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1970’ 차라리 16부작 드라마로 만들었다면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반(反)▲.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혹시 알아요? 영동이 명동될지?” <말죽거리 잔혹사>와 <비열한 거리>를 찍었던 유하감독의 최신작 <강남 1970>에 나오는 대사이다. 강남이 ‘영동’으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물론 ‘영동대교’란 이름 속에 살아있지만, 지금 강남을 ‘영동’이라 부르는 사람은 없다. ‘영동’이란 영등포의 동쪽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영등포는 있었지만, 강남은 아직 생겨나지 않았던 시절의 용어이다. 강남이 생겨난 것은 1970년에 ‘남서울 개발계획’이 발표되면서 부터다. ‘남서울’이라. 그러니까 강남은 당시 서울의 일부라기보다는 서울의 남쪽 바깥에 딸려 있는 또 다른 시가지로 개발되려는 땅이었다. 현재 강남이 강북과 대응하며 서울을 양분하는 광의의 개념이자, 강북을 압도하는 최고 노른자위 땅이 된 것은 불과 한 세대 만에 벌어진 일이다.

◆ 강남의 형성사에 관한 일종의 사극

<강남 1970>은 일종의 강남의 형성사에 관한 영화이다. 1970년 강남은 허허벌판이었고, 지도위에 매직으로 낙서하듯 죽죽 그어진 선에 따라 여기는 고속터미널, 여기는 아파트 단지 등이 세워졌다. 그 지도는 청와대에서 나온 것이었다. 당시 서울시 기획관리관이었던 손정목 교수의 증언에 따르면, 청와대 경호실장 박종규가 서울시 도시계획과장 윤진우를 통해 과천, 서초, 강남, 잠실 중 투자가지가 높은 땅을 사들이고 되팔아 땅값을 올린 뒤 ‘남서울 개발계획’을 발표하였다. 그 결과 강남의 땅값은 100배나 치솟았다. 대선을 앞두고 자금이 필요했던 청와대가 부동산 투기를 벌인 것이다. 그 아래에 5.16 쿠데타의 주역출신 국회의원과 그가 거느린 조직 폭력배들이 있었다. ‘큰 손’ 복부인과 중동건설로 돈을 만지게 된 아주머니들이 있었고, 그들을 춤바람으로 유혹하던 카바레 제비족과 욕망에 눈 뜬 넝마주이가 있었다.

<강남 1970>은 두 넝마주이가 폭력과 욕망을 향해 내달리다 명멸해가는 이야기다. 고아원에서 만난 용기(김래원)와 종대(이민호)는 넝마주이다. 라면으로 허겁지겁 끼니를 때우고 난방도 안 되는 무허가판잣집에서 살던 그들은 어느 날 철거민이 된다. 철거를 통해 처음 깡패를 접한 이들은 조직폭력에 휩쓸리고, 3년 후 서로 다른 모습으로 만난다. 종대는 퇴역한 건달 강길수(정진영)의 식구로 살며 민마담(김지수)과 함께 영동의 땅을 사들이고, 용기는 명동파의 2인자가 되어 영등포파와의 일전을 앞두고 있다.



<강남 1970>은 부동산개발을 중심으로 조직폭력과 자본과 권력이 얽혀드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비열한 거리> <짝패> <범죄와의 전쟁> 등과 궤를 같이한다. 부동산 개발에 폭력과 자본과 권력이 응집되어 있다는 것은 이제는 거의 상식이 된 이야기며 새롭지 않다. 더구나 <범죄와의 전쟁>이 1980년대를, 드라마 <황금의 제국>이 1990년대를, <짝패><비열한 거리> 등이 2000년대 부동산개발의 비화를 깊숙이 보여준다는 것을 감안하면, 1970년대 부동산 개발에 얽힌 폭력과 자본과 권력의 난맥상은 전혀 놀랄만한 것이 아니다.

<강남 1970>은 무수한 부동산개발 영화의 원형에 해당되는 것으로, 개발의 역사를 계보학적인 차원에서 짚는다. 애초에 서울의 강남이라는 곳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사극인 셈이다. 따라서 이 영화가 새롭지 않은 동어반복에 불과하다는 평은 본질을 벗어난다. 관전 포인트는 어차피 사극에 해당될만한 이 영화가 얼마나 시대의 공기와 갈등의 원형질을 근본적으로 도해해내는가 하는 것이다.



◆ 관객은 버려두고 잔혹한 액션과 정사장면으로 강렬한 자극만

영화는 부분적으로 그 과제를 성취한다. 청와대에서 나온 개발 계획도를 정점으로 조폭을 거느린 지역구의원과 복부인 등이 팔일무를 추던 구도와, 중동건설과 춤바람과 제비족이 어우러진 1970년대의 풍속사적 조명은 흥미롭다. 특히 일본어로 엔가를 부르며 권력층을 접대하던 민마담의 모습은 당시 권력층들의 취향을 드러낸다. 경부고속도로와 바로 이어지는 제3한강교(한남대교). 그 다리 바로 넘어 나타나는 신사동이나 압구정동까지야 그렇다 쳐도, 한참이나 먼 도곡동이나 잠실을 말할 때 등장하는 “돈이 모이는 지세”라거나 “파도 파도 모래 땅”이란 대사는 또 어떤가. 부동산이라기보다는 ‘자연의 일부인 땅’에 대하여, 인문지리학 이전의 원초적인 학문인 풍수지리와 지질학이 각축을 벌이는 형세다.

하지만 <강남 1970>은 성공적인 작품이 아니다. 16부작 드라마로 만들어질 만한 정도의 이야기를 영화 한편에 무리하게 욱여넣는 과정에서 캐릭터에 대한 깊이 있는 묘사나 감정이입은 완전히 탈각되어버린다. 더구나 필요이상으로 삽입되어 있는 정사장면은 성찰이나 몰입을 더욱 방해한다. 그 결과 관객들은 정신없이 펼쳐지는 배신의 서사와 난폭한 정사장면이 주는 자극에 휘둘리다가 ‘정해진’ 결말을 보게 된다. 결말은 장르의 법칙과 역사의 증명을 따른다. 누군가 어두운 터널의 끝에서 미처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죽는 동안, 누군가는 축배를 든다. 그는 이후 ‘강남의 토박이’임을 자처한다.

영화는 남한사회의 욕망이 응축된 인물들의 운명과 누가 강남땅을 차지하는가를 통해 역사를 드러내는 방식을 취한다. 그러나 <범죄와의 전쟁>이나 <황금의 제국>이 지닌 신랄함과 정밀함에는 미치지 못한다. 더욱이 <범죄와의 전쟁>과 <황금의 제국>이 지닌 현재 남한사회를 지배하는 권력의 연원과 구조를 설명하는 능력에 비하면 훨씬 못 미친다. <강남 1970>은 잔혹한 액션과 정사장면으로 강렬한 자극을 주지만, 오히려 1970년대를 지극히 표피적으로 소비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서사와 자극의 강도를 조금 덜고 관객의 감정선을 고려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차라리 16부작 드라마로 리메이크 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강남 1970>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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