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돈, 일반적인 대세와는 확연히 다른 이유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지난 주 무한뉴스는 정형돈의 MC ‘4대 천왕’ 발언을 남겼다. 그 후 그의 입사소식(정확히 말하면 매니지먼트 계약 소식)과 맞물려 진짜 언론사에서 뉴스가 쏟아졌고 여론이 따라붙었다. 지난 세월이 깊게 각인된 <무도> 골수 팬 입장에선 그가 소속사를 찾았다는 소식 따위가 뉴스가 되는 게 실로 놀랄 일이겠지만, 깊은 지하에서 아이돌과 함께하는 마이너한 방송부터 동묘 앞의 거상 형돈이와 대준이, MC로서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 <냉장고를 부탁해>까지 그의 전천후 활약상을 모아보면 이런 표현이 어색하지만 정형돈은 대세가 됐다.

지금으로부터 20~30년 전 지금의 한류처럼 당시는 홍콩의 중화권 스타들이 아시아를 호령했다. 그 호황기를 연 알란탐과 장국영의 뒤를 이어줄 스타와 스토리가 필요했고, 유난히 호들갑스러운 홍콩의 매스컴은 그 이름도 찬란한 4대 천왕이란 걸 만들었다. 유덕화, 곽부성, 여명 그리고 장학우. 이들은 풍요부터 불안까지 모든 걸 경험한 세기말 아시아 도시 청춘들의 우상이 되었다. 청소년들은 학교에서 그들의 얼굴을 책받침으로 썼고, 인터넷 상거래가 없던 시절이었기에 브로마이드, 엽서, 카드를 사기 위해 시내에 나갔다.

홍콩의 4대 천왕은 인기도 인기지만 왕성한 활동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시 한국에선 ‘더 블루’ 이외엔 찾아보기 힘든 멀티플레이어로서 무대와 스크린을 동시에 누비며 대중문화 전반을 장악했다. 그런 점에서 정형돈을 포함한 MC 4대 천왕이 누구일지 추측해보는 것도 이번 뉴스를 즐기는 한 가지 재미다. 한 자리는 유재석이 분명하고, 막내는 자신이라고 했으니 나머지 두 자리의 주인공이 누구일지 추측해보는 거다. 현재 폼이 좋은 김구라, 신동엽일지, 아니면 <예체능>에서 호흡을 맞추는 강호동을 여전히 높게 사는지, 혹시나 만에 하나 정 때문에 박명수를 생각한 것은 아닌지 생각의 조각을 맞춰 볼 일이다.

유재석은 어떤 상황에서든 도자기를 빚듯 매끈하고 부드러운 진행을 하고, 강호동은 (현재 상태가 어쨌든) 현장 분위기를 압도하며 나간다. 신동엽, 유세윤은 ‘바티골’처럼 순간적으로 파고드는 반박자 빠른 순발력이 발군이며, 전현무는 자신을 낮추고 경쾌한 속도감을 만든다. 여기서 MC 정형돈의 장점은 보도자료에서 말하는 ‘착함’보다는 맥락의 파괴다. 그는 평범하고 수더분한 이미지에서 나오는 편안함과 인지부조화를 이루는 태도로서 웃음을 만든다. 누가 봐도 아저씨인 몸과 취향으로 GD를 비롯한 아이돌과 패션피플의 감각을 평가하고, 굴지의 주방장인 샘킴에게 요리학원 다시 가라고 놀린다. 무엇보다 스스로 4대천왕의 막내라고 주장하는 게 바로 정형돈식 개그다.



그의 원동력이자 다른 MC들과 구별되는 차이가 여기에 있다. 정형돈은 많이 보고 많이 아는 사나이다. 우리나라에선 보기 드문 대중문화적 자양분과 정서적 감수성을 기반으로 하는 예능인이다. 둥그런 외모가 담보하는 인성으로 정서적으로 연결고리를 마련한 다음 자신의 이미지를 뒤틀고, 대중의 기대를 불식시키며 재밌는 진행자의 역량을 보여준다.

큰 범주에서 김구라와 비슷한 계열인데, 문화적 맥락을 김구라가 드러내서 자기 앞으로 깔대기를 놓는다면, 정형돈은 감추고 조금 비틀어서 캐릭터화한다. ‘늪’을 엉터리 창법으로 진지하게 부르고, 이해하긴 힘들지만 춤은 자신 있다. 무엇보다 패션에 대한 드높은 자신감과 취향은 자신의 이미지와 ‘패션피플’들의 행태 및 씬의 분위기를 모두 잘 알고 그 간극을 활용하는 세련되고 계산된 코미디다. 형돈이와 대준이 콘셉트도 힙합의 갱스터스러움을 읍내 버전으로 로컬화한 방식인데, 미국의 작가 출신 코미디 배우들이 캐릭터를 만들고 스토리를 입혀가는 방식과 장르는 다르지만 비슷하다. 현재 활동하는 MC중 스스로가 캐릭터가 되고 그 캐릭터가 업데이트되는 가장 연극적이면서 발전중인 MC다.

어색하고 재미없음의 대명사였던 그가 대중을 사로잡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가 처음 예능에 건너왔을 땐 리액션을 잘하는 그저 그런 뚱보 캐릭터(기믹)였다. 그러다 <무도>에서 그림자 같은 역할을 하며 뚱보 캐릭터가 가진 내면의 쓸쓸함과 비애를 오랜 시간 그렸다.(돈가스 홈쇼핑 방송사고나 족발당수 같은 히트 사례도 간헐적으로 있다.)



그런 그에게서 예능인의 가능성을 본 건 <우리결혼했어요>에서였다. 사오리와 가상부부가 된 그는 <무도>를 통해 알려진 극악의 아저씨스러운 생활 태도를 방송에서 여과 없이 보여주면서, 진상, 아저씨 캐릭터를 선보였다. 정형돈이란 모순이 범벅된 캐릭터가 출발한 것이다. 여기에 “내가 봤어”로 상징되는 눈물 몇 방울이 보태지면서 정서적 감수성까지 가진 캐릭터로 발전했다. 그렇게 스토리가 쌓이면서 캐릭터는 생명을 갖게 됐다. 그가 <무도>라는 쇼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이런 변화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하는 최현석 주방장은 한 방송에서 정형돈이 자신에게 허세 캐릭터를 입혀주면서, 방송 섭외가 물밀듯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뭔가 아니까 만들 수 있고 띄워줄 수도 있는 거다. 외모나 나이나 전혀 어울릴 수 없는 아이돌들과는 그들보다 더 천진난만하게 굴면서 시너지를 발산한다. 김성주와는 요즘 토크쇼에선 찾아보기 힘든 화려한 앙상블을 선보이며 중계식 토크로 새 바람을 열었다. 초딩 입맛을 주장하는 그의 멘트와 태도는 저렴하고 무식한 듯하지만 뜯어보면 세련됐고, 위트가 있다. 구원투수로 등장한 <우리동네 예체능>에선 본연의 운동부터, 웃음, 그리고 정서적 몰입과 감동까지 혼자서 모든 구멍을 다 막아내며 애쓰고 있다. 정형돈의 캐릭터로 보자면 성장 스토리의 정점에 차올랐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꽃이 피고 지는 일반적인 대세와 그의 경로는 다르다. 다른 데서는 잘나가는 MC지만 <무도>에선 여전히 발언권 4위 수준의 주눅 든 멤버일 뿐이다. <무도>와 그 밖의 프로그램 사이의 온도차는 성장에 따른 괴리감, 즉 시건방짐과 겸손 사이에서 정형돈은 성공에 가까워지면서 반대급부로 잃게 마련인 매력을 보존할 수 있는 적절한 균형을 유지한다. 어쩌다보니 평범하고 친근한 정서적 공감대를 유지할 수 있는 겸손과 초심을 닻처럼 달고 다니게 됐다.

앞으로의 그의 행보가 기대가 되는 건 보지 못했던(그를 본 건 꽤 오래됐지만 MC유형으로) 새로운 유형이고, 오랫동안 쌓인 시간이 만들어낸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방송을 매끈하게 잘하는 사람이라기보다 많이 알고 이해하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밀착한 진행이 가능한 MC다. 라이프스타일 트렌드와 일상적 정서가 예능에 깊이 들어온 시대에 가장 추앙받는 덕목이다. 물론, 대형 쇼에는 적합하지 않고 유재석처럼 어떤 무대에서든 유려한 모습을 기대할 수 있는 MC는 아니다. 감성과 캐릭터로 접근하기에 전현무처럼 다작으로 나아갈 경우 위험요소가 따르는 유형이다. 한계도 있지만, 끼와 순발력이 아닌 감수성과 정서로 다가오는 MC도 한 명쯤 필요한 시대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JTBC, MBC에브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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