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백인 캐스팅 ‘알로하’, 우리는 예외일까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얼마 전에 카메론 크로우 감독의 <알로하>가 개봉됐다. 쟁쟁한 캐스팅에도 불구하고 평이 아주 나쁜데다가 흥행성적도 안 좋아 국내에서 개봉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당연히 필자 역시 이 영화를 아직 보지 않은 상태인데, 그런데도 이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다. 어차피 이 영화와 관련된 논쟁에 참여한 사람들 중 상당수가 영화 자체를 보지 않았던 것이다.

<알로하>가 공격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이 영화가 하와이를 무대로 하고 있는데도 정작 나오는 사람들은 백인들뿐이라는 것이다. 이건 캐스팅 뉴스와 예고편만 봐도 알 수 있는 정보이니 굳이 영화까지 챙겨볼 필요는 없다. 이 영화의 주연배우들을 보라. 브래들리 쿠퍼, 레이첼 맥아담스, 알렉 볼드윈, 엠마 스톤, 존 크라신스키, 빌 머레이... 하와이 원주민이나 아시아계 배우는 찾을 수가 없다.

<알로하>가 유달리 심한 영화여서 비난을 받는 건 아니다. 기본적인 상식을 생각해보자. 하와이는 백인 인구가 30퍼센트 정도밖에 안 되는 곳이다. 인구 대부분은 하와이 원주민이거나 아시아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하와이 배경 미국 영화의 인구 분포는 이 당연한 현실과 일치하지 않는다. <진주만>, <지상에서 영원으로>, <블루 하와이>, <50번째 첫키스>, <디센던트>, <블루 크러시> 같은 영화에서 원주민이나 아시아계 사람들은 늘 배경으로 밀려나 있다. 전부터 불만이 폭발할 가능성이 있는 곳이었고 어떤 영화건 도화선이 될 수 있었다.

이런 세계에 카메론 크로우가 천진난만하게 들어온 것이다. 아마 그는 여기에 대해 깊은 생각을 안 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다들 그래왔으니까. 하지만 지금까지 다들 그래왔다고 그게 당연한 것은 아니다. 세상은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곳과 많이 다르다.



그런데 영화가 개봉되고 나니 지금까지 묻혀있던 또 다른 문제점이 드러난다. 엠마 스톤의 캐릭터 이름이 앨리슨 잉이었던 것이다. 이 캐릭터는 1/4이 중국계, 1/4이 하와이 원주민, 그리고 1/2이 스웨덴인인 혼혈이다. 이런 캐릭터가 엠마 스톤에게 넘어간 것이다. 비난이 쏟아지자 카메론 크로우는 결국 공식 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렸다.

엠마 스톤의 캐스팅은 당연히 잘못된 것이다. 누가 엠마 스톤을 혼혈로 보겠는가. 크로우가 1/2의 스웨덴피로 이를 정당화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 자체가 이상하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건 아쉬운 기회이기도 하다. 부계성이 생물학적으로 얼마나 의미가 없는 보여주는 사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 남자의 남자 후손들이 계속 유럽계 여자와 결혼하는 상황을 보자. 몇 세대만 지나도 거의 아시아인을 닮지 않은 후손들이 아시아성을 갖고 돌아다닐 것이다. (그러고보니 옛날 SF 텔레비전 시리즈 <안드로메다>에서 브루스 하우드가 연기한 필립 킴이란 캐릭터가 생각난다.) 하여간 한 줄로 흐르는 혈통이란 생물학적으로 대단한 의미가 없는 개념이고 더 좋은 캐스팅이었다면 이를 보다 설득력 있게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이다.

인종과 민족은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 그 복잡성 안에서 캐스팅은 늘 융통성을 요구한다. 얼마 전 여성영화제에서 이란계 미국인인 데지레 아카반이 감독/각본/주연을 맡은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라는 영화를 보았는데, 그 영화에서 아카반은 자신의 어머니 역으로 안 두옹을 캐스팅했다. 안 두옹은 이름만 봐도 알겠지만 베트남계와 스페인계 혼혈인데 영화에서는 전혀 튀지 않는다. 외국인 관객이기 때문에 둔감해서라고 의심할 수도 있지만 감독 자신이 이 캐스팅을 받아들였으니 그냥 그러려니 할 수밖에. 메그와 제니퍼 틸리, 키애누 리브스, 조니 뎁처럼 자신의 혼혈 혈통에 얽매이지 않고 캐스팅되는 수많은 배우들은 크로우의 기본 개념이 아주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크로우와 앨리슨 잉의 문제점은 품고 있던 기본 개념 자체가 아니라 그를 대입하는 방식에 있었다. 아무리 개념이 좋아도 그것이 구체적인 현실에 반영되지 않으면 쓸모가 없다. 크로우에겐 그 반영에 필수적인 지식, 경험, 섬세함 그리고 무엇보다 탐구력이 없었다. 엠마 스톤의 캐스팅은 크로우가 자신이 다루는 이야기와 캐릭터를 얼마나 추상적으로 다루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이건 과연 할리우드 백인 남성 작가만의 문제일까? 우리는 예외일까? 그럴 리가.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막연한 타자로 여기는 모든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다루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지금의 한국 영화는 그 편협함에 있어서 카메론 크로우의 순진무구한 한 번의 실수에 비할 데가 아니다. 물론 지금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물론 여성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주변부로 밀려났고 이를 당연시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는 데에 있다. 이주민과 외국인에 대한 상상력과 지식은 원래부터 빈약했지만 나아질 구석도 안 보인다. 세상은 복잡해지고 넓어지고 있지만 그렇지 않아도 좁아터진 중산층 남성 상상력의 세계로 움츠러들면서 이게 세계의 전부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무얼 만들 수 있을까.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알로하>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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