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 제이슨 스타뎀도 주드 로도 아닌 아줌마가 주인공

[엔터미디어=정덕현] <스파이>는 무미건조한 제목만큼 별 기대감을 갖게 하지 않는 영화다. 도대체 왜 제목을 이렇게 B급영화처럼 지었을까. 그런데 이 영화의 캐스팅을 보면 익숙한 배우들의 이름들이 등장한다. 제이슨 스타뎀. 액션영화의 주인공으로 그만한 인물도 없을 게다. 게다가 주드 로까지.

그래서 영화의 시작과 함께 주드 로가 정장 차림으로 화려한 스파이 액션을 보여주는 장면은 마치 <007> 시리즈를 그대로 따라한 듯한 식상한 느낌마저 준다. 하지만 이 주드 로가 초반에 허무하게 죽게 되면서 관객들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어라. 이거 그저 그런 <007> 따라 하기 아니었어?

그리고 슬쩍 에이전트로 제이슨 스타뎀이 강렬하게 등장하지만 보면 볼수록 그는 이 영화에서 액션 담당이 아니라는 걸 눈치 채게 된다. 만일 입으로 하는 액션의 대회가 있다면 우승했을 법한 걸쭉한 입 액션은 그의 캐릭터를 짐작케 하지만 그건 일종의 위장술이다. 관객들은 차츰 이 캐릭터가 포복절도의 웃음을 주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아챈다.

<무한도전>식으로 얘기하면 주드 로도, 제이슨 스타젬도 이 영화의 에이스가 아니었던 셈이다. 그리고 조금씩 주인공과는 전혀 상관없을 것만 같은 외모에 뚱뚱한 몸매를 가진 내근직 에이전트 요원인 한 아줌마가 이야기의 중심으로 들어온다. 수잔 쿠퍼(멜리사 맥카티)가 사실상의 이 영화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영화는 오히려 흥미진진해진다.

특별하지도 않고 평범 이하처럼 보이는 이 수잔 쿠퍼라는 인물이 임무를 척척 완수해가는 과정은 그래서 어딘지 주목받지 못한 채 소외되며 살아가는 보통의 서민들의 마음을 후련하게 만든다. 파인(주드 로) 같은 잘생긴 에이전트 요원의 귓구멍에 연결된 송수신기로 주변 정보들을 미리 알려주는 역할을 해왔던 그녀는 현장 경험이 전무하지만 그 정보를 얻고 분석하는 그 능력은 현장에서 유용하게 활용된다.



영화가 관객들을 수잔 쿠퍼에게 몰입시키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파인의 파트너로서 그녀가 그에 대한 연정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그녀가 세상을 파인의 시선을 통해 화면으로만 봐왔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는 파인의 죽음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수잔 쿠퍼의 스파이 액션이 사랑과 일 사이에 겹쳐져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녀는 파인의 복수를 위해 이 일에 뛰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일 자체에 쾌감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수잔 쿠퍼가 갖는 자기 각성의 즐거움은 고스란히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리고 그제서야 왜 이 영화가 그토록 기대감 없는 <스파이>라는 평이한 제목을 달고 있는지가 드러나고, 왜 주드 로나 제이슨 스타뎀 같은 배우들을 앞세움으로서 진짜 주인공인 이 아줌마를 숨겨놓았는지가 이해된다. 그것은 이 영화의 수잔 쿠퍼가 하는 체험 그대로이기도 하고 또한 별 기대 없이 봤는데 의외의 쾌감을 느끼게 되는 관객의 체험을 가장 극대화해주기 때문이다.

외모도 나이도 훌쩍 뛰어넘어 차츰 예뻐 보이기까지 하는 이 아줌마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는 경험은 아무런 기대감을 갖지 않고 있던 관객의 뒤통수를 친다. 그러니 영화관에 갔다가 다른 표가 매진되어 별 기대 없이 보게 된 관객이라면 이 영화가 본래 보려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렬한 매력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기대 없이 보시라. 그럴수록 더욱 더 빠져들 테니.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영화 <스파이>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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