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콘’과 ‘징비록’ 통해 본 대중정서 공감의 힘

[엔터미디어=정덕현] 지금 대중들의 마음이 꼭 저렇지 않을까. KBS 주말사극 <징비록>이 공교롭게도 보여준 선조(김태우)의 파천 장면은 대중들로 하여금 지금 현재 우리가 처한 현실을 떠올리게 했다. 나라가 백척간두의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음에도 제 한 목숨 살기 위해 백성을 버리고 도망치는 선조. 그를 막아 세운 백성들은 “이럴 거면 나라는 무슨 소용이고 임금이 왜 있어야 되느냐”고 토로했다.

사극의 힘은 과거의 박제된 역사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는 걸 명백히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그것은 그저 임진왜란 당시 벌어졌던 기록이지만, 재현된 기록은 지금 현재를 상기시킨다. 세월호 1주년에 ‘성완종 리스트’로 시끌시끌한 현 시국이 아닌가. 대중들에게 <징비록>의 이 한 장면이 새롭게 읽히게 된 데는 그만한 민심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KBS 예능 <개그콘서트> ‘민상토론’이라는 코너 역시 마찬가지다. <징비록>이 역사를 가져와 현실을 상기시킨다면, 이 개그 코너는 현 시국의 문제를 개그의 무대 위로 올려놓았다. “지금 이 시기에 외국에 나가셔야겠습니까?” 물론 이 질문은 유민상이 “외국이라도 나가야겠다”고 한 발언에 대해 이 토크쇼의 진행자 역할인 박영진이 추궁한 것일 뿐이다.

하지만 이 질문이 ‘집권 3년차 박근혜 정부 중간평가’라는 말과 어우러지면 현 시국에 대한 뉘앙스를 갖게 된다. 외압이 들어올까봐 현실과 무관하게 몸으로 웃기거나 바보 행세로 웃기는 개그맨들을 앉혀놓고 시국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이 ‘민상토론’은 그래서 직접적인 비판을 가하지는 않는다. 다만 현 시국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특정한 단어들의 조합이 에둘러 현실을 풍자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첫 방송에서부터 ‘무상급식 중단 논란’, 수지와 이민호 열애설 기사에 묻힌 ‘이명박 전 대통령의 2800억 기업특혜 의혹’ 같은 뜨거운 사안들을 개그의 무대 위로 끄집어냄으로써 관심을 불러일으킨 이 코너는, 그간 ‘동혁이형’이나 ‘용감한 녀석들’, ‘사마귀유치원’ 등에서 현실 문제를 직설적으로 거론했던 것과는 궤를 달리한다. 직접 비판하지 않아도 ‘청년실업’이라는 단어가 ‘중동’을 만나는 것이나, ‘리스트’라는 말을 꺼내는 것만으로도 현실적 의미를 확보하는 풍자.

<징비록>과 <개그콘서트>에 최근 다시 집중된 이런 관심은 대중문화의 힘이 어디서 생겨나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것은 드라마나 코미디라는 틀 안에 매몰되지 않고 결국은 대중정서가 움직일 수밖에 없는 현실 공감을 바탕으로 할 때 비로소 생겨나는 힘이다. 항간에는 이러한 변화를 보면서 그간 대중들과 함께 걸어가지 못하던 KBS가 공영방송으로 이제 우리 대중들 곁으로 돌아오고 있는 건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물론 그것은 너무 앞서가는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지금 현재 대중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또 어떤 것들을 원하고 있는가가 이런 대중문화 콘텐츠를 통해서도 명백하게 보여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지금의 민심을 보여주는 것일 게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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