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사’ 제작진의 자평이 못내 궁금한 이유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마지막회 시청률 17.7%. <프로듀사>는 이 수치가 말해주듯 성공한 드라마다. 웰메이드라고 할 수는 없으나 설레는 연애의 감정, 풋풋한 김수현 판타지가 강력하게 작용한 재밌는 로맨틱 코미디였다. <프로듀사>가 ‘일반적’인 절차와 편성을 탄 보통의 드라마로 출발했다면 마지막회가 끝난 지금 우레와 같은 박수만이 길게 남았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승찬(김수현)과 신디(아이유), 준모(차태현)와 예진(공효진)의 해피엔딩을 기뻐하고 더 이상 그들의 세상을 함께할 수 없다는 데 아쉬워하며 아직은 쌀쌀한 밤공기에 엷게 띈 흥분을 식히며 공허함을 마주했을 것이다.

그런데 <프로듀사>는 애초에 트렌디 드라마, 로맨틱 코미디를 목표로 한 것이 아니었다. 김수현의 드라마도 아니다. 로맨틱코미디의 여왕 공효진의 드라마도 <엽기적인 그녀>의 남자 차태현의 드라마도 아니다. <별에서 온 그대>의 박지은 작가가 넝쿨째 들어온 것도, 표민수 감독의 ‘작품’임을 내세운 드라마도 아니다. <프로듀사>의 정체성은 서수민 PD가 진두지휘하는 KBS 예능국이 시도하는 ‘예능드라마’다. 이것이 마케팅 포인트였고, <프로듀사>가 이슈가 된 이유였다.

KBS의 지원은 인천상륙작전 수준이었다. 기존 편성 블록을 파괴하며 공중파에서는 딱히 경쟁자가 없는 시간인 밤 9시 15분에 금토드라마를 편성하는 파격 지원을 했다. 게다가 11회와 마지막 회는 10분씩 확대편성했다. 물량은 더욱 어마어마했다. 회당 4억씩 총 48억에 달하는 제작비를 투여했고, 각자 한 드라마씩 맡아도 좋을 김수현, 공효진, 차태현을 캐스팅했다. 이런 총공세는 모두 ‘예능국의 첫 드라마’를 지원사격하는 밑바탕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대대적인 투자와 제작인력의 새바람이, 예능과 극의 만남이 가져온 변화와 성취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김수현과 아이유가 돋보인 재밌는 드라마였다라고 한 줄로 응축해 넘어가서 미안하지만 드라마로서의 평가와 별개로 이제 멸종해버린 시트콤 이후 공중파 예능자원이 극에 처음으로 도전한 예능국의 드라마가 가져온 진일보와 가능성은 무엇인지 얘기해 볼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예 없다. <프로듀사>는 출사표는 거창하고 신선했지만 결과물은 주연배우의 캐릭터를 잘 활용한 로맨틱 코미디였다. 이건 예능국이 굳이 전사적인 지원을 받아가며 했을 필요가 없는 일이다. 애초에 표민수 박지은 체제로 했으면 만듦새의 수준과 균질함을 한층 더 끌어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박지은 작가는 클리셰를 갖고 놀 줄 아는 몇 안 되는 작가다. 판타지와 로맨스를 버무린 위에 현실감각을 기반으로 한 위트를 뿌려낼 줄 아는 유일한 드라마 작가다. 가족드라마의 신기원을 이룩한 <넝쿨째 굴러온 당신>부터 전지현을 부활시킨 <별에서 온 그대>까지 박지은의 드라마는 늘 클리쉐를 넘나들면서 연애 안에서 치유와 성장을, 그리고 입지전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프로듀사>는 아이유가 맡은 신디 캐릭터를 빼곤 주연부터 조연까지 갈등요소가 내제되어 있지 않는 평면적인 인물이었다. 주사를 부리는 김수현의 모습과 같은 별첨부록을 볼 수도 있었고 소심하고 다소 어리바리한 역할을 맡은 김수현을 잘 활용하긴 했지만 박지은 작가에게 기대한 것 이상은 아니었다.

표민수 감독의 경우도 중간에 급하게 들어와서 길게 말할 순 없다만 대부분 방송분량을, 특히 극적 전개에 관한 설명과 감정선의 전달이 필요한 장면들을 이번 경우처럼 배우 얼굴의 클로즈업과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해결하는 연출자는 아니다.



<프로듀사>가 예능드라마의 면모를 간직했다면 할 수 있을 만한 건 인터뷰 기법이나 줌아웃일 것이다. 이는 2000년대 중후반 <빅뱅이론>을 비롯한 미국 코미디 시트콤들이 방송계를 장악하며 질적 양적으로 성장한 시기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양식으로 <오피스><모던패밀리>에서 적극 활용됐다. 그런데 이들 시트콤에서 이 장치는 코미디의 기법으로 활용된다. 진행되는 스토리와 관계의 맥락을 비틀어 웃음을 유발하는 장치다.

예를 들자면 백승찬이 뭔가를 했고, 다른 사람들은 전부 별로라는 식으로 극은 진행되는데 인터뷰 자리에 앉은 백승찬은 뿌듯해하면서 사람들의 반응을 오해하는 식이다. 마찬가지로 줌아웃은 시청자들에게 한정된 정보만 주다가, 화면이 넓어지면서 방금 전 상황의 맥락이 뒤틀리거나 어이없도록 만드는 거다. 그런데 마지막회 송해 선생님 인터뷰 장면 등을 제외하면 이런 코미디 장치가 코미디의 기능을 수행하지 않고, 극을 설명하는 사족처럼 쓰였다. 제 기능을 못하면서 쓰이다보니 이런 장면들이 어색하다는 평을 들었다.

애초의 기획이 얼마나 예능적이었는지 모르지만 확실한 건 출발부터 전문직 종사자들이 자신을 스스로 그릴 때 빠지는 오류가 약간 있었다는 거다. 즉, 예능에 대한 자기애와 방송종사자의 자의식 과잉은 방송 제작 환경을 사람들이 좋아할 것이라는 시대착오적인 착각을 쿨하지 못하게 그리게 만들었다. 방송가 풍경과 방송 예능계 사람들끼리 공유했던 대사들, 귀신 설정 등은 명대사나 반전으로 살아남지 못하고 로맨스 라인에 도움이 안 되는 부속물로 남은 것이 그런 이유다. 온갖 카메라가 침대까지 따라오는 시대에 방송 제작 환경은 요즘 사람들의 호기심을 품을 만한 볼거리가 아니다.



즉, <1박2일>자체도 진부한 마당에 그 제작현장과 방식을 들여다보는 게 즐거울 거라는 착각이 문제였다. 최대한 무게를 덜고, 캐릭터를 갖춘 사람이 사는 이야기로 녹여야 하는데,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갔다. 비교하자면 <미생>의 경우 대기업 상사를 배경으로 하지만 직장인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한다면, <프로듀사>는 방송국을 배경으로 예능과 연애 이야기만 했다. 무엇이 문제냐면 이렇게 힘이 들어가면서 스스로 재밌어하고 먼저 웃다보니 공감이란 예능의 정서가 차단됐다. 예능드라마라는 새로운 그림 대신 우리가 익히 봤던 로맨틱 코미디에 머물게 된 이유다.

예능국이 드라마를 만든다고 했을 때 비록 KBS였을지라도 기대했다. 팩맨처럼 장르들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고 결합하고 있는 예능의 앞날은 결국 극에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관심을 갖고 주목했다. 하지만 <프로듀사>는 기존과 다를 바 없는 로맨틱 코미디 그 이상은 아니었고, 제작진의 전작을 생각하면 웰메이드라고 할 수도 없었다. 예능국이 만드는 드라마라는 말이 촬영지와 소재를 제공하는 건지 몰랐다. <우결>이나 <런닝맨>처럼 좀 더 세계진출의 시각으로 본다면 다르게 평가할 수 있겠지만, 한국의 시청자 입장에서 예능의 전성기에 보인 공중파의 씩씩한 행보가 성취나 가능성의 측면에서 뚜렷한 성취를 남기지 못한 것이 아쉽다.

tvN ‘응답하라’ 시리즈가 집단작가체제 도입 등의 제작방식에 변화를 가져온 부분이 있고 일부 과장된 부분도 있다 보니 사장된 시트콤을 넘어선 새로운 코미디극을 기대할 씨앗이 있다거나 이런 것들을 하나씩 쌓아가길 바랬는데, 재밌고 안전한 로맨틱 코미디의 틀에 머물렀다. 예능은 망해야 끝난다는 데, <프로듀사>의 마지막을 KBS 예능국과 제작진은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는지, 그것이 알고 싶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KBS]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