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를’, 감각이 뛰어난 드라마의 좋은 예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SBS 수목드라마 <냄새를 보는 소녀>는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하지만 원작의 독특한 재미를 기대하고 보면 이 드라마는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원작 웹툰에 비해 드라마는 전혀 다른 방향의 재미를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웹툰에 풍기는 냄새가 무언가 낯설면서 찌르르한 향기라면 드라마에서 풍기는 냄새는 의외로 편안하고 달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

사실 <냄새를 보는 소녀>를 새롭고 특별한 작품이라고 보기는 다소 힘들다. 얼마 전 종영한 MBC의 <킬미힐미>처럼 겉은 로맨스지만 정작 속은 인간의 고통과 그에 대한 치유라는 깊이 있는 주제의식을 지닌 것도 아니다. 같은 시간대에 방영하는 MBC <앵그리맘>처럼 사회의 문제에 대한 비판의식을 지녔거나 KBS <착하지 않은 여자들>처럼 장면장면에서 의미 있는 대사들을 던져주는 드라마도 아니다.

그렇다고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수사물의 방향이 감탄할 만큼 놀랍거나 치밀한 것도 아니다. 시청자는 드라마가 던져주는 코드를 따라 두뇌싸움을 하며 추리를 할 필요도 없다. 드라마 속 인물들인 최무각(박유천)과 오초림(신세경)과 권재희(남궁민)가 바코드리더기로 바코드를 읽듯 알아서 재빠르게 수사물의 임무를 수행하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에서 자잘한 사건들의 해결은 보통 이렇게 진행된다. 오초림이 냄새를 맡으면, 최무각은 재빠르게 그걸 풀어 답안을 낸다. 드라마를 관통하는 큰 사건인 바코드 살인사건의 경우 최고의 쉐프이자 영악한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인 권재희 혼자 드라마를 쥐락펴락하며 무거운 긴장감의 역할을 도맡는다.



그럼에도 <냄새를 보는 소녀>의 수사물 파트가 따로국밥처럼 여겨지거나 시시하게 느껴지지 않는 건 드라마 전체를 구성하는 어떤 감 때문이다. 그다지 굴곡 없는 로맨스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 드라마에서 수사물은 약간의 막장 양념 역할을 한다. 그리고 너무 복잡하게 들어가지 않고 적절하게 긴장감을 주는 수사물 파트는 이 드라마에 꽤 쫄깃한 재미를 주면서도 로맨스 파트의 편안함과 달달함을 방해하지도 않는다.

한편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최무각과 오초림의 로맨스 역시 특별하게 힘을 준 것은 없다. 드라마는 계속해서 최무각과 오초림의 오해, 이해, 설렘, 그리움, 두근거림 같은 감정들의 흐름을 보여준다. 그런데 <냄새를 보는 소녀>의 수사물 파트와 달리 로맨스 부분에서는 그 감정들을 말로 해결하지 않는다. 드라마는 두 사람이 만나서 아웅다웅하거나, 만담 연습을 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음식을 먹는 장면들로 나열된다. 그들이 나누는 대사들도 별로 특별하지 않다.

“말 많이 하면 배고프다, 너.” (최무각)

“아주 그냥 열 받게 하는 스타일이야, 아주.” (신세경)

그런데 시청자들은 두 사람이 점점 사랑에 빠져가는 순간순간을 또렷하게 느낄 수 있다. 로맨스에 대한 감이 좋은 이 드라마는 별다른 대사 없이도 사랑에 빠지는 남녀의 순간순간을 제대로 잡아낼 줄 알기 때문이다.



거기에 좋아도 좋다고 말 못하고 괜히 미적거리는 최무각과 좋지만 괜히 티나면 창피한 오초림을 통해 처음 사랑을 시작하는 남녀의 풋풋하고 귀여운 모습까지 섬세하게 잡아낸다. 물론 인위적으로 멋진 남녀가 아닌 평범한 젊은 남녀를 연기하는 두 주연배우의 합도 좋은 편이다. 박유천은 평소에는 무뚝뚝하면서도 어느 순간에서는 듬직하고 믿음직한 남자의 표정과 말투를 자연스럽게 연기한다. 신세경은 냄새를 볼 줄 아는 능력을 지닌 신비스러운 존재와 평범하고 발랄한 여자 사이의 줄타기를 잘하고 있는 중이다.

흥미롭게도 <냄새를 보는 소녀>나 전작인 <하이드 지킬 나>나 스릴러와 로맨스처럼 이질적인 장르를 결합한 작품이라는 면에서는 닮은 점이 있다. 하지만 두 작품은 재미 측면에서는 확연하게 다르다. <하이드 지킬 나> 쪽이 좀 더 복잡하고 머리를 쓰고 스케일이 컸다. 하지만 아무리 스케일이 커도 흥미를 돋우는 감이 부족하면 드라마가 얼마나 시시해지는지 <냄새를 보는 소녀>와 <하이드 지킬 나>를 비교해보면 잘 알 수 있다. <냄새를 보는 소녀>에는 시청자들이 눈으로 볼 수 있는 로맨스의 냄새가 있지만 <하이드 지킬 나>에서는 그 냄새를 보기가 쉽지 않았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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