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드맥스’ 액션 영화인가, 페미니즘 영화인가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조지 밀러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를 통해 성폭행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방식에 박수를 보낸다. 그건 그 다루는 방식이 좋았기도 하지만 <매드맥스>라는 시리즈에서 그런 이야기는 꼭 한 번 나왔어야 했기 때문이다.

한 번 이전 3부작을 다시 보시라. 비교적 수위 조절을 한 3편을 제외한 앞 두 편에는 모두 상당한 강도의 성폭행 장면이 나온다. 1편에서는 남녀 커플이 성폭행 당하고 2편에서는 여자 한 명이 성폭행을 당하고 살해당한다. 구체적인 묘사가 나오는 건 아니지만 그 태도의 냉담함은 소름끼친다. 특히 2편은 막 사냥한 가젤의 목을 뜯는 사자를 보는 거 같아서 지금 봐도 기분이 좋지 않다.

오로지 관객들을 자극하기 위해 만들어진 옛날 익스플로이테이션 영화엔 그런 종류의 묘사가 많았다. 90년대에 타란티노가 이들 영화를 재조명한 뒤로 꽤 많은 영화를 봤는데, 아직도 나는 그들이 그런 묘사를 통해 무엇을 전달하려 했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내 경우는 분노와 갑갑함인데 과연 그것만일까.

그런데 밀러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전혀 다른 걸 보여준다. 1,2편에서는 성폭력을 그리면서 그에 대해 어떤 입장도 취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성폭력 묘사를 전혀 보여주지 않으면서 이런 행위가 어떻게 시스템이 용인하게 진행되고 피해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상세하게 묘사하며 심지어 그 극복의 과정을 드라마로 삼는다. 심지어 대사도 별로 없는 영화인데 말이다. 밀러는 이를 위해 <버자이나 모놀로그>의 이브 엔슬러를 초빙해서 도움을 받았다고 하는데, 이게 그냥 홍보용으로 끝난 쇼였는지 진짜 무언가를 얻었는지는 몰라도 그 역시 올바른 태도이다. 심지어 그냥 홍보용인 쇼였다고 해도 그건 올바른 쇼이다.



여기서 명백히 해야 할 것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가 1,2편을 뒤집는 영화도 아니고 자기비판이나 변명도 아니라는 것이다. 네 편의 <매드맥스> 영화는 모두 거대한 하나의 세계를 무대로 하고 밀러는 자신의 이야기를 풀기 위해 소재를 취사선택할 수밖에 없다. 1,2편에서 오로지 배경 세계의 야만성을 그리고 관객들을 자극하기 위해 던진 소재를 4편에서 다시 가져와 깊이 다루는 건 논리적이다. 개인적으로 4편을 본 뒤로 무언가가 확 뚫리는 기분이었다. 어렸을 때 비디오로 3부작으로 본 뒤로 이 성폭력의 이미지는 내 기억에 계속 불쾌한 매듭으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무대가 되는 세계의 논리를 자연스럽게 따르면서 그 매듭을 풀어준 영화였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와 관련되어 페미니즘 논란이 있다. 미국의 자칭남성운동단체 소속의 아무개가 이 영화를 페미니스트 프로파간다라고 비난하면서 시작되었는데, 그가 먼저 시비를 걸지 않았어도 언젠가 나올 이야기였다. 홍보를 위해 이브 엔슬러를 불러온 영화는 처음부터 이런 해석을 기대하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나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를 페미니즘 영화라고 부르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영화에는 지울 수 없는 페미니즘 메시지가 있다. 성폭행을 피해 탈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를 피하는 게 가능하긴 할까? 프로파간다라고? 그럴 수도 있다. "우리는 물건이 아니다!"가 프로파간다가 아니면 뭐가 프로파간다인가.



단지 "액션 영화인가, 페미니즘 영화인가"의 이분법은 많이 이상하다. 페미니즘 프로파간다가 되면 <매드맥스>의 끝내주는 액션이 모두 사라져버리는가? 수많은 훌륭한 프로파간다 영화는 늘 다른 무엇이기도 했다. 난 제2차세계대전 때 나온 전쟁 프로파간다 영화의 팬인데, 그 중에는 <침입자들> 같은 훌륭한 스릴러도 있고, <당신이 떠난 후>처럼 뭉클한 멜로드라마도 있으며, <총통의 얼굴>처럼 기가 막힌 디즈니 애니메이션도 있다. 프로파간다라고 해서 장르적 매력을 버려야 할 이유는 전혀 없고 위대한 영화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가 오로지 페미니즘 메시지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떤 영화도 메시지만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건 막 시작한 서울여성영화제에서 상영하는 페미니즘 영화들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 영화에는 그 이외에도 수많은 주제와 이야기가 담겨있다. 환경주의, 종교비판, 반전주의... 끝도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매드맥스> 영화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그 세계에 충실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그 안에서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것이 다음이다. 그 주제를 다루는 방식이 순진해보일 수도 있고 과격해 보일 수도 있고 미진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세계와 이야기와 캐릭터가 먼저이고 이들을 먼저 보아야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그렇다고 서운해야 할 필요는 없으니, 아무리 저들이 우선순위를 주장한다고 해도 우리가 씹고 삼키고 소화하려는 주제들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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