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사’ 러브라인 문제삼는 게 천진난만한 것인가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요새 KBS 2TV에서 금요일과 토요일에 방영하는 KBS 예능국을 무대로 한 드라마 <프로듀사>를 보고 있는데 신경 쓰이는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리고 그 중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이 드라마의 ‘러브라인’이다.

기본 설정을 보자. <1박 2일> 팀에 막 들어온 백승찬(김수현)이라는 신입 피디가 있는데 탁예진(공효진)이라는 <뮤직뱅크> 피디를 짝사랑한다. 탁예진은 어린 시절 친구인 <1박 2일> 피디 라준모(차태현)를 좋아한다. 라준모는 백승찬이 KBS에 들어오기 전에 짝사랑했던 대학 동아리 선배 신혜주와 연애하다가 헤어졌는데 지금은 동탄으로 이사 가기 전에 자기 집에 잠시 머물고 있는 탁예진에게 마음이 끌리나 보다. 그리고 <1박 2일>에 출연하는 신디(아이유)라는 아이돌 스타가 있는데 이 사람은 백승찬을 좋아한다.

척 봐도 ‘일은 안 하고 연애만 죽어라 하는’ 한국 직장 드라마의 세계이다. 이런 걸 여기서만 본 게 아니다. 위의 설정은 여전히 짜증나지만 그래도 다른 드라마에 비해 특별히 튀지는 않는다.

하지만 세부를 보자. 드라마의 시간은 넉넉잡고 봐도 5,6주 정도 흘렀다. 승찬이 <1박 2일>에 들어오자마자 새 출연진으로 물갈이를 했는데 그게 4주째다. 다시 말해 신입피디라면 시스템에 몸을 익히고 일을 배우느라 미칠 정도로 바쁠 때다. 하긴 바쁜 건 승찬뿐만이 아니다. 예진은 동탄으로 이사를 준비 중이고, 준모는 프로그램이 날아갈까봐 걱정이 태산이다. 재계약을 앞두고 회사 대표와 대립 중인 신디 역시 딴 생각을 할 시간이 없다.

한국 드라마에서 이건 연애하지 말아야 할 핑계가 안 된다고? 그럴 수도 있다. 시간이 없어서 연애를 못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그냥 연애를 할 생각이 없는 거지. 하지만 백승찬이 하는 행동을 보자. 그는 짝사랑 상대를 따라가다 직장까지 정한 순정파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도 않아 그는 탁예진을 짝사랑하고 있고 술에 취한 채 라준모 앞에서 그 사실을 고백한다. 그 사이에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작가도 모를 것이다.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가설은 승찬이 키크고 마르고 눈치없는 여자선배를 보면 무작정 사랑에 빠지는 성격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사람인가, 로봇인가. 암만 생각해도 나는 그가 튜링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안 든다.



승찬의 캐릭터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의 공허함에 놀라게 된다. 이런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낯선 직장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는 신입사원들을 대표해야 한다. 하지만 그가 어리바리하고 수줍은 성격 때문에 고생하는 에피소드는 초반 몇 회에 끝이 난다. 남은 에피소드 동안 그는 백과사전 지식을 머릿속에 담고 다니고 완벽하게 시청률을 예언할 수 있는 분석능력을 가졌으며 10년 경력의 아이돌이 서너 번의 만남으로 사랑에 빠지는 서울대 출신 훈남 수재다.

여기서부터 이 글이 너무 천진난만하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나올 것이다. <프로듀사>는 팔려고 내놓은 상품이고 저런 캐릭터는 같은 카테고리에 속한 드라마에서는 흔해빠졌다. 이런 드라마의 성공이 반복된다면 그건 이런 캐릭터를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말이다. 실제로 이 드라마의 시청률은 상당히 좋게 나오는 편이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믿을 수 있는 성격 묘사와 타당한 심리 묘사를 요구하는 것이 과연 세상물정 모르는 천진난만한 태도일까?

이 드라마를 보면 재미있는 것들은 다 ‘러브라인’을 피해간다. 오히려 관계 묘사가 꼼꼼하게 그려진 건 신디와 탁예진, 신디와 매니저 쪽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러브라인이 아니기 때문에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별다른 발전이 없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드라마에서 기대하는 인간 이야기가 있다.



배우의 호연과 상관없이 밋밋하게 주저앉은 다른 캐릭터들과는 달리 신디만은 성공적인 캐릭터로 살아남았는데, 이 사람은 연애 이야기 말고도 집중할 드라마가 많고 드라마나 코미디 면에서 성공한 부분도 대부분 그쪽이다. 그리고 예능국 프로듀서들이 주인공이어야 할 드라마에서 아이돌 캐릭터가 이렇게 두각을 나타내는 건 이 드라마가 직장에서 일하는 보통 사람에 대해 별관심이 없다는 증거가 아닐까. 심지어 드라마가 ‘러브라인’에도 관심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무관심할 수가 없다.

언제나 하는 말이지만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캐릭터가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움직인다면 시청자들이 그 경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설명과 묘사가 따라야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이 드라마 시작 전부터 당연하다면 설명과 묘사는 당연히 생략되고 미리 조리되어 냉동된 러브라인만 남는다. 시청자들이 그것도 좋아서 그냥 먹는 것 자체는 뭐랄 수 없다. 하지만 창작자는 시청자들의 만족 이상을 생각해야 하는 직업이 아닌가. 그들은 이 결과물이 스스로에게 만족스러울까.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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