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위도우 장난감 소동에 대한 단상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한동안 #WhereIsNatasha라는 해시태그가 트위터에 돌았다. 여기서 나타샤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블랙 위도우인 나타샤 로마노프를 가리킨다. 영화 <아이언맨 2>에 등장하면서 이후 <어벤져스>를 비롯한 마블 영화의 중요한 일원으로 자리잡은 이 캐릭터는 왜 이렇게 장난감을 찾기 어려운가.

없지는 않다. 핫토이즈에서는 꾸준히 블랙 위도우 액션 피겨를 만들어왔다. 하지만 그건 아이들의 장난감은 아니다. 나는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때 나온 블랙 위도우 액션 피겨를 갖고 있는데 썩 잘 만든 장난감이다. 하지만 장난감 가게에서 블랙 위도우 모양을 한 장난감을 찾는 건 여전히 쉽지 않다. 블랙 위도우는 대부분 어벤져스 장난감 세트에서는 누락되어 있고 심지어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는 멀쩡하게 블랙 위도우의 몫이었던 장면 재현이 캡틴 아메리카에게 넘어가기도 한다. 이 장난감이 이치에 맞다고 생각하는가?

최근에 블랙 위도우 때문에 촉발되긴 했지만 여성 액션 피겨에 대한 불만은 오래되었다. 여성 액션 피겨는 수가 적을 뿐만 아니라 질도 떨어진다는 게 수집가들의 공통된 불만이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캐릭터 수가 적은가? 사실이다. 하지만 블랙 위도우의 경우가 보여주듯 액션 피겨의 수는 실제 캐릭터 비중을 밑돈다. 다른 예를 든다면, 최근 풀리기 시작한 <스타 워즈: 반란군> 시리즈 장난감 세트에도 비중이 큰 두 여성 캐릭터는 누락되어 있다. 만들기 어려운가? 하긴 액션 피겨의 경우는 여자가 남자보다 어렵고, 동양인이 서양인보다 어렵고, 아이가 어른보다 어렵다는 말이 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디지털 시대에 이는 변명이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수많은 '미소녀' 장난감을 만들어내는 옆나라의 예를 보라(이들 장난감은 오늘 주제와는 다른 문제점들이 안고 있지만 오늘은 건너뛰기로 한다. 하긴 무슨 이야기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알 것이다.) 팔리지 않는다? 정말 그렇다면 이런 해시태그 소동은 시작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가장 큰 이유로 제시되는 것은 장난감업계의 성차별적 태도이다. 성분리적인 태도라고 해도 된다. 장난감뿐만 아니라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업계 대부분이 그런데, 이들은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는 전혀 다른 취향을 가진 전혀 다른 종족이고 특히 남자아이들은 타협없는 성차별주의자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마트에 가면 여아완구와 남아완구의 영역은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한쪽은 핑크색을 뒤집어 쓴 공주님의 왕국이고 다른 한쪽은 로봇과 자동차의 왕국이다. 어린이책의 예를 든다면 <해리 포터> 시리즈의 저자 J.K. 롤링은 여성작가의 책을 읽지 않는 남자아이 독자들을 속이기 위해 이름을 이니셜 밑에 감추어야했다.

이런 편견은 얼마나 옳은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이런 성분리 자체가 아이들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취향을 고정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 액션 피겨에 대한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은 그런 편견이 생각만큼 설득력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만약 그런 편견이 어느 정도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해도 과연 그것이 사업적으로 고수할 가치가 있는가? 이런 편견 뒤에 숨어 있는 잠재적인 고객들을 발굴하는 것은 오히려 권장해야 할 일이 아닐까.



이번 장난감 소동과 관련된 뉴스 두 개를 소개한다.

우선 얼마 전 아마존에선 지금까지 고수했던 여아완구와 남아완구의 구별을 없앴다. 이제 별로 있지도 않은 블랙 위도우 장난감들이 '남아완구'로 분리되는 일이 없어진 것이다. 아마존의 존재감을 고려해보면 이 결정이 이후 업계에 끼칠 영향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또다른 트위터 해시태그와 관련된 것이다. 얼마 전 슈리니바스 쿨카르니라는 천문학자가 잡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많은 과학자들은 사실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남자애들’이다.” 흔해 빠진 인터뷰였고 사실 인용된 말도 흔해빠진 언급이었지만 이것이 트위터에서 불을 당겼다. 그 결과는 #girlswithtoys라는 해시태그를 검색해보면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장난감은 단순히 장난감이 아니다. 이들은 어린 시절에 잊을 수 없는 영향을 남기며 성인 시절의 선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이런 중요한 상품을 무신경하게 핑크제국과 로봇제국으로 나누고 선택권을 제한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블랙 위도우 장난감은 그냥 흔해빠진 플라스틱 물건에 불과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장난감을 가지고 논 여자아이들에게 이런 플라스틱 물건이 끼칠 영향이 과연 하찮기만 할까? 회사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남자아이들이 진짜로 블랙 위도우 장난감을 싫어하는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이런 경계를 부순 장난감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확장된 미래의 가능성이 궁금하지 않은가?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어벤져스2><캡틴아메리카2>스틸컷, 디즈니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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