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이경규의 변화, 분명 좋은 건데 애매하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아빠를 부탁해>는 기본적으로 따뜻하다. 아빠와 딸의 관계 개선이라는 기본적으로 가족의 가치를 다루는 데다 EBS에 등장할법한 문제가 심각한 가정도 아니다. 연예인 가정이 나오는 관찰형 예능이 대부분 그렇듯, 현실의 때는 보이지 않고 여유롭고 행복한 가족의 이미지를 전시한다. 여타 현실적인 문제를 떠나 ‘부녀관계’에만 집중할 수 있는 조건인지라 잔잔하면서도 따뜻하다.

이 따뜻함이 행복한 가족이란 로망을 건드리면서 파일럿은 대박이 났다. 어떤 이들은 우리 가족도 그랬으면 하는 소망을 품기도 하고, 어떤 이는 ‘효도’를 다짐했을 것이다. 시청자들은 각자의 가정과 비교해보기도 하고, 엉뚱한 아빠들의 모습에 귀여움을, 착한 딸들의 모습에 사랑스러움을 느끼면서 그들의 단란한 모습에 함께 빠져들었다.

육아 예능은 기본적으로 성장 스토리인 데다 ‘의외성’이 포인트가 된다. 하지만 스물 안팎의 다 큰 성인과 아빠의 관계는 삼둥이네와 비교했을 때 훨씬 빠른 속도로 제자리를 찾는 것이 정상이다. 이 프로그램이 처음 주목을 받았을 때는 대중에게 소개되지 않은 딸의 존재와 딸과 잘 소통이 안 되는 아빠들의 모습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아빠와 딸들의 매력은 2회 만에 파악이 되었고, 관계는 급진전되었다. 당연히 사는 게 그렇겠지만 이후는 반복이다. 천연덕스러운 아기들의 재롱도 없고(조혜정의 애교는 있다), 40~50대 연예인 아빠가 주인공이다 보니 출연진들이 특별한 이슈를 끌고 오기도 힘들다.

이런 평범함으로 가득한 조건 속에서도 프로그램은 정체성을 잃지 않고 따스하고 자연스러운 톤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관찰형 예능의 필수 조건인 스토리텔링 측면에서 벌써 한계에 봉착한 듯하다. 아빠와 딸이 서로를 알아가고 친해지는 과정이 이 프로그램의 핵심인데, 시청자들이 볼 때 이미 벌써 가깝다고 느껴지는 거다.

자막으로는 ‘아직은 갈 길이 멀다’고 했지만 착하고 사랑스런 딸과 가족을 아끼고 사랑하는 아빠가 서로를 알아보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릴 리가 없다. 그렇다고 가족끼리 연기하면서 억지로 어색하고 무뚝뚝하게 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운 행동이 필요한데, <자기야>처럼 티격태격할 상황도 아니니 집 안에서 할 일이 벌써 다 떨어졌다. 그러다 보니 애견카페, 등산, 깜짝 생일파티 등 점점 이벤트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기획의도대로 흘러가니까 재미가 반감이 되는 아이러니가 <아빠를 부탁해>를 덮치고 말았다.



영상을 보는 중간 중간 터지는 이경규의 입담만이 이 프로그램이 예능으로서 가치가 있음을 입증한다. 이경규는 ‘심각한’ 아빠의 대표주자가 되어 따뜻하고 오글거리는 모든 것을 혐오하는 듯 멘트를 남긴다. 예컨대 딸의 선물을 받고 어떤 리액션을 취할지 고민이 되었다는 조재현에게 “뭔 감동을 해, 안 하면 되지”라고 딱 잘라 말한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의외의 다정함을 예림이와 강아지들에게 이미 수차례 내보였다. 분명 긍정적이고 좋은 건데 애매하다.

부녀가 가까이 다가가기까지의 감정과 오해의 순간들을 극복하고 어떻게 변해갈지를 지켜보는 것이 <아빠를 부탁해>를 이루는 뼈대다. 그런데 네 가족 전부 각기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관계가 급진전되면서 다음 주에는 어떻게 되었을까? 무슨 일이 벌어질까라는 궁금증이 많은 부분 이미 해소가 됐다. 믿었던 조재현과 이경규 등 트러블메이커들마저 너무 빨리 변하고 있다.

가족이 등장하는 관찰형 예능을 보면서 우리는 행복을 대리만족하고 소비한다. 그냥 잘 지내고 단란한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고 우리와 비슷한 모습, 혹은 뭔가 부족하거나 어려운 모습을 극복하고 행복해지는 이야기를 원한다. 그래야 감정이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아빠를 부탁해>는 지금과는 또 다른 공감대를 형성할 장치가 필요해 보인다. 각자 충분히 노력하고 있지만 해결이 안 되는 지점들,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잘 지내는 모습을 볼 때보다 잘 지내려고 애쓰는 모습에 사람들은 끌리기 마련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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