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텔’ 시도부터 결과까지, 이게 바로 리얼리티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요즘 예능의 키워드는 리얼리티다. 에피소드식 토크를 탈피한 ‘토론’형 토크쇼부터 연예인의 일상 그대로를 드러내는 관찰형 예능은 물론이고, <우결>처럼 설정된 세계 속에서 만들어진 리얼함까지 모두 리얼리티를 추구한다. 구현 방식은 이처럼 다양하지만 기본 원리는 공히 시청자와 방송 사이의 좁혀진 ‘거리’다. 그래서 TV예능의 리얼리티는 실제 우리 세상을 얼마나 잘 본떴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얼마나 더 가깝고 얼마나 더 친근하게 다가오도록 만드는지가 중요하다. 정리하자면 오늘날 예능에서 말하는 리얼리티란 일상성과 공감대를 담보로 하는 시청자들과의 관계를 뜻한다.

실시간 방송에 도전한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리얼리티에 대한 또 한 차례의 시도였다. 멸종 직전의 공룡으로 치부되던 공중파에서 제작한 예능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과감했다. 물론, 트위터가 대중화되던 2010년 SBS <하하몽쇼>에서도 촬영 현장 일부를 공개하고 실시간으로 트윗을 주고받는 적이 있긴 하다만 인터넷 기반의 개인TV와 공중파 방송을 본격적으로 접목한 사례는 처음이다. 수직계열화하자면 가장 화려한 꼭대기에 있는 공중파 방송사가 반지하 자취방 같은 데서 웹캠 같은 걸로 찍는 인터넷 개인방송의 방식을 취한 것은 키치적이라 더 놀라운 시도다. 기존 권위와 영향력 따위를 내려놓고 트렌드를 쫓아가겠다는 다짐과 시청 행태가 빠르게 변화하는 흐름에 대응하고자 하는 고민이 동시에 느껴지는 대목이다.

인터넷기반 방송의 묘미는 실시간 다자간 소통이다. 기존 방송과 달리 인터넷 개인방송 시청자는 단순히 보는 입장에 머물지 않는다. 관찰형 예능이 기본적으로 지켜보고 훔쳐보는 데서 재미를 느낀다면, 인터넷 개인방송의 재미는 보다 몰입하고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데 있다. 기존 방송 시청자들도 점점 목소리가 높아지고 그 존재가 프로그램에 끼치는 직간접적인 영향이 커지고 있는데, 이 동네에선 원래부터 시청자가 방송의 한 축이다. 채팅창을 통해 함께하는 것은 물론, 실시간 시청자수는 BJ의 수입과 직결된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제작진은 이런 인터넷방송의 생태계를 경쟁구도의 도입을 통해 훌륭하게 옮겨왔다. 실시간 시청자수 집계에 따라 순위별로 방송 분량이 결정된다는 룰을 정하고, 시험방송을 통해 실시간으로 소통하고 바로바로 시청률이 집계되는 방송의 묘미와 생리를 경험하게 했다. 시청자들은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본다. 출연진들은 제대로 준비하지 않을 수가 없다. 리얼리티는 여기에 있다. 출연자들이 BJ의 역할에 어떤 마음으로 얼마나 매진하는지 그 진정성에 비례해서 나타난다.

그런데 관찰형예능 프로그램들이 주로 그렇듯 <마이 리틀 텔레비전>도 뜯어보면 별게 아니다(그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을 시도하고 엮어내는 게 능력이다). 쌍방향 소통이니 인터넷과 결합한 실시간 방송이니 새로운 형태의 방송이니 등등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올 수 있겠지만, 따지고 보면 그냥 지난 10여 년 간 변방에서 존재해왔던 아프리카TV 방송을 연예인들이 하는 거다. 컴퓨터 앞 책상에 앉아서 하는 ‘먹방’ 등의 볼거리를 대형 방송사가 제작하고 연예인이 진짜로 하는 거다.

그래서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아프리카TV나 인터넷 문화에 어느 정도 익숙한 시청자들이 더 잘 즐길 수 있는 정서가 있다. 기존 TV 시청자들과 달리 성별이나 성향 면에서 뚜렷하게 구분 지을 수 있는 수용자들이 존재하는 세계다. 이를 테면 ‘여친’은 있을 리 없다는 우중충한 분위기, ‘핵노잼’이나 ‘탈주’ 같은 말을 쓰는 ‘인터넷 유저(시청자)’들을 상대로 연예인들이 적응해가는 과정이 재미의 중요한 부분이다.



이처럼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실시간방송이란 콘셉트보다 메이저들이 마이너리그에 내려온 설정 자체가 그 키치적 시도가 시청자들의 관심을 자극한다. 서로 다른 두 가지 일상의 경험이 섞이는 거다. 김구라 등의 출연자들은 방송을 매개로만 보다가 이렇게 인터넷방송으로 만나니 같은 방송임에도 한층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우리 동네에서 평소에 만날 일 없을 것 같던 연예인을 길거리에서 만난 것과 비슷한 체험이다. 핵심은 시청자의 위상 변화다. 방송이 시청자의 곁으로, 그들의 방식으로 다가왔다. MBC 예능이 최근 이렇게 과감한 시도를 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때로는 홍진영처럼 척척 해내는 프로페셔널한 사람도 있지만 원래 놀던 동네가 아니니 익숙하지 않다. 시간표까지 그려서 온갖 준비물을 무척 열심히 준비해놓곤 채팅창 따위는 절대 안중에도 두지 않는 ‘불통’의 AOA 초아가 귀엽게 보이고, 방송이라기보다 이웃집 아저씨처럼 쿨내 진동하게 진행하는 백종원의 ‘고급진’ 방송이 ‘꿀잼’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하지만 팬심도, 신기함도 잠시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 방송 결과 톱클래스급 MC인 김구라나 아이돌인 초아 대신 요리연구가 백종원이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초반에는 인지도면에서 월등히 차이가 나는 초아와 김구라, 홍진영 등이 훌쩍 앞서갔지만 콘텐츠의 힘과 소통이 가능한 캐릭터로 대역전을 이뤘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시청자수 추이 변화는 아이돌 방송이 잘 안 되고, 톱MC를 써도 통하지 않는 세상을 압축적으로 표현했다. 연예인들의 내밀한 모습과 함께 드러난 것은 요즘 시청자들의 높아진 ‘위상’과 ‘취향’이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요즘 시청자들에게 먹히는 방송에 대한 가이드에 가까웠다. 톱MC의 명성도, 아이돌의 팬덤도 넘어선 시청자의 선택은 일상에서 활용 가능한 리얼한 요리 방송이었다. 시도부터 결과까지 이게 바로 리얼리티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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