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빅’의 풍자가 또 다른 갑질로 오도된 이유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이른바 ‘갑질’이라는 단어는 새해에 가장 민감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갑을’ 논란은 작년 초부터 뜨겁게 벌어졌던 일이지만 작년 말 대한항공 사태가 터지면서 그 민감성은 더 커졌다. KBS <개그콘서트>가 ‘갑을컴퍼니’를 그렸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최근 SBS <웃찾사>나 tvN <코미디 빅리그>가 그리는 갑을 관계의 풍자는 어느 때보다 더 신랄해졌다.

<웃찾사>의 ‘뿌리 없는 나무’는 갑질 하는 권력자에 대한 비판과 풍자가 그 핵심적인 재미다. 변성기가 지나지 않아 위엄이 없어 고민이라는 왕을 희화화시킨 장면도 그렇지만, “돈보다 귀한 열정페이를 줬다”는 중전에게 “정도전 도전 천곡 나가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라고 비판하며 ‘갑’이 아니라 “꼴갑”이라고 말하는 왕에게서는 속 시원한 마음마저 들게 만든다.

하지만 이런 갑질에 민감해진 사회는 뜻하지 않은 논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코미디 빅리그>의 ‘갑과 을’이라는 코너에서 갑자기 불거진 보육교사 비하 논란이 그것이다. 백화점 모녀 사건을 소재로 가져온 이 코너에서는 갑자기 ‘보육교사’라는 인물이 나타나 뺨을 때리는 장면을 보여줬다. 최근 폭력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게 된 인천 어린이집 폭행교사를 풍자한 대목이다. 그런데 이 장면이 어린이집 보육교사 전체를 비하했다는 난데없는 논란이 제기된 것.

이런 논란이 나오게 된 것은 이 코너의 캐릭터로 등장한 ‘보육교사’를 마치 전체를 대변하는 듯한 인물로 오인한 데서 생긴 일이다. 하지만 이것은 과한 논란이 아닐 수 없다. 누가 봐도 보육교사의 그런 이상한 행동은 일반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번 인천 어린이집 폭행교사라는 사건을 염두에 뒀을 때만이 일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장면일 뿐이다. 그러니 그건 보육교사를 일반화한 것이 아니라 그 특정 교사에 대한 풍자를 담은 것이 분명하다.

<코미디 빅리그> 측은 바로 이런 해명을 했지만 이 해프닝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여기에도 어른거리는 것이 바로 ‘갑질 민감성’이기 때문이다. ‘갑과 을’이라는 코너는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듯이 바로 이 갑질 하는 사회에 대한 강한 풍자를 담고 있는 것이지만, 바로 이 개그 코너의 풍자가 마치 방송사와 프로그램이 갑의 위치에서 누군가를 비하한 것처럼 호도되는 현실이 거기에서는 드러난다.



‘갑질’ 논란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은 더 폭발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은 많은 사안들을 바로 이 ‘갑과 을’의 프레임으로 제시하곤 한다. 그만큼 반응이 뜨겁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갑과 을’의 논란에 대해 많은 대중들은 “없는 문제를 만들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논란을 밝히고 문제를 제기하는 건 언론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지만 때로는 문제 그 자체보다 논란에 더 집중하는 역전이 일어나기도 한다.

<나는 가수다>에 이수가 합류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결국 하차하는 과정에서도 ‘방송사 갑질’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하지만 이것 역시 논란에 집중된 결과 전후가 뒤바뀐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물론 하차시키는 과정에서 MBC는 너무 성급함을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하차시키고 통편집 한다는 건 방송사나 제작진에게는 그 자체로 손실이지 득이 될 것이 없다. 결국 그걸 결정하게 된 것은 이수의 출연을 반대하는 여론이 그만큼 셌기 때문이다.

이것을 방송사의 갑질 프레임으로 보게 된 것은 물론 MBC에 대한 대중들의 반감이 깃들여진 탓이다. 그간 MBC 경영진이 교양국 자체를 없애버리고 중요한 인력들을 경연진의 입장과 상반된다는 이유로 한직으로 내모는 과정에서 대중들은 MBC가 뭘 해도 갑질의 프레임으로 사안을 바라보는 시선이 생겼다. 그러니 이 문제 역시 방송사의 갑질 논란으로 비화된 것이다.

최근 일어나는 많은 사안들이 흔하게 ‘갑질 논란’으로 비화되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가 처한 안타까운 현실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세금을 내도 가진 자는 덜 내고 유리지갑을 가진 직장인들만 더 내야 하는 이런 현실 속에서 어찌 갑과 을의 프레임이 생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모든 걸 갑을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자칫 문제의 본질을 놓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물론 갑질에 대한 풍자와 비판은 더 신랄해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그 프레임으로 재단하는 건 위험하다. <코미디 빅리그>의 풍자가 또 다른 갑질로 오도되는 것처럼.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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