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타운’ 감독의 차기작이 궁금해지는 이유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내용만 보면 영화 <차이나타운>은 평범한 조폭물이다. <달콤한 인생>과 <신세계> 같은 영화들이 조금씩 생각나는. 이 영화가 다른 조폭물과 결정적으로 다른 건 단 하나이다. 이야기를 이끄는 두 주인공이 모두 여자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들이 거의 기계적으로 성전환된 인물이라는 것이다. 마치 남자들이 주인공인 이야기를 짜놓고 막판에 "한 번 여자로 바꾸어 볼까?"라고 생각한 것처럼.

"여자로 바꾸어 볼까?"는 건성으로 들리지만 중요한 작업이다. <에일리언>의 리플리가 남자였다고 생각해보라. <히스 걸 프라이데이>의 힐디가 남자였다고 생각해보라. 영화사에 남은 수많은 인상적인 캐릭터들이 이런 전환 과정 중 탄생했다.

원래는 남성 캐릭터였던 인물을 여자로 바꾸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야기가 특별히 바뀌는 일이 없거나 많이 바뀌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둘 다 여자배우들에게 유리한 뉴스이다. 이야기가 특별히 바뀌는 게 없다면 그런 역들을 남자들이 독점해야 할 이유가 없다. 이야기가 많이 바뀐다면 그건 진부함을 돌파할 수 있는 효율적인 무기가 될 수 있다.

<차이나타운>에서 캐릭터 성전환은 영화를 어떻게 바꾸었을까. 몇 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일단 폭력을 묘사하는 방식이다. 대부분 조폭 영화의 폭력은 카타르시스를 중요시한다. 관객들은 그들 세계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무자비한 폭력의 쾌락에 도취된다. 여성 캐릭터로도 같은 일을 할 수 있다. 안젤리나 졸리가 연기한 수많은 여전사 캐릭터들이 그에 해당된다. 하지만 이 영화는 두 주인공에게 그런 '여전사 액션'을 주지 않는다. 그 결과 김고은이 연기하는 일영이 겪는 폭력은 딱 그런 신체조건을 가진 사람들이 겪을만한 묘사로 머물고 이는 어느 방향이건 모두 현실적이다. 흔한 폭력적 쾌락 없이 이런 폭력적인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성인 일영이 처음으로 소개되는 도박장 장면을 보라. 흔한 장면이지만 폭력의 의미는 전혀 달라진다.



두 번째는 캐릭터의 관계를 묘사하는 방식이다. <차이나타운>에서는 이런 조직을 구성하는 가부장적 질서가 제거되어 있다. 김혜수가 연기한 엄마는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지만 남성 보스와는 전혀 다른 식으로 행동한다. 이 결과 이전에는 당연히 되었던 남성공동체의 결속력이 사라지고 이들의 역학관계는 전혀 다른 모양을 취하게 된다. 영화가 그리는 것은 혈연으로 연결되지 않은 사람들의 거의 근친상간 관계인데 이는 일반적인 조폭 영화의 드라마와는 성격이 많이 다르다.

일영과 엄마의 '고객'인 요리사의 관계는 상대방의 캐릭터까지 성전환되어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보통 여자들에게 주는 동기부여용 캐릭터를 그냥 남자에게 준 것이다. 여기서 눈여겨 볼 부분은 남성작가가 이 인물을 마치 여성 캐릭터 다루듯 타자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이 캐릭터는 아주 괴상해지는데, 그냥 '이상한 것이 개성인' 인물이라고 이해하는 게 맞을 거 같다. 그리고 이 인물이 그렇게 괴상하게 보인다면 여성 관객들의 관점에서 조폭 영화에 나오는 소모성 여성 캐릭터들이 얼마나 이상하게 보였을지 생각해보기 바란다. 의도인지 알 수 없지만, 이 캐릭터의 괴상함은 역지사지의 교훈을 준다.

마지막으로 지적할 것. <차이나타운>은 여전히 자신의 주인공들을 완벽하게 다룰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 남성작가의 작품이다. 그는 이 핸디캡을 일부러 이용하기도 하고 그에 발이 걸려 주저앉기도 한다. 예를 들어 그는 '엄마'의 동기를 완벽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관객들이 빈자리를 채우는 건 어렵지 않지만 이 빈자리를 남겨두고 중의성을 허용한 건 생산적으로 보인다. (이후 일어나는 사건은 개연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냥 설명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성전환되지 않은 유일한 여성 캐릭터인 쏭을 다루는 방식에는 여전히 한계가 보인다. 분명한 개성은 주고 있지만 어떻게 활용하고 어떤 결말을 줄 것인지 모르는 것이다. 감독의 차기작이 이 핸디캡을 어떻게 극복하고 다음 단계로 도달할 것인지 궁금해진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차이나타운>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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