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정, 전례를 찾기 힘든 여성 예능 대세의 씨앗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방송은, 아니 대중은 늘 새로운 인물을 원한다.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그리고 미니시리즈의 흥망성쇠 사이클보다 더 빠른 속도로 ‘대세’가 등장하고 불꽃처럼 사라진다. 그래서 유재석, 하하 같은 장수 예능인들이 대단한 것이고 말도 많고 탈도 살짝 있었지만 김구라, 전현무가 비호감 이미지를 벗어내고 가장 바쁜 예능인이 된 것도 부단한 노력 덕이라 할 수 있다.

스튜디오쇼가 강세였던 시기에는 재기발랄한 입담과 에피소드를 가진 ‘놀 줄’ 아는 연예인들이 대세의 전형이었다면 방송과 무대 이면의 모습에 관심을 갖게 된 리얼 버라이어티 시대에 접어들면서 대세의 조건은 반전 매력이 됐다. 배우 김응수처럼 기존에 알려진 것과 다른 의외의 매력을 가진, 그리고 허당끼가 있는 연예인들이 초속 5m 이상으로 시청자들에게 가깝게 다가왔다. 비주류이자 기존 방송의 룰을 깨면서 정체성을 확립한 <라디오스타>는 그런 반전 매력을 이끌어내는 최고의 무대였다. (그런 점에서 <나 혼자 산다> 출연진으로 꾸린 이번 주처럼 자사 프로그램 홍보성 출연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갈아먹는 아니 될 일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관찰형 예능의 시대에 와서 반전 매력 위에 일상의 공감대, 즉 친근함이 대세의 필수 조건이 됐다. 여기서 한 가지 숨은 조건이 있다. 남자여야 한다는 거다. 방송 타겟인 여성 시청자들에게 가깝고 내밀하게 다가가 착하고 순수한 모습으로 모성애를 자극할 수 있으며, 제작하는 차원에서는 여성 연예인보다 자연스럽게 일상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라스> 게스트였던 망원동 옥탑에 사는 육중완이나 아이돌이지만 일이 아예 없었던 강남이 그런 인물들이다.

물론, 셀러브리티로 대세가 되는 방법도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진만 새로 찍으면 실시간 검색어를 지배하던 글래머 셀럽의 자리를 이제 남자는 요리사, 여자는 피트니스 관련 모델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들 역시 셀러브리티와 잠시 소비되고 광속으로 사라지는 셀러토이드 사이의 불안한 경계선에 있긴 하지만 어쨌든 일정 기간 이름을 알리고 예능 방송을 순회할 정도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런데 나름의 흐름을 따르면서 돌연변이라고 하는 별종이 나타났다. 중년 ‘여배우’ 황석정이 그 주인공으로 <나 혼자 산다>를 통해 일상을 가감 없이 보여주며 시청자 앞으로 불쑥 다가왔다. 인지도가 높아지기 무섭게 끼와 매력을 <라디오 스타> 등을 통해 발산하며 대중적인 작품에서 주인공 역을 맡은 적 없는 그녀가 시청자들에게 각인됐다. 강남이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코스 같다. 여기까지는 대세의 법칙이지만 여성이자, 중년인데다 ‘몸짱 아줌마’ 같은 글래머 콘텐츠를 가진 것도 아니다.

황석정은 그래서 매력적이다. 어떤 시대이든 대세는 늘 있었지만 여성, 그것도 중년 여성 대세는 찾아보기 힘들다. 육아예능 등에서 보기 힘든 평범한 집. 카메라 앞에서 민낯으로 일어나 하품을 늘어지게 하는 그녀를 보고 전현무는 “여자에게서 육중완 옥탑방의 향기가 난다”고 평가했다. 황석정은 또 다른 방송에서 반전 뒤태를 가진 재무부장 역을 맡았던 <미생>의 에피소드를 말하면서 "대역이 있었다. 내가 얼굴 돌리면 다들 놀란다. 이런 게 내 인생에서 20대 초반부터 그런 일이 30번 넘게 있었다"고 털털하게 고백했다. 이러한 솔직한 입담과 반전의 생을 살아온 에피소드로 이뤄진 라이프스타일은 성별을 넘어서는 친밀함으로 대중을 끌어당겼고 학벌과 연기 구력으로 상징되는 탄탄한 내실은 시청자들을 눈길을 붙잡았다.



이번 주 <라디오 스타>는 <나 혼자 산다> 특집이라기보다 새로운 엔진이 될 황석정의 쇼케이스라고 해도 무방했다. 간드러지는 노래 솜씨를 뽐내고 지각해서 작가 옷을 빌려 입는 해프닝부터 ‘남자에 대한 욕정’ ‘작업 좀 하고 있었는데’ 등 김국진을 향한 거침없는 작업과 사랑을 포함한 인생관까지 웃음을 주면서도 그녀에게 집중하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신기한 사람이란 호기심으로 관심을 가졌다가 그녀의 연기 입문 스토리에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연기를 하고 싶어서 서울대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실기시험을 봤을 때 자신의 겉모습을 보고 정신병이 있을 거란 이유로 탈락한 다음 어쩔 수 없이 사회가 요구하는 규격화된 통상적인 여성의 착장과 여성스러운 연기를 해서 재수에 성공했다며 웃음 속에서 메시지를 전한다. 이 기회가 마냥 운 좋게 마련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황석정에게 사람들이 끌리는 건 그녀의 인생과 이야기를 보면서 웃고 신기해하면서도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일상과 고민이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기인이나 신기한 누군가로 남지 않고 오랫동안 연기를 해왔듯이 대중 곁에 연착할 수 있는 훌륭한 조건들이다. 전례를 찾기 힘든 여성 예능 대세의 씨앗이라는 점만으로도 앞으로 그녀의 활약을 응원하게 된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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