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정치판에 대한 강력한 ‘펀치’만으로 충분한

[엔터미디어=이만수 기자] SBS <펀치>에는 그 흔한 멜로도 없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결코 쉬운 드라마가 아니다. 검찰 내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비리와 권력을 쟁취하려는 이들이 벌이는 난타전이 드라마의 핵심적인 내용이기 때문에 잠시라도 한 눈을 팔면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기 일쑤다. 그러니 시청률로만 보면 이만큼 불리한 드라마도 없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애초의 예상을 뒤집고 <펀치>는 몇 주 동안 계속 동시간대 타방송사의 드라마들을 시청률에서도 압도하고 있다. KBS <힐러>는 회가 거듭되면서 점점 뒷심이 빠지는 모양새고 MBC <미치거나 빛나거나>도 아직까지 사극으로서의 효과를 내지는 못하는 상황. 이들 타방송사들의 드라마들이 멜로와 익숙한 드라마적 관습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펀치>가 이 정도의 성적을 내고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여기에는 역시 박경수 작가라는 말이 허명이 아니라는 걸 입증하기라도 하는 듯한 <펀치>의 놀라운 대본 전개가 그 한 몫을 차지한다. 보통의 드라마라면 대충 어느 정도 지나면 승자와 패자가 확연히 드러날 텐데 이 드라마는 도무지 그럴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한번 펀치를 맞고 쓰러지면 잠시 후에는 다시 일어나 상대방에게 펀치를 날리는 것이 계속해서 반복된다.

게다가 그 변화의 상황에서는 과거의 적이 지금의 동지가 되는 관계의 변화도 생겨난다. 인물들은 서로를 죽일 듯이 으르렁대다가 갑자기 공동의 적을 만나게 되면 그 적 앞에서 협력하는 관계로 돌아선다. 결국 또 한 명의 희생양으로 쓰러질 위기에 처한 조강재(박혁권)가 앙숙일 수밖에 없었던 박정환(김래원)과 손을 잡게 되는 건, 두 사람이 모두 이태준(조재현) 검찰총장과 윤지숙(최명길) 전 법무부 장관의 희생양이 되었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우리가 막장드라마라고 불리는 드라마에서 느꼈던 바로 그런 속도로 달려간다. 하지만 그 엄청난 속도감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는 막장드라마와는 전혀 다른 그럴 듯한 개연성을 잃지 않는다. 여기에 박경수 작가 특유의 은유적인 대사는 드라마의 격과 듣는 맛을 살려낸다. 사건이 끝없이 터지고 그 와중에 관계가 끊임없이 바뀌면서 등장인물은 물론이고 그걸 보는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안기지만 드라마가 어떤 품격을 지키고 있다고 여겨지는 건 그래서다.



또한 이 막장드라마를 연상시키는 인물들의 표리부동과 이합집산은 기묘하게도 지금의 대중들이 정치권이나 법 정의를 바라보는 시선과 맞물려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안타깝게도 대중들에게 정치권이란 정의를 구현하거나 복지를 추구하기 위해 어떤 정책을 실현하는 그런 이미지로 다가오지 못하고 있다. 즉 목적을 위해서는 누구와도 연합할 수 있는 그런 막장적인 이미지가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정서 안에서 이 드라마의 끝없는 인물의 변화는 이상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이라는 느낌마저 준다. 깨끗한 검찰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였던 윤지숙 법무부 장관이 아들의 병역비리 문제가 들춰지면서 그 검은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나, 같은 꿈을 꾸었던 이호성(온주완) 검사가 어느 순간 우정도 배신하고 권력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은 안타깝게도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펀치>가 그 흔한 멜로 하나 없이도 이런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는 건 아마도 그 적나라한 막장의 정치판으로 그려지는 법 정의 현실에 고개가 끄덕여지기 때문이 아닐까. 처음에는 선과 악, 정의와 비리가 나뉘어 싸우는 듯한 느낌으로 시작했지만 한참 지나고 나자 그것은 선도 악도 없는 그저 하나의 권력게임처럼 변질되어 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 아닐까. <펀치>가 그 난타전을 통해 보여주는 현실.

이만수 기자 leems@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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