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드’, 현빈은 있고 매력은 없는 안전한 로맨스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SBS 수목드라마 <하이드 지킬 나>는 익숙한 로맨스물이다. 가난하지만(혹은 풋내기지만) 당찬 여주인공과 부유하지만 약점 있는 남자주인공의 로맨스다. 이미 많은 드라마와 영화, 얄팍한 로맨스소설에서 우려먹은 소재지만 이 소재가 통하는 건 그만큼 간질간질하고 재미있는 설정이라서다. 동화 <미녀와 야수>에서부터 배우 현빈의 대표작 <시크릿 가든>까지 모두 그렇다. 이 구도는 언제나 여주인공은 약자 남자주인공은 강자로 등장한다.

하지만 여주인공은 대개 사회성이 좋은 반면 남자주인공은 자신만의 은밀한 성에 갇혀 무슨 짓을 하는지 잘 알 수 없는 녀석들이 많다. 그 강해 보이는 남자가 성에 숨은 까닭은 대개 들키기 싫은 약점 때문이다. 여주인공이 그 약점을 발견하기 시작하면서 관계는 서서히 역전된다. 그리고 이야기가 결말에 다다를수록 여주인공의 사랑의 손길은 오만하거나 혹은 겉보기와 달리 내면은 나약한 강자를 사랑하고 싶은 남자로 변화시킨다.

<미녀와 야수>에서 겉으로는 으르렁대나 알고 보면 여자 앞에 소심한 야수는 벨의 사랑으로 왕자님으로 돌아온다. <시크릿 가든>의 김주원(현빈)은 오만한 사회지도층에서 길라임(하지원)을 통해 사랑을 아는 인간으로 변해간다. 물론 고전적인 <미녀와 야수>와 현대적인 <시크릿 가든>은 약간의 차이가 있다.

<시크릿 가든>은 남자주인공만이 아니라 여자주인공 길라임 또한 상처를 안고 있는 인물이다. 이 둘은 각각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서로의 상처를 발견하고 영혼이 바뀌기도 하면서 결국 사랑하는 사이로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또한 어떤 면에서 두 사람은 원래부터 대립적인 남녀구도라기보다 중성적인 성격을 지닌 두 명의 비슷한 영혼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시크릿 가든>은 시작과 결말은 기존의 로맨스물과 비슷하나 중간의 그림이 신선한 면이 있었다. 특히 현빈과 하지원 두 배우가 지닌 기존의 이미지와 주인공들의 매력이 한데 어울리면서 꽤나 흡인력 있는 장면들을 만들어냈다.



최근 개봉한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역시 구도는 평범한 로맨스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시시한 스토리를 맛나게 요리하기 위해서인지 남자주인공의 약점 아니 취향이 기존의 캐릭터들에 비해 훨씬 과격하다. 아마도 한국 드라마에서 로맨스와 사도마조히즘의 결합을 볼 일은 없을 거라 믿지만(물론 남녀 사이가 아니라 시누이-여주인공, 여주인공-시어머니 사이에 그런 엇비슷한 기류가 흐르는 경우는 있다) <하이드 지킬 나>는 그래도 나름 새로운 남자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다.

바로 남자주인공이 까칠하고 냉랭한 성격의 구서진(현빈)과 로맨틱하고 부드러운 성격의 로빈(현빈) 두 인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빈이 두 몫을 한다고 <하이드 지킬 나>가 현빈의 또다른 성공작이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하이드 지킬 나>는 연애 감정선을 따라가기가 이상하게 힘이 드는 드라마다. 물론 로맨스와 따로 노는 스릴러적인 요소 때문에도 그렇지만 순전히 로맨스 부분만 봐도 그렇다. <하이드 지킬 나>가 현빈이 강국으로 존재감을 알렸던 <아일랜드>처럼 독특한 정신세계를 지닌 친구들이 잔뜩 등장하는 개성 있는 드라마라서 그런 건 아니다. 오히려 <하이드 지킬 나>의 원더서커스의 단장 장하나(한지민)와 구서진, 로빈과의 연애노선은 초등학생이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다. 사랑에 빠지는 단계 하나하나를 두 사람의 독백을 통해 설명하듯 말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빤한 논술고사 답안지 같은 로맨스에 의외성은 없다. 당연히 가슴을 치는 헉, 하는 순간의 울림 또한 없다. 그런 긴장감과 의외성은 모두 최면 전문의 윤태주(성준)의 몫으로 돌렸다. 하지만 알다시피 로맨스가 늘 평화롭고 잔잔한 건 아니다. 오히려 험난하고 과정에서 감정소모가 많아야 감정이 이입할 여지도 많아진다.

<하이드 지킬 나>는 로맨스의 단조로움을 감추기 위해 대신 예쁜 장면에 공을 들인다. 물론 아름다운 장면 속에서 두 배우 현빈과 한지민은 사랑스럽다. 더구나 이 드라마는 로맨스물의 주인공 현빈의 원더랜드처럼 현빈이 20대 때 보여준 모든 이미지들을 활용한 로맨스의 놀이동산 같다. 하지만 아무리 까칠한 남자라도 구서진은 <내 이름은 김삼순>의 현진헌이나 <시크릿 가든>의 김주원만큼 매력적이지 않다. 구서진의 다른 인격 로빈이 아무리 부드럽고 달콤해도 <아일랜드>의 강국이 지닌 다크초콜릿 같은 씁쓸한 달콤함이나 <그들이 사는 세상>의 정지오의 은은한 체취처럼 배어나오는 부드러움을 따라갈 수는 없다.

어찌 보면 로맨스물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빠짐없이(심지어 현빈까지) 집어넣은 드라마가 이토록 시들하게 다가오는 건 신기할 정도다. 하지만 드라마가 아닌 실생활의 연애도 원래 그렇기는 하다. 아무리 아름다운 이벤트로 치장한들 연애가 안전해지고 서로에게 궁금한 이야기가 사라지는 순간 두 사람 사이엔 슬슬 권태가 싹트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하이드 지킬 나>는 연애에 빠져드는 그들이 사는 세상의 이야기가 아닌 연애 이벤트에만 너무 힘을 쏟았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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