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녀들’, 사극판 ‘밀회’ 같은 느낌은 왜일까

[엔터미디어=정덕현] 한 때는 양가집 귀한 규수였지만 억울하게 역적의 딸이 되어 하녀로 전락한 삶. JTBC <하녀들>의 인엽(정유미)의 끝없는 추락이 현재를 살아가는 서민들에게 주는 공감대는 뭘까. ‘조선시대 연애사극’이라는 타이틀이 붙어있지만 이 사극이 주목하는 건 ‘연애’보다는 신분제가 만들어내는 계급적인 갈등이다.

인엽 스스로도 자신이 양갓집 규수로 있을 때는 하녀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노비인 단지(전소민)가 자신의 신을 신어봤다는 이유로 그 신을 신는 것조차 거부하던 그녀였다. 하지만 하녀로 전락하면서 그녀의 시선은 달라진다. 처음에는 현실을 인정 못하던 그녀는 차츰 노비의 삶을 이해하게 되고 그들 편에서 양반들의 ‘갑질’을 바라보게 된다.

그렇다. 지금껏 방영된 <하녀들>이 계속해서 보여준 것은 바로 이 ‘갑질’의 진수다. 하녀로 전락했다 하여 금세 얼굴을 바꾸고 천대하는 한 때는 동무였던 윤옥(이시아)은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과거 연적이었던 인엽에게서 남자를 빼앗고 심지어 씨받이로까지 내몬다. 그 과정에서 노비들의 인간 이하의 삶을 인엽은 고스란히 겪게 된다. 도둑질을 했다며 인두로 지지고 멍석말이를 하는 건 다반사다.

사람이 어찌 똑같은 사람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잔혹함에 혀를 차다가도 이것이 어쩌면 지금 현재 서민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그다지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도달하게 되면 마음 한 구석이 씁쓸해진다. 물론 직접적인 폭력이나 위해는 가하지 않지만 돈이 만들어내는 위계 속에서 어떤 이들은 여전히 그 앞에 무릎을 꿇기도 한다. 군림하는 자는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이지만 그 무릎 꿇은 자의 상처는 저 멍석말이를 당한 자와 무에 다를 것인가.



<하녀들>이 흥미로운 건 이 이야기가 <밀회>와 비슷한 면이 있다는 점이다. 마치 <밀회>가 치정 멜로를 표방했지만 사실은 부조리한 상류층 사회의 시스템을 고발했던 것처럼, <하녀들>은 ‘조선연애사극’이라고 이름 붙여졌지만 그 껍데기를 벗겨내고 이면을 들여다보면 ‘갑질’하는 세상에 대한 분노와 복수를 담아내고 있다. 인엽이 노비들의 삶을 이해해가고, 그 삶에 점점 분노하게 되는 과정은 그래서 지금의 서민들의 동지적인 공감대를 이끌어낸다.

물론 이 처절함이 사극 전체를 너무 무겁게 만드는 걸 방지하기 위해 곳곳에 설치해놓은 유머 코드들 역시 갑질하는 세상에 대한 작은 복수를 통해 보여준다. 예를 들어 멍석말이 당하는 인엽과 단지가 몸을 보전하기 위해 옷에 덧대 놓았던 고기를 다시 불고기로 만들어 상전들에게 먹이는 장면이 그렇다. 상전들은 그 고기가 노비의 엉덩이에 붙어 몽둥이찜질을 받은 것인지도 모른 채 어쩌면 이리 맛나냐며 앞으로도 이렇게 고기를 해오라고 명한다.

이제 사극이 과거를 얘기하던 시대는 지났다. 사극은 오히려 지금 현재를 더 얘기해주는 장르가 되었다. 그러니 과거를 소재로 하지만 그 이야기는 현재에 더 큰 울림을 준다. <하녀들>이 사극판 <밀회> 같은 느낌을 주는 건 그래서다. 드라마는 멜로를 표방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 깔린 신분제가 내포한 갑을 관계의 폭력성을 가감 없이 폭로한다. 앞으로 전개될 인엽의 인생역전에 시청자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서민들의 눈높이가 저 하녀들의 삶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씁쓸한 인식 때문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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