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명탐정’ 이러니 명절 때마다 돌아올 수밖에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영화 <조선명탐정2-사라진 놉의 딸>은 2011년도에 나온 <조선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의 속편이다. 영화는 추리사극이자 캐릭터 코미디물로서 설 연휴 연이틀 압도적인 흥행 1위를 차지하는 등 매우 성공적인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조선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이 나올 때만 해도, 국내에 탐정을 소재로 한 영화는 <그림자 살인>(2009)가 거의 유일했다. <조선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은 김탁환의 소설 <열녀문의 비밀>을 매우 창의적으로 각색하여, 정조 시대를 배경으로 한 그럴듯한 탐정물을 만들어냈다. <조선명탐정>은 원작소설이 지닌 역사적 문제의식을 살리면서도, 탐정과 조력자로 구성된 캐릭터 코미디물의 성공가능성을 열어젖혔다.

<조선명탐정2-사라진 놉의 딸>은 원작소설 없이, 전편의 성공요소를 추출·재조합하여 유사한 구성으로 짜 맞추어진 속편이다. 재조합의 과정에서 역사적 문제의식은 조금 옅어지고, 코미디의 속도와 강도는 더욱 강화됐다. 잠시의 빈틈도 없이 빠르게 휙휙 넘어가는 재미난 장면들은 깨알 같은 유머로 관객들을 즐겁게 해준다. 2편 역시 어김없는 흥행 대박이 예상되는 가운데 장차 <조선명탐정>시리즈는 안정적인 명절용 시리즈로 기획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 시리즈의 성격과 전망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 캐릭터를 비롯해 흥행요소를 재조합한 속편

<조선명탐정2-사라진 놉의 딸>은 <조선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의 흥행요소를 재조립한 결과물이다. 왕의 특명을 받은 김민(전편에선 김진)이 작은 사건을 해결하다가 일으킨 소동으로 문책당하고, 문책의 상황에서 더 큰 사건을 맡는다. 사건은 조선사회 시스템을 위태롭게 하는 경제 범죄이며, 사건의 중심인물로 이국적이면서도 당대의 신분질서를 뛰어넘는 신비한 여인이 등장한다. 김민은 그 여인에게 매혹되면서 찬찬히 사건을 추리해나가는데, 결국 수구권력층이 사건의 배후로 밝혀진다. 김민의 수사는 억압받는 노비나 어린이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행위이며, 그들과의 교감이 수사의 동력이 된다. 신비한 여인은 여러 개의 정체성을 지닌 인물로, 사건이 끝나면 다소곳한 조선 여인의 모습으로 돌아와 조선 땅을 떠난다.

<조선명탐정2-사라진 놉의 딸>은 전편의 설계도 위에 트레이싱페이퍼 올리고 그린 도면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도입부에선 경쾌한 창고 폭발장면으로 웃음을 끌어올리고, 큰 사건을 떠맡을 즈음 슬라이딩을 타며 내려오던 전편의 장면은 속편의 행글라이더 장면으로 바뀌었다. 등에 화살을 맞아도 모르는 장면은 머리에 피칠갑을 하고도 모르는 장면으로 바뀌었다. 이국적이면서 요염한 모습의 한지민은 게이샤 차림의 이연희로 바뀌었다. 한지민은 신분타파를 실천했던 개혁적인 여인이었고, 이연희는 노비로 팔려간 일본에서 관리가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무력한 장애인으로 보였던 인물이 괴력의 악당이라는 점도 같다.

이 모든 공통점 중에서도 두 편을 흡사하게 보이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은 콤비를 이루는 탐정과 조력자의 캐릭터이다. 김민(김명민)은 평소에는 체면을 중시하는 점잖은 성격이나, 위급한 상황에서는 잽싸게 도망치는 겁쟁이이고, 자화자찬이 심한데다 적당히 이기적인 측면이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약자를 보살피는 정의로운 인물이다. 천재적인 두뇌를 지닌 과학자이자 발명가이며, 이성적인 추리능력이 매우 발달했지만, 아름다운 여성 앞에서는 정신을 못 차리는 허술한 면을 지닌다.



조력자인 석필(오달수)은 전편에서는 개를 사랑하는 개장수로 우연히 김민을 만나 따라다니며 돕다가 뒤늦게 정체가 밝혀지는 인물이었다. 속편에서는 처음부터 김민과 파트너를 이루어 김민의 사건해결을 돕는 다재다능한 파트너이다. 두 사람의 파트너십에 대해 혹자는 ‘셜록 홈즈와 왓슨’이 연상된다고 하지만, 그보다는 ‘이몽룡과 방자’의 파트너십이 연상된다.

김민의 캐릭터는 새롭거나 서구적인 캐릭터가 아니라, 한국 고전소설의 캐릭터를 변주한 것으로 정서적인 친숙함을 준다. 은근하고 의뭉스러우며 여유자적하며 살짝 빈틈이 있는 허허실실의 능청스러운 양반캐릭터는 이몽룡과 매우 흡사하다. 양반보다 나이가 많으면서 매사에 능숙한 솜씨와 수완으로 양반을 돕지만, 이따금 구시렁거리고 투덜대며 양반을 살짝 능멸하는 해학적인 석필의 캐릭터도 방자와 매우 흡사하다.



◆ 추리와 발명과 역사관이 있는 사극

<조선명탐정>시리즈는 오락적인 사극이지만, 매우 이성적인 장르를 추구한다. 김민의 추리는 현대 수사물을 보는 것처럼 합리적이며, 그의 발명품들은 당대의 기술로는 무리이지만 결코 판타지적인 물건이 아니라 나름 과학적인 원리를 지닌다. 귀신이나 초현실적인 현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초현실적인 상황을 연출하여 수사나 사건의 해결에 활용한다. 이는 소설 <영원한 제국> 이후 꾸준히 발전한 역사추리소설 장르의 특징이기도 하고, 정조 시대를 상당히 과학기술이 발전한 사회로 보거나 보고 싶어 하는 관점이 반영된 결과이다.

<조선명탐정>시리즈는 당대의 사회를 총체적으로 바라보는 개혁적인 역사관을 지닌다. 전편에서는 신분질서를 온존시키며 자신의 기득권을 강화하려는 노론세력과 이러한 사고에 의문을 품고 만인이 평등하다고 믿는 천주교 세력과 청나라로부터 들어오는 새로운 서구과학문물에 관심을 가진 개혁세력의 대립을 보여주었다.

속편에서는 이러한 대립의 선명함은 다소 떨어지지만, 왜관에 만들어진 일본인 마을을 중심으로 당시 사회가 지녔던 국제적 활력을 보여준다. 지금껏 조선의 대외무역은 중국과의 조공무역을 제외하고는 거의 조명되지 못했지만, 조선은 폐쇄적인 사회가 아니었다. 당시 왜관에는 상주 일본인이 500명이나 되는 무역특구가 존재하였으며, 일본의 은과 조선의 인삼, 중국의 비단이 거래되었다. 그곳은 금녀의 구역이었지만, 조선인 여인이 매춘을 하다가 적발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조선명탐정2-사라진 놉의 딸>은 이처럼 잘 알려지지 않았던 조선사회의 이면을 비추면서, ‘노비의 딸’이라는 사회적 최약자를 통해 신분질서의 잔혹함을 일깨운다. 누구보다 똑똑하고 부지런하며 동생을 사랑했던 소녀는 미래를 꿈꾸어 보지도 못한 채 무가치한 죽음을 맞는다. 이처럼 억압적인 신분질서를 지키려는 세력은 뿌리 깊은 부정부패와 탐욕에 절어있다.

<조선명탐정>시리즈는 어쩌면 <혈의 누>(2005)와 <그림자 살인>(2009)의 장점들이 성공적으로 결합된 시리즈라고 볼 수 있다. <조선명탐정>시리즈는 조선후기를 배경으로 합리적인 추리와 과학 수사를 통해 사건을 해결하면서, 개혁적인 역사관으로 당대 사회의 모순을 총체적으로 바라보았던 영화 <혈의 누>의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그러나 <혈의 누>가 지니고 있던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벗고, 코미디와 어드벤처 장르의 활력을 가미한다.

또한 <조선명탐정>시리즈는 거의 최초의 국내 탐정사극이자 ‘셜록 홈즈와 왓슨’의 분위기를 추구하였던 영화 <그림자살인>으로부터 새로운 장르적 시도를 이어받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림자살인>은 구한말이라는 복잡다단한 시대를 배경으로 충분히 한국화 되지 못한 캐릭터를 등장시켜, 관객의 입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는 이물감을 선사하였다. 더구나 구한말의 ‘셜록 홈즈와 왓슨’이 마지막에 고종의 밀사가 된다는 에필로그는 실제역사의 실패를 알기에 씁쓸함마저 안겨주었다.



그러나 <조선명탐정>시리즈는 <그림자살인>이 안겼던 이질적인 불편함을 씻어내고, 정조 시대라는 민족적 자부심을 가지고 돌아볼 만한 시대를 배경으로 ‘이몽룡과 방자’라는 고전소설의 전통을 잇는 캐릭터를 통해 훨씬 편안하게 안착될만한 장르물을 만들어냈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명탐정>시리즈는 어드벤처의 활력을 지닌 근사한 캐릭터 코미디이자, 합리적인 추리와 발명품과 개혁적인 사관이 돋보이는 사극으로 한동안 사랑받을 만한 시리즈물이라고 평가할만하다. 요컨대 명절마다 성룡의 액션물이나 조폭코미디를 보았던 것보다 ‘이몽룡과 방자’가 펼치는 호쾌한 추리사극을 보는 것이 훨씬 낫지 않은가.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조선명탐정2-사라진 놉의 딸>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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