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쎄시봉’이 빠져든 복고 향수 장사의 위험한 함정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첫 감독작인 ‘YMCA 야구단’ 때부터, 아니, 그가 첫 각본을 쓴 <사랑하기 좋은 날> 때부터 김현석은 꾸준히 양질의 남성중심 멜로드라마를 만들어왔다. 여기서 '남성중심'은 야유나 비아냥의 의미를 담고 있지 않다. 이성애자 작가나 감독이 이성애 로맨스를 쓰려면 일단 어느 한쪽 성에서 출발해야 할 테니까. 그리고 지금까지 그가 만든 영화들의 장점은 그가 다루는 영역 안에 거주하는 남자들에 대한 명확하고 객관적인 이해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광식이 동생 광태>도 그랬고 <스카우트>도 그랬고 <시라노: 연애조작단>도 그랬다. 남자들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그의 단점이 아니었다.

암만 생각해도 그의 장기가 살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던 시간 여행 SF 스릴러 <열한시>를 떠나 김현석이 60년대 쎄시봉 음악감상실을 소재로 한 <쎄시봉>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필자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어떤 계획을 품고 있는지는 잘 알 수 없었지만 정우가 연기한다는 트윈 폴리오 전신인 쎄시봉 트리오의 마지막 멤버는 무척이나 김현석스러워 보였다. 새롭거나 복잡하지는 않지만 오랜 친구처럼 믿어도 될 만한 캐릭터 같았다.

기대했던 대로, <쎄시봉>에는 김현식의 전작을 재미있게 만들었던 수많은 것들이 있었다. 남자 캐릭터들은 재미있었고 여자캐릭터들은 매력적이었다. 유머감각과 대사의 감도 여전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번 영화는 그가 <시라노: 연애조작단>까지 꾸준히 유지해왔던 그의 이전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뭔가 중요한 것이 빠져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른 것은 이 영화가 60년대를 다룬 시대물이라는 것이었다. 시대물에는 시대물만의 게임이 있다. 일단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이미 사라져버린 시대와 지금은 죽거나 늙은 사람들의 청춘을 재현하는 게임이 더 중요한 것이다. 게임 자체는 매력적이지만 여기에 지나치게 몰두하다보면 정작 드라마에 소홀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가설은 만족스럽지 못하다. 김현석에게 시대물은 낯선 영역이 아니다. ‘YMCA 야구단’부터 개화기를 무대로 한 시대물이었다. <스카우트> 역시 광주민주화 운동과 선동렬 스카우트라는 두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다. 심지어 현대물인 <광식이 동생 광태>도 삼풍백화점 사건이라는 사건에 발을 걸치고 있다. 특별히 정치적이랄 것 없는 허구의 인물들이 역사적 사건의 일부가 되는 결말도 마찬가지. 그렇다면 앞의 영화는 성공했는데 <쎄시봉>은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참 머리를 싸매고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이 영화가 과거를 보는 감상적인 접근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국제시장>과는 달리 <쎄시봉>은 편리하게 안전한 이야기만 하는 영화가 아니다. 쎄시봉의 이야기 자체가 그를 막는다. 과거 문화적 향수와 군사정권 시대의 악몽 모두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감상적이 된 이유는 단 하나. 거의 30분에 가까운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때문이다.



‘YMCA 야구단’에는 현대의 프레임이 없다. <스카우트>의 에필로그에는 단순한 설명 이상의 무언가가 없다. 하지만 <쎄시봉>에서 90년대와 현재의 에필로그는 끊임없는 회한과 변명의 연속이다. <국제시장>에서와는 달리 이 감정은 비교적 부정적이지만 노인네와 아저씨, 아줌마의 감상 속에서 60년대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작정하고 노화시킨다. 복고 향수 장사의 위험이 여기에 있다. 이런 프레임 안에서 당시의 젊음은 제대로 해석될 수 없다. 심지어 이야기꾼들이 그들 세대가 아니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여기에서 두 번째 치명적인 문제점이 발견된다. 아까 김현식의 남성중심주의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건 그가 자신이 다루는 캐릭터에 대한 객관성을 잃지 않을 때나 그랬다. <쎄시봉>에서 그는 결국 함정에 걸려 넘어진다. 뒤에 자그만치 30분이나 되는 에필로그가 달려야했던 막판의 멜로드라마를 보라. 80년대 이현세 만화와 다를 게 뭔가. 이 비장한 척하는 감상주의는 희생처럼 보이지만 사실 지독한 자기도취의 퍼레이드이다. 아무리 평생에 걸친 고통을 이해하고 싶어도 이 감상주의가 먼저 보이는 것이다. 실제 삶을 사는 인물과는 달리 필요한 감정만 챙기는 이야기꾼과 배우는 자기도취의 퍼레이드에 훨씬 쉽게 빠진다.

최근 들어 근현대사를 다룬 한국영화들이 연달아 나오고 있는데, 기대되는 영화는 거의 없다. 만드는 사람들의 개성과는 별도로, 이런 이야기를 한 무더기의 개성 없는 복고팔이로 밀어붙이는 하나의 흐름이 있다. 하긴 늙은이들의 눈으로 본 시대가 어딜 가도 비슷한 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쎄시봉> 역시 그 흐름의 일부라 볼 수밖에.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쎄시봉>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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