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물이 다 빠진 줄 알았던 ‘사나이’에 생기가 돈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연예인 군 ‘재’입대라는 파격은 이미 오래전에 무뎌졌다. 하지만 어려움 속에서 시작한 MBC 예능 <일밤-진짜사나이> 시즌2는 초심 찾기가 아닌 다른 승부수로써 예능의 가치를 회복하는 중이다. 군과 군 문화를 긍정적으로 홍보한다는 식의 비난과 존재에 대한 가치논란을 떼어놓으면 비난이나 논란거리는 별로 없어 보인다. 국방부 시계를 들여다보는 것처럼 지루했던 ‘진짜 사나이’들의 군 생활이 이제 다시 볼만해진 것이다.

<진짜사나이>가 처음 등장했을 때 센세이션을 일으킨 이유는 상상을 현실화했기 때문이다. 많은 남자들이 시시껄렁하게 나누는 ‘얼마 정도 받으면 다시 군에 갈 수 있을 것 같냐’는 식의 수다를 예능의 틀로 실현했다니 관심이 쏠렸다. 주로 삶의 가장 큰 고난이나 힘든 경험의 척도로 여겨지는 군 생활을 예능으로 보여준다니, 그것도 나이, 인지도, 직업 등 현실을 리셋하고 계급사회에 내동댕이쳐진 연예인들이 그런다니, 밀착된 감정이입의 고리가 있었다. 군생활을 했던 시청자들은 고생 앞에 ‘무식한’이라는 수사를 꼭 붙여야만 할 법한 낭만과 야만이 뒤섞인 추억이 떠오르고, 군과 관련한 경험이 없는 시청자들에게도 ‘사회’와는 다른 군대의 일상은 모든 것이 볼거리였다.

하지만 쳇바퀴 같은 군대의 삶은 연차가 쌓이면서 지겨워졌고, 일상은 이벤트로 채워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시즌1은 내무생활과 병사들과의 전우 관계에 집중했다. 군 추억의 첫 번째는 내무생활로 대표되는 계급 관계다. 군에 대한 두려운 기억은 대부분 신병 시절의 기억이다. 선임이 된 이후, 병장으로 누린 시간들은 기억에 별로 남지 않는 법이다. 나이 많은 신병들이 어떻게 군기 아래 적응해 가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얼마나 헤매고, 현실과 군대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지가 스토리의 뼈대였다.

그러지만 진급을 하면서 관심의 군기도 함께 풀렸다. 훈련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고 말하며 땀을 뻘뻘 흘려도 감정이입이 덜 됐고, 군대 담장 너머를 볼만큼 봤다. 실제 군과 다르다는 비판을 받게 된 대표적인 장면인 온갖 장기자랑과 체육대회는 단조로운 볼거리를 넘어서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으리라. 물론, 건강하고 긍정적인 군 홍보를 위한 목적도 있었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진짜 사나이’ 시즌2 제작진은 기민하게 전략 수정을 감행했다. 시즌2는 군기, 선임과의 관계를 어느 정도 제거하고 편안하게 간다. 나이가 있는 시청자들이 볼 땐 갸우뚱할 정도로 군대가 화기애애하다. 이병이 내무반에서 웃고 떠들고 장난치고, 훈련 간에도 간간히 웃고 교관에게 질문도 스스럼없이 한다. 선임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거는 것도 예사다.

동기생활관이 보편화된 오늘날 군 문화를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그러다 보니 내무생활보다 병사들 각자 맡은 바를 해나가는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군생활의 어려움과 신병의 고단함 대신 하루 일과를 쳐내는 미션에 집중한다. 호흡을 끌어올려 정신없이 돌아가는 하루 일과를 바쁘게 쫓는다. 새벽 4시 취사병들의 아침준비부터 시작해 오전에 체력단련과 각개전투, 뒤이어 개인 사격, 90mm 무반동 사격, 부식수령 등등 각자의 스케줄을 바쁘게 소화하는 출연자들의 모습을 담는다.

모든 것에 열심히 임하고 잘하는 샘 오취리부터 시작해 각개전투장에서 몸개그를 날리고 군대 주방이 익숙지 않은 샘킴은 화려한 경력을 무색하게 하는 신병다운 실수를 하지만 교관이나 선임들이 ‘갈구지’ 않는다. 바짝 얼은 표정을 짓지 않아도 담당 하사에게 꾸중을 들을 때 샘킴의 심정이 느껴진다. 군기, 얼차려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대신 각자 알아서 그리고 또 같이 이야기를 만들어나간다. 중년 남자의 자존심을 보여주는 임원희, 멤버들의 앵커이자 오바맨 김영철, 생각보다 조금 부족한 샘킴, 정겨운, 조동혁, 얼마나 부족할지 기대를 모았던 슬리피 등 출연자들은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어간다. 그러면서 이규한, 김영철, 정겨운의 삼각관계나 취사실의 사랑받지 못하는 큰아들 샘킴과 사랑받는 작은아들 이규한의 관계처럼 아무것도 아닌 일상에 스토리텔링을 가미하기 시작했다.



중요한 변화다. 시즌1은 군대의 이모저모를 소개하고 리얼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의외의 일들, 병사들과의 관계나 고문관 역할을 하는 병사들의 리얼한 모습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시즌2는 시즌1과 크게 다르지 않는 일상을 담으면서 달라져야 하니 관찰형 예능의 스토리텔링을 보다 적극적으로 끌어안고, 잘 해내고 있다. 나영석 사단이 아무것도 아닌 일과 상황을 이야기로 엮어내는 것과 비슷한 전략 말이다.

유동적인 캐스팅이라고 했지만 존재감이 없거나 문제가 되는 멤버들이 바로바로 사라지는 것은 캐릭터를 기반으로 스토리텔링을 해야 하는 관찰형 예능의 묘미를 잘 살리기 위한 판단으로 보인다. 실제 군대는 어떻게든 세팅이 되면 무조건 함께 가야 해서 때로는 괴롭지만 <진짜사나이>는 멤버 구성을 가변적으로 만들어 문제가 발생하면 중간중간 조치와 수정을 할 수 있게 했다.

시야를 군, 부대, 내무반에서 출연자 개인으로 좁혀서 초점을 맞추고, 군 문화보다 미션 수행에 방점을 둔다. 그러면서 벌어지는 일상을 재가공해 스토리를 만든다. 프로그램의 무게 중심이 군에서 예능으로 조금 더 무게가 옮겨져 온 것이다. 군대라는 뻔해진 공간을 새롭게 보여주기 위한 변화다. 김영철, 이규한 등등 캐스팅도 좋았고, 단물이 다 빠졌다고 생각한 프로그램에 생기가 조금씩 돌기 시작했다. 물론, 예전만한 화제성을 일으키긴 힘든 상황이다. 이미 그 총량을 시즌1 초반부에 다 썼다. 이 한계가 예전처럼 프로그램을 돋보이게 만들 순 없겠지만 군 취사반의 한정된 부식으로 모두가 놀랄만한 요리를 선보일 샘킴처럼 <진짜사나이2>도 영민한 전략 수정을 통해 한정된 상황과 재료로 기대치 못한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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