 모르고 ‘끌려간’ 액션스쿨에서 정두홍과 허명행 등 저명한 액션감독의 지도하에 액션연기자들과 영화 <신세계>와 <올드보이>의 명장면들을 학습했다.



시무식 같은 일종의 의례와 같던 방송은 이때부터 빵빵 터졌다. 실감나는 액션 연기는 쭈구리 생활 12년, 학교에서 맞고만 다니던 남자들로 구성된 <무도> 멤버들의 에너지와 허세를 끌어내기 충분했다. 물론 쫄바지를 입고 까불다 치욕을 당하고, 괜히 긴장해서 뉴트리아처럼 변하는 유재석의 입모양과 머릿속 상상과 현실의 격차가 여실히 드러나는 모든 멤버들의 몸동작은 액션이란 측면에 있어선 대참사였지만 코미디의 측면에선 대폭소를 자아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정준하가 한 <신세계>의 유명한 엘리베이터신 재현이었다. 공중파 주말 예능에 맞게 영화 속 칼을 대신해 당근을 소품으로 활용하면서 정준하와 당근의 대향연이 벌어졌다. 웃통 까고 끝끝내 당근 똥침을 당하는 정준하의 진상 몸개그에 무술감독과 박명수는 물론 많은 시청자들이 실로 오랜만에 배꼽을 잡고 뒹굴었고, 정형돈은 웃다가 목이 쉬었다. 여기에 추억의 당근송과 ‘병맛’ 자막이 덧입혀졌다. <무한도전>다운 클래식이다. 하하의 말처럼 34살에 이 모든 걸 누군가(유재석)이 기획한 것도 아니고, 절대로 맞출 수도 없는 합이다.



여기서 정준하의 당근 대향연이 이토록 웃기고 반가웠던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새해 첫 녹화에서 이런 웃음이 나왔다는 건 단순히 몸개그를 넘어선 의미가 있다. 멤버들의 관계와 합으로 승부를 보던 무한상사가 액션블록버스터로 거듭나면서 <무도>의 기본 설정이었던 평균 이하의 부족한 남자들의 모습이 오랜만에 가감 없이 원 없이 드러났다. 비루한 몸짓을 보인 이들은 액션이란 장르에 들어서면서 처음 그 부족한 상태로 돌아갔다. 그동안 10년째 예능계를 휘어잡고 있는 유재석부터 막내 하하까지 이미 자리 잡은 모습이 익숙한 출연자들에게서 여전히 평균 이하의 부족한 남자들의 얼굴을 만난 것이다.

제작진과 액션스쿨 배우들이 몰래카메라로 준비한 차량 습격 장면에서 겁먹은 나머지 112에 신고한다는 걸 114에 걸어버린 박명수나 달려드는 액션 연기자들에게 겁먹은 몸짓으로 푸드덕 거리는 정형돈, 하하의 몸짓은 10년 전 그때 그 모습과 달라진 게 하나도 없었다. 초심을 차리면 되는 게 아니라 저 안에 침잠해 있는 초심이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상황을 제작진이 설정했고, 작동했다. 오랜만에 들은 당근송이 반가운 것처럼 2015년에도 여전히 <무한도전>다운 몸개그와 자막의 향연을 즐길 수 있다는 게 반가웠던 건 바로 이런 이유다. 이것이 배꼽을 앗아간 웃음에 깔린 정서가 아닐까. 그래서 2015년, 여전히 10년째 사람들은 토요일 저녁엔 <무한도전>을 본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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